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의 여행이라는 꽃다발 <35> 경북 경주] 봄이 오는 소리에 발길 닿는 곳…경주 해국길과 성동시장

최갑수 여행작가 2024. 4. 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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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감포 해국길. 사진 최갑수

봄이 왔다. 곧 경주는 벚꽃으로 뒤덮일 것이다. 이 봄 벚꽃만 보기에는 먼 걸음 수고가 아깝다. 아직은 조금 덜 알려진 해국길에도 가보자. 바다 드라이브도 함께 즐길 수 있다. 경주 성동시장에서 맛있는 경주 음식을 맛보면 일정이 더 알차다.

지금 딱 걷기 좋은 길

경주에 ‘감포 깍지길’이 있다. 감포항을 중심으로 해안과 마을 등을 잇는 길이다. 이 가운데 4구간 ‘해국길’은 옛 골목의 정취를 간직한 길이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인 건물 사이로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600m 정도로 길지 않지만, 이름처럼 벽마다 그려진 해국을 보며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천천히 걸어도 30분이면 충분하다.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골목은 감포항 앞에 자리한 감포공설시장 건너편에서 시작한다. 벽에 조그만 간판이 달렸는데, 주변 상인에게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다. 해국 골목, 해국 계단, 옛 건물 지하 창고, 다물은집, 한천탕, 우물샘, 소나무집순으로 걸으면 된다. 골목은 밖에서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좁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너비에, 몸을 옆으로 돌려야 통과할 수 있는 곳도 많다. 길바닥에는 거친 시멘트를 발랐다. 골목 양옆으로 작은 집들이 있는데,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설 법한 대문이 달렸고 창문은 도화지만 하다.

골목을 따라가는 벽마다 해국이 그려졌다. 색깔이며 모양이 전부 다르다. 하얀 해국도 있고, 보랏빛을 뽐내는 해국도 있다. 시간이 꽤 흘렀는지 색깔이 바랜 해국도 눈에 띈다. 깊어가는 가을, 해국 그림 앞에 진짜 해국이 한 무더기 피어 여행객을 반긴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시야가 확 트이면서 바닥에 커다란 딱정벌레가 그려진 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난 비탈길을 오르면 교회와 놀이터가 있는데, 이곳에서 감포항과 동해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커다란 해국이 그려진 계단이다. 해국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포토 존으로, 여행객은 저마다 사진을 찍으며 추억을 남긴다.

계단을 지나 골목을 따라가면 세월의 깊이가 느껴지는 건물이 보인다. 갈색 문을 단 이건물 벽에는 ‘옛 건물 지하 창고’라는 안내판이 있다. 대피소 겸 지하 창고로 사용되던 건물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2~3분 거리에 ‘다물은집’이라는 일본식 가옥이 있다. 원래 해국길 주변은 1920년대 개항한 뒤 일본인 이주 어촌이 형성된 곳으로, 당시 가장 번화한 거리였다고 한다. 다물은집은 일본 어민이 촌락을 이룬 흔적이다. 해국길을 걷다 보면 옛 일본 가옥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국밥집, 약국, 세탁소 등으로 사용된다.

다물은집 건너편에 자리한 건물은 우뚝 솟은 굴뚝이 시선을 붙잡는다. 목욕탕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건물 옆으로 난 길을 따라 100여m 가면 오래된 우물 터가 나온다. 두레박이 있고 우물 속에 물도 찰랑이지만, 마실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던 우물이라고 한다.

해국길 건너편 감포항에서 북쪽으로 10여 분 올라가면 송대말등대가 있다. 송대말은 ‘소나무가 우거진 대의 끝부분’이라는 뜻. 이름처럼 절벽 끝에 용틀임하듯 휜 소나무들이 있고, 그 사이로 푸른 동해가 흰 파도를 일으키며 넘실댄다. 소나무 숲을 지나 절벽 가까이 내려가면 새하얀 등대 2기가 보인다. 왼쪽관리소 건물 위에 있는 것은 감은사지삼층석탑을 본떠 지은 새 등대고, 그 옆에 1955년 무인 등대로 세운 옛 등대가 있다. 등대 아래로 검은 갯바위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이 멋지다. 바위에서는 낚시꾼들이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송대말등대에서 나와 경주 문무대왕릉과 감은사탑을 보고, 경주 시내를 여행하는 코스로 잡으면 된다. 문무대왕릉은 삼국 통일을 완수한 문무왕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묻힌 곳. 일출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문무대왕릉에서 경주 시내로 가는 길에 완벽한 조형미로 ‘신라 탑의 전형’이라 불리는 감은사탑이 자리한다.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는 감은사탑의 조형미가 보는 이를 매료한다.

경주의 부엌, 성동시장

세상인심이 각박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인심과 정이 남아있는 곳을 찾으라면 전통시장 아닐까. 떠들썩한 시장 골목을 걷고 있노라면 기운도 절로 솟아나는 것 같고 마음이 절로 넉넉해지는 것만 같다.

천년고도 경주에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시장이 있다. 경주를 대표하는 시장인 성동시장이다. 경주역에서 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바로 시장이라 경주 시민뿐만 아니라 여행객도 많이 찾는다.

원래 성동시장은 지금 시내 중심가에 자리한 명동의류공판장 자리에 있었다. 규모도 약 1300㎡(400평)으로 작았다. 의류며 공구, 간단한 먹을거리 등 저렴한 물건만 팔았기 때문에 염매시장으로 불렸다. 염매는 ‘염가 판매’의 줄임말이다.

성동시장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온 때는 1971년이다. 당시에는 약 3300㎡(1000평) 규모로 큰 시장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경주시가 점점 커지면서 시장도 함께 성장했다. 지금은 약 1만3223㎡(4000평)에 달하는 경주 최고의 시장으로 꼽힌다. 먹자골목, 생선 골목, 폐백 음식 골목, 채소 골목, 의류 골목 등에 600여 개의 상점이 입점해 있는데, 경주뿐 아니라 언양, 울산 사람들도 찾아온다.

문어가 가득 매달린 성동시장. 사진 최갑수

성동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어물전마다 걸린 커다란 문어다. 유교 전통이 강한 경북 지역에서는 집안 대소사나 제사 등 큰 행사 때 반드시 문어를 준비해야 한다. 문어 다리를 반으로 잘라 꼬치에 가지런히 꿴 뒤 소고기, 상어고기 등과 함께 상에 올린다. 문어의 이름에 ‘글월 문(文)’ 자가 들어가 선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실제로 문어의 먹물로 먹을 대신하기도 했다.

참치처럼 보이는 생선 토막도 있는데, 이는 소금에 절여 숙성시킨 상어고기다. 경주를 비롯한 안동, 영주, 영천, 봉화, 청송 등 경북 지역에서는 ‘돔베기’ ‘돔베고기’ 등으로 부른다. 상어고기를 ‘돔박 돔박’ 썰어내 돔베기가 됐다는 말이 있고, ‘돔발상어’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전라도 제사상에 ‘홍어’가 빠지지 않듯 경상도 제사상에는 ‘돔베기’가 빠지지 않는다.

걸어서 더 좋은 경주

경주는 걸어서 여행하기 좋은 도시다. 신라대종은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을 재현한 종이라는데, 높이가 3.66m, 평균 두께가 20.3㎝, 무게는 무려 20.17t이 나간다. 신라 경덕왕 때 만들기 시작해 혜공왕에 이르러 완성한 이 종은 1200여 년 동안 서라벌의 아침을 깨웠고, 저녁의 고단함을 위로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종을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그 마음을 짐작해 보지만 쉽게 헤아려지지 않는다. 그 종소리를 상상하며 대릉원 방향으로 걷는다.

경주를 고도답게 하는 것은 대릉원을 위시한 왕들의 고분군이 아닐까 싶다. 경주는 세계 최고의 고분 도시다. 노서·노동동 고분군을 비롯해 대릉원이며 황오리 고분군, 황남리 고분군, 내물왕릉, 오릉 등 무덤들 사이에 도시가 들어앉아 있는 형국이다.

대릉원에서 나오면 황리단길이다. 경주에서 가장 트렌디한 곳이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 독립 서점 등이 몰려 있다. 저녁 무렵부터 많이 붐빈다. 홍상수 감독이 영화 ‘생활의 발견’을 이곳에서 찍기도 했다.

황리단길을 건너면 첨성대고, 첨성대를 지나면 계림이 나오고 곧 월성에 닿는다. 월성은 신라의 궁궐이 있던 자리인데, 이곳에 오르면 대릉원과 황오동 등 경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경주 야경 산책 밤에는 동궁과 월지를 걸어보자. 동궁은 태자가 살던 신라 왕궁의 별궁, 월지는 동궁 안에 있는 연못이다. 노을이 질 때쯤 조명이 들어온다. 조명을 받은 동궁의 처마가 환하다. 신라 1000년의 밤은 얼마만큼이나 화려했을까 하고 절로 상상하게 된다.

성동시장 먹자골목 성동시장 뷔페 골목은 성동시장 먹자골목을 대표하는 명소다. 경주 사람들은 이곳을 ‘합동식당’이라고 부른다. 6㎡(약 2평)도 안 되는 작은 식당 10여 곳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기다란 테이블에는 콩나물, 두부조림, 버섯볶음, 오이무침, 멸치무침, 동그랑땡, 계란말이, 불고기 등 20여 가지가 넘는 반찬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게다가 무한 리필이다. 접시에 먹고 싶은 반찬을 담으면 주인 아주머니가 따뜻한 밥과 국을 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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