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광훈의 산인만필(散人漫筆) <36> 난초에 대한 단상] "본래 깊은 골에서 났는데, 어찌 세상 오락거리가 되려 하겠나?"

홍광훈 문화평론가 2024. 4. 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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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기르고 있는 중국난 ‘춘려(春麗)’. 얼마 전에 꽃이 탐스럽게 피어 은은한 향기를 내뿜고 있다. 사진 홍광훈

기원전 7세기 중반 춘추시대의 정(鄭)에 연길(燕姞)이라는 궁녀가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꿈에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으로부터 난초 한 포기를 받았다. 그 사람은 백조(伯鯈)라는 이름의 조상이었다. 그는 “난초에 국향(國香)이 있어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할 것이므로이를 너의 아들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 꿈을 문공(文公)에게 말해 주었다. 문공은 길몽이라 여기고 그녀에게 신표로 난초를 주었다. 그렇게 해서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란(蘭)’이라고 지었다. 이 사람이 훗날 문공의 뒤를 이어 목공(穆公)이 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선공(宣公) 3년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사기’의 ‘정세가(鄭世家)’에도 그대로 인용돼 있다. 정나라가 있던 허난성(河南省) 중부는 위도상 우리의 남부에서 제주도 일대에 해당돼 지금도 여러 종류의 난이 많이 자생한다.

이처럼 난초가 오랜 옛날부터 향기로써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오면서 ‘국향’이 난초의 대명사가 됐다. ‘역경(易經)’의 ‘계사(繫辭)’ 상편에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같은 마음의 말은 그 냄새가 난초와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고 한 것도 향기로는 난향을 최고로 쳤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이런 까닭으로 난초는 교양과 덕성을 갖춘 군자의 상징처럼 자주 언급된다. ‘순자(荀子)’의 ‘유좌(宥坐)’ 편에는 공자(孔子)가 “향초와 난초는 깊은 숲에서 자라지만 사람이 없다고 해서 향기를 안 뿜지 않는다(芷蘭生於深林,非以無人而不芳)”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자는 때를 잘 만나든지 못 만나든지 남이 알아주든지 몰라주든지에 상관없이 언제나 제 뜻을 굽히지 않고 올곧게 살아간다는 뜻이다. 전한 말기의 유향(劉向)도 ‘설원(說苑)’의 ‘잡언(雜言)’ 편에서 공자의 입을 빌어 “착한 사람과 있으면 난초나 향초가 있는 방에 들어간 것처럼 시간이 지나 그 향을 맡지 못하니, 이와 동화된 것이다(與善人居, 如入蘭芷之室, 久而不聞其香, 則與之化矣)” 고 했다. 이어서 “악한 사람과 있으면 절인 생선 가게에 들어간 것과도 같이 시간이 지나 그 냄새를 맡지 못하고 역시 동화된다(與惡人居, 如入鮑魚之肆, 久而不聞其臭, 亦與之化矣)”는 말이 따른다.

홍광훈 문화평론가,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전 서울신문 기자,전 서울여대 교수

후한 말기의 채옹(蔡邕)은 ‘금조(琴操)’에서 ‘의란조(猗蘭操)’라는 악곡을 설명할 때 공자를 등장시켜 난향을 ‘왕자의 향’이라고 극찬했다. 타국에서 뜻을 이루지 못한 공자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도중 깊은 골에 피어있는 난초를 보고, “왕자향(王者香)이 지금 홀로 무성해 뭇 풀들과 짝하고 있으니, 현자가 때를 못만나 천한 자들과 어울려 있는 꼴” 이라고 탄식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당 전기의 구양순(歐陽詢) 등이 편찬한 ‘예문유취(藝文類聚)’라는 ‘유서(類書·백과사전)’에 인용돼 전해진다.

그러나 귀하게 대접받는 이 화초도 상황에 따라서 제거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산속이나 집 안의 정원이 아닌 문 앞에서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다. 물론 세상일을 빗댄 하나의 비유다. ‘삼국지(三國志)’의 ‘촉서(蜀書)’에는 주군(周群)과 함께 앞일을 잘 예측하기로 유명했던 장유(張裕)가 유비(劉備)의 명으로 처형되는 기사가 실려 있다. 유비가 한중(漢中)을 공격, 병합할 때 전세가 불리할 것이라는 잘못된 예측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선처를 간청했지만, 유비는 “향기로운 난초라도 문 앞에서 자란다면 캐내지 않을 수 없다(芳蘭生門, 不得不鉏)”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개인적인 감정이 숨어 있었다. 유비가 갓 촉 땅에 들어왔을 때 유장(劉璋)의 신하로 있던 장유가 수염이 없는 유비를 놀린 일이 있어 원한을 샀던 것이다.

이 일은 후일 훌륭한 인재라도 권력자의비위를 거스른다면 해를 당한다는 고사로 자주 활용된다. 남북조시대 송(宋)의 원숙(袁淑·408~453)은 유담(劉湛)이 자기편에 붙어달라고 청할 때 다음의 시로 거절의 뜻을 전했다. “난초를 심을 때에는 문 앞 가로막음을 꺼리고, 옥돌을 품으면 초나라로 향하지 말지니라. 초에는 옥을 알아내는 사람이 적고, 문 앞은 난초 심을 곳이 아니라네(種蘭忌當門, 懷璧莫向楚. 楚少別玉人, 門非種蘭所).” 자기는 성격상 상대의 비위를 맞출 수 없고 상대도 ‘화씨벽(和氏璧)’을 알아주지 못한 초왕과 같이 자신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남송의 육유(陸遊)도 ‘란(蘭)’ 이란 시에서 이 고사를 빌려 욕심 없는 자신의 강직한 내면을 피력했다.

“남암 길이 가장 가까워, 밥 먹은 뒤 지팡이 짚고 거닐었다. 향이 다가와 난초 있음을알았지만, 갑자기 찾으려 해도 얻지 못했다. 본래 깊은 골에서 났는데, 어찌 세상 오락거리가 되려 하겠나? 궁궐 계단 앞뜰에 몸 맡길 마음 없으니, 문 앞에서 군주가 캐내도록 버려두겠네(南岩路最近, 飯已時散策. 香來知有蘭, 遽求乃弗獲. 生世本幽谷, 豈願爲世娛? 無心托階庭, 當門任君鋤).”‘시경(詩經)’에는 온갖 초목들이 등장하나 정작 난초는 보이지 않는다. ‘환란(芄蘭)’이란 식물이 나오지만, 이는 덩굴류인 박주가리를 가리킨다. 반면에 굴원(屈原)의 ‘이소(離騷)’를 비롯한 ‘초사(楚辭)’에서는 자주 언급된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겠다는 시인의 고고한 내면세계를 난초로 비유하려 한 까닭이다. 예를 들어 “나는 이미 구 원 넓이의 난을 기르고, 또 백 묘의 혜를 심었다(余既滋蘭之九畹兮, 又樹蕙之百畝)”라는 식이다. ‘혜(蕙)’는 일반적으로 한 줄기에서 여러 송이의 꽃이 피는 난초를 가리킨다.

‘이소’에서는 또 난초 등의 향기로운 풀에 상반되는 개념으로 ‘소애(蕭艾)’를 등장시켰다. “어찌하여 옛날의 향긋한 풀이 지금은 그저 이 쑥대와 같이 됐나(何昔日之芳草兮, 今直爲此蕭艾也)”라는 표현이다. 동진의 모현(毛玄)이 자기의 재능을 자부하여 “차라리 난과 옥처럼 꺾이고 부서지더라도 쑥대처럼 번성하지 않으리(寧為蘭摧玉折, 不作蕭敷艾榮)”라고 호기를 부린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언어(言語)’ 편에 보인다.

도연명(陶淵明)은 ‘음주(飮酒)’ 20수의 한 작품에서 “그윽한 난초 앞뜰에서 자라나, 향기 품고 맑은 바람 기다린다. 맑은 바람 불현듯 불어오니, 쑥대 속에서 별다른 모습 보이네(幽蘭生前庭, 含薰待淸風. 淸風脫然至, 見別蕭艾中)”라고 자신을 넌지시 쑥대 속의 난초로 비유했다.

이백 또한 ‘오송산에서 남릉의 상찬부에게 보냄(於五松山贈南陵常贊府)’이란 장시의 앞에서 이렇게 읊은 바 있다. “풀이라면 난초가 되고, 나무라면 소나무가 되어라. 난초는 가을에 향긋한 바람 멀리 보내고, 소나무는 추워도 얼굴 바꾸지 않는다. 소나무와 난초는 서로 의지하는데, 쑥대는 공연히 풍성해지기만 하노라(爲草當作蘭, 爲木當作松. 蘭秋香風遠, 松寒不改容. 松蘭相因依, 蕭艾徒豐茸).”

백거이(白居易)는 이 두 식물을 대비시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살이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답답한 마음을 친구에게 묻는다. ‘문우(問友)’라는 고체시(古體詩)다.

“난초를 심고 쑥은 심지 않았거늘, 난이 자람에 쑥 또한 생겨났다. 뿌리는 함께 엉켜 자라고, 줄기와 잎도 서로 붙어 무성해진다. 향긋한 줄기와 냄새 고약한 잎은, 밤낮으로 모두 자란다. 쑥을 캐내려 하면 난이 상할까 두렵고, 난에 물 주면 쑥을 키울까 두렵다. 난에도 물을 못 주고, 쑥도 없애지 못한다. 망설이며 뜻을 정하지 못하여, 어찌해야 할지 그대에게 묻노라(種蘭不種艾, 蘭生艾亦生. 根荄相交長, 莖葉相附榮. 香莖與臭葉, 日夜俱長大. 鋤艾恐傷蘭, 溉蘭恐滋艾. 蘭亦未能溉, 艾亦未能除. 沉吟意不決, 問君合何如).”

당 말기와 오대 초기에 살았던 한악(韓偓)도 ‘우제(偶題)’라는 제목으로 현실에서의 그러한 모순을 이렇게 탄식했다. “때를 기다림과 가벼이 나아감은 본래 서로 어긋나지만, 붉은 마음 진실로 행해 저 푸른 하늘에 기댔노라. 그러나 쑥대는 도리어 살찌고 난초는 야위니, 하늘 또한 깊은 향기 시샘하는 것인가(俟時輕進固相妨, 實行丹心仗彼蒼. 蕭艾轉肥蘭蕙瘦, 可能天亦妒馨香)?”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나는 난초는 중국과 달리 일부 품종 이외에는 대부분 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잎과 꽃의 특이한 무늬나 모양과 색깔에 그 가치를 두어 감상한다. 희귀종은 한 촉당 수억원에 거래된다는 소식도 이따금 들린다. 난초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서 생각하면 아무래도 씁쓸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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