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치매 막는‘감마 자극’] 빛과 소리로 뇌 자극, 알츠하이머 치매 막는다

이영완 조선비즈 과학에디터 2024. 4. 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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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로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을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저주파가 뇌에서 노폐물 처리 능력을 높여 알츠하이머 치매를 유발하는 단백질 덩어리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저주파 치료는 이미 환자 대상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데, 치료 원리까지 밝혀지면서 치매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리 후에이 차이(Li-Huei Tsai)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피코워학습기억연구소 연구진이 2월 29일(이하 현지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쥐를 40㎐(헤르츠)의 빛과 소리에 노출하자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같은 독성 단백질들이 더 잘 제거됐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 치매 환자 5500만 명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지만 아직 확실한 치료제가 없는 실정이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뇌에 있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가 원인이라고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의 뇌에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갈색)이 신경세포에 덩어리를 이루고 있고, 타우 단백질(파란색)도 비정상적으로 뭉쳐있다. 사진 미 국립보건원(NIH)

저주파 자극이 뇌 노폐물 처리 촉진

연구진은 앞서 2016년 ‘네이처’에 초당 40회로 깜빡이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으로 생쥐의 시각 피질에서 알츠하이머병에서 보이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를 크게 줄였다고 발표했다. 40㎐ 감마파로 소리와 빛을 주는 ‘감마 자극’은 환자의 신체에 손상을 주지 않고 퇴행성 뇌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큰 주목을 받았다. 이미 실제 환자 대상 임상시험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감마 자극이 어떻게 치료 효과를 내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MIT 연구진은 감마 자극이 뇌의 노폐물 처리 네트워크를 강화해 기억력과 집중력 문제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나 다른 독성 단백질의 제거를 촉진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40㎐의 뇌파는 사람들이 집중할 때나 기억을 형성하거나 기억에 접근할 때 자주 나타난다.

이번 실험은 다른 쥐보다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많이 쌓이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쥐에게 감마 자극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인 쥐는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처럼 기억력이 크게 나빠졌다. 예상대로 쥐에게 저주파 빛과 소리 자극을 주자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가 줄어들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는 40㎐의 감마파가 뇌의 노폐물 처리 네트워크로 알려진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을 강화한 증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치료를 받는 동안 뇌로 들어오는 뇌척수액의 양이 늘고, 림프관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노폐물 양이 더 많아졌다.

2012년 미국 로체스터대 의대의 마이켄 네더가드(Maiken Nedergaard) 교수 연구진은 ‘사이언스 중개의학’에 뇌척수액이 동맥을 둘러싼 성상세포를 통해 뇌세포 사이의 공간으로 침투해 노폐물을 쓸어낸다고 발표했다. 별 모양의 성상세포는 뇌에서 신경세포에 영양분을 준다. 노폐물을 담은 뇌척수액은 정맥 주변 성상세포를 통해 뇌 밖으로 빠져나가 목에 있는 림프계와 합류한다.

생쥐의 뇌 단면. 밝게 염색된 부분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을 제거하는 물질을 방출하는 신경세포이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 사진 MIT

파킨슨병 치료에도 도움 기대

MIT 연구진은 또한 성상세포가 방출하는 ‘아쿠아포린-4(AQP4)’ 단백질이 글림프액 흐름을 증가시킨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화학물질로 이 분자가 만들어지지 못하게 하자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전처럼 제거되지 않았다. 저주파로 자극하면 혈류의 박동도 증가해 노폐물을 담은 뇌척수액을 밀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조너선 킵니스(Jonathan Kipnis) 워싱턴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이날 ‘네이처’에 따로 발표한 논문에서 생쥐의 뇌 해마에서 신경세포가 신호를 발생하지 못하게 하면 노폐물 제거가 차단된다고 발표했다. 해마는 뇌에서 기억과 학습을 담당하는 곳이다. 연구진은 신경세포들이 동시에 작동하는 것이 노폐물 배출에 중요하지, 주파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밝혔다.

언뜻 보기에 워싱턴대의 논문은 MIT 연구진이 40㎐로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힌 연구 결과와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뇌의 노폐물 배출 시스템을 처음 발견한 네더가드 교수는 이날 ‘네이처’에 실린 논평 논문에서 “두 연구 모두 옳을 수 있다” 고 밝혔다. 뇌는 영역마다 각각 적합한 주파수가 있고, 이 주파수는 신경세포가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 효율적인 노폐물 배출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네더가드 교수는 이 점에서 파킨슨병과 같이 신경세포 손실로 발생하는 뇌 질환을 치료하는 데 이번 연구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파킨슨병은 근육의 무의식적인 운동을 담당하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손발이 떨리고 걸음걸이가 무거워지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네더가드 교수는 “뇌에서 국소적인 노폐물 제거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글림프 시스템의 치료 잠재력을 여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가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2023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았다. 사진 에자이

다시 살아난 아밀로이드 가설

이번 결과는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라는 ‘아밀로이드 가설’ 을 다시 확인한 결과다. 아밀로이드 가설 이후 30년 넘게 제약사들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덩어리를 제거하는 약을 개발했지만 뚜렷한 성과가 없어 가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아밀로이드 가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 미네소타대의 2006년 네이처 논문이 조작됐다는 발표도 나와 충격을 줬다.

아밀로이드 가설에 따라 개발된 약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는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아두헬름(성분명 아두카누맙)’을 개발해 2021년 6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았다. 아두헬름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에 결합하는 항체 의약품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 약을 사실상 거부했다. 전문가위원회는 FDA에 회사가 진행한 임상시험 두 건의 결과가 다르다며 허가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FDA 승인 후에도 미국 건강보험 회사들이 아두헬름을 거부했다.

두 회사는 아두헬름의 실패를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로 극복했다. 레켐비는 아두헬름 같은 항체 치료제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에 결합해 다른 면역세포의 공격을 유도한다. 2022년 말 미국 예일대 연구진은 이 약이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능력 감퇴를 27% 늦췄다고 발표해 알츠하이머 가설에 다시 힘을 실어줬다. 레켐비는 2023년 7월 FDA로부터 두 번째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정식 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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