[안종도의 음악기행 <81> 피아노 연주장의 색채] 현대 콘서트홀 지배하는 스타인웨이와 다가올 변화에 대한 기대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2024. 4. 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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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독일의 한 유명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노 독주회를 감상하러 갔었다. 20세기 초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홀 내부는 천장과 벽 구석구석 금박의 화려한 장식이 덧대져 있었고, 천장에 걸려 있는 샹들리에가 2000석이 넘는 거대한 홀을 눈부시게 비추고 있었다. 필자는 1층 중간쯤 앉아 독주회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올해 열릴 공연 안내를 담은 책자를 이리저리 넘기며 봤다. 내일은 랑랑, 그다음 주는 유자왕, 그다음은 조성진 등등, 동양의 스타 연주자를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990년 후반까지만 해도 해외에서 아시아 출신의 스타 연주자는 극히 드물었다. 또한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후, 더 깊게 공부하고 싶은 이들은 서구권에서 유학하며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피아노. 사진 셔터스톡

하지만 불과 20여 년이 지난 후, K클래식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자주 회자할 정도로,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권 출신 연주자들이 세계 최상위권의 국제 음악 콩쿠르를 휩쓸었고, 그중 국내에서 수학한 국내파가 상당수다. 또한 서구 음악 콘서바토리에서 최상위권 학생은 한국 및 아시아 출신이 대부분인 경우가 이제는 흔한 이야기가 됐다. 서울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도시에서는 이제 베를린, 뉴욕 못지않은 최고 수준의 클래식 공연 이벤트가 하루가 멀다하고 열리고 있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클래식 음악은 우리가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동등한 눈높이에서 교류하고 우리의 예술이 그들의 음악에 스며드는 시대로 넘어왔다.

이제 프로그램 책자에서 눈을 떼서 다시 무대로 옮겨본다. 무대 위에는 검은색의 그랜드피아노 한 대가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었다. 악기 옆면에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글자가 금색으로 각인돼 있었다. 그렇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세계 최고의 피아노 생산 업체 스타인웨이에서 제작한 콘서트 그랜드인 것이다. 스타인웨이는 명품 중의 명품으로 꼽히는 피아노다. 19세기 중엽부터 현재까지 170여 년 동안 피아노를 생산해 오고 있다. 장인 정신이 깃든 생산 방식과 고상하면서도 맑은 스타인웨이 특유의 피아노 음색은 수많은 음악인의 사랑을 받아 현재 전 세계 공연장의 96%가 넘는 곳이 이 스타인웨이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시그니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콘서트 그랜드 D 모델은 한 대 가격이 4억원을 호가하지만, 현대 클래식 공연계에서 거의 ‘표준’에 가까운 위상을 갖고 있기에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 및 음원 녹음 등을 통해 관객과 가장 자주 만나는 악기일 것이다.

이쯤에서 베토벤, 쇼팽이 살던 200년 전으로 생각이 흐른다. 스타인웨이가 있기 전에는 어떤 피아노가 존재했을까. 베토벤과 쇼팽이 살았던 19세기는 가히 피아노의 시대라고 불릴 만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피아노는 개량되며, 신모델이 쏟아져 나왔고 수많은 피아노 제작사가 유럽 곳곳에 존재했으니까 말이다. 그중 몇몇만 열거해 보자면 오스트리아에는 발터, 슈트라이혀, 그라프, 뵈젠도르퍼, 독일에는 슈타인, 시드마이어, 그로트리안 슈타인벡, 프랑스에는 에라르, 플레이엘, 영국에는 브로드우드 등 제대로 언급하자면 두꺼운 백과사전 10권도 모자랄 것이다. 그렇단 이야기는 당시에는 도시, 지방마다 고유의 악기 제작자 및 고유의 악기 소리가 존재했고, 이것은 각 지방에 살던 악기 연주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로도 빈에 거주하던 베토벤, 파리에 거주하던 쇼팽의 피아노 작품을 살펴보면 각 도시에서 생산된 피아노 음향을 잘 살릴 수 있는 연주법을 지시한 내용이 악보에 나와 있다. 필자가 200여 년 전으로 타임캡슐을 타고 가 연주를 구경한다면, 마차를 타고 길이 닿는 곳마다 각 지방 고유의 피아노로부터 다채로운 소리를 듣는 재미가 엄청나지 않을까, 미소를 지으며 상상해 본다. 악기의 소리가 다양한 만큼 수많은 취향이 존재했을 테니 말이다.

이후 시장이 점점 글로벌화하면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제작사들이 점차 도태되기 시작했고, 이후 대형 제작사를 중심으로 피아노 시장은 재편되었다. 그리고 현재 스타인웨이가 거의 모든 콘서트홀에 들어오게 되었다. 물론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두말할 필요 없이 품질 면에서도, 소리의 예술적인 면에서도 최상의 수준을 보여주기에 필자도 항상 연주하고 늘 곁에 가까이 두고 싶은 악기다. 하지만 옛 시대에 다양했던 소리 취향을 생각해 보면 전 세계 피아노 연주장의 색채가 다분히 모노톤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든다.

안종도 연세대 피아노과 교수,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 전 함부르크 국립음대 기악과 강사

물론 현재 스타인웨이 말고도, 유럽에는 ‘뵈젠도르퍼’ ‘벡스타인’ ‘파지올리’ 등의 명품 피아노 제조 업체가 각광받고 있다. 그러면 아시아는 어떨까? 이웃 나라 일본에 ‘가와이’ 와 ‘야마하’를 꼽을 수 있겠다. 그중 야마하는 1887년 토라쿠수 야마하가 설립해 오르간을 제작하다 1900년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생산한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피아노 제작사다. 이후 사업을 확장해 오케스트라에 사용되는 거의 모든 악기를 제작하고 이후 모터사이클 등 다른 분야까지 진출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피아노 제작은 야마하 악기 제조의 근간 철학을 이루는 핵심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필자는 야마하의 초정을 받아 일본 하마마쓰에 있는 본사 피아노 공장에 다녀왔다. 방문 목적은 피아노 소리 테스팅이었다. 매년 전 세계에서 피아니스트들을 초청해 야마하 피아노 소리를 테스팅하며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품질의 소리를 개발할 수 있는지 논의한다. 실제로 필자도 공장 한쪽에 마련된 공간에서 프로토타입 피아노를 테스팅하며 관계자들에게 소리에 관해 의견을 전달했다.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필자의 모든 의견을 꼼꼼히 노트에 기록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물론 현재 야마하도 전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있는 악기이지만 더욱 예술적으로 완성도 있는 소리의 야마하 피아노가 주요 콘서트홀에 모습을 보일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웃 나라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한국도 삼익, 영창이라는 걸출한 두 피아노 제작 회사가 있다. 한때 세계 최대 피아노 수출 회사로 이름을 날리던 때도 있었다. 현재는 주로 보급형 저가 피아노를 생산하고 있다. 조성진, 임윤찬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이 해외 무대에서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악기로 서구권 악기와는 또 다른 아름다운 취향의 소리로 관객을 매혹시킬 날이 올 수 있을까.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해외 못지않은 최고 수준의 악기가 제작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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