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만장자 트럼프의 ‘머니리스크’

정의길 기자 2024. 4. 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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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 #트럼프 사법리스크
트럼프 머그샷. 트럼프는 이 머그샷 이미지로 각종 ‘굿즈’를 만들어 판매했다.
정의길의 글로벌 파파고는?

파파고는 국제공용어 에스페란토어로 앵무새라는 뜻입니다. 예리한 통찰과 풍부한 역사적 사례로 무장한 정의길 선임기자가 에스페란토어로 지저귀는 여러분의 앵무새가 되어 국제뉴스의 행간을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지?

뉴욕 항소법원은 2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야 할 공탁금을 기존 4억6400만달러(약 6207억원)에서 1억7500만달러로 줄인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업 과정에서 자산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대출 사기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뉴욕주 검찰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해 1심에서 벌금 4억6400만달러를 부과받았다. 법원은 이날이 시한이었던 공탁금 납부 기간도 열흘 연장했다.

앞서 변호인단은 공탁금으로 낼 벌금 보증 채권을 마련하려고 약 30곳을 접촉했지만 보증 대상 금액이 워낙 커 채권 발행사를 구할 수 없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뉴욕주 검찰은 애초 설정된 공탁금을 내지 못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소유한 건물이나 골프장을 압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법원에 감사하다는 뜻을 밝히면서 공탁금을 현금으로 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탁금 대폭 감경이 발표된 지 1시간도 안 돼 형사사건 심리에서 실망스러운 통고를 받았다. 성관계 입막음 돈 지급과 관련된 회계 부정 사건을 다루는 뉴욕 1심 법원이 다음달 15일을 첫 공판기일로 지정하면서다. 4건의 형사사건 선고를 11월 대선 뒤로 미루고 선거에서 승리해 책임을 피하려는 트럼프 전 대통령 쪽 계획에 차질이 발생한 것이다. (3월26일, 한겨레)

Q. 트럼프는 미국 역대 대통령 후보 중 최고 부자라잖아. 그런데 돈 문제에 쩔쩔매고 있네?

A. 트럼프가 각종 민·형사 소송에 걸려있다는 거 알지? 그 소송으로 엄청난 벌금을 두들겨 맞고 있거든.

2022년 9월 뉴욕주 검찰총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과 트럼프그룹이 은행과 보험사로부터 유리한 거래조건을 얻으려고 자산 가치를 허위로 신고했다고 벌금을 부과하면서 뉴욕주에서 사업을 못 하도록 해달라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었어. 이에 대한 판결이 지난 2월16일 나왔어. 뉴욕 맨해튼지법이 트럼프 일가가 자산을 허위로 부풀려 신고해 대출 관련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3억6400만 달러(약 4800억원)의 벌금을 선고한 거지. 재판부는 벌금에다가 재판 과정에서 발생한 이자를 더해서 모두 4억5천만달러(약 6천억원)을 내야 한다고 결정했어.

트럼프는 물론 항소했지만 일단 벌금을 공탁금으로 내야 해. 트럼프가 부자이긴 한데, 대부분 자산이 부동산이라서 법원에 낼 현금이 없어. 통상적으로 이런 경우엔 보증회사에 부동산을 담보로 잡히고 공탁금을 대신 내달라고 하거든. 그런데 보증회사들이 트럼프와의 거래를 거부하는 바람에 돈을 구하지 못했어. 이에 트럼프는 항소법원에 공탁금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지.

지난 3월25일이 공탁금을 내야 하는 날이었거든? 뉴욕주 검찰은 이날까지 돈을 안 내면 트럼프 건물·골프장·전용기 등을 압류하겠다고 압박했지. 그런데 뉴욕주 항소법원이 공탁금을 1억7500만달러(2300억원)로 낮춰주고 납부 기한도 열흘을 준 거야. 트럼프로선 한숨 돌린 거지.

트럼프는 성폭행 피해자인 여성 칼럼니스트인 진 캐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벌금 8330만달러를 물어야 한다. 2023년 9월 맨해튼 연방법원에 도착한 진 캐롤. AP 연합뉴스

Q. 돈 많다고 떠벌리더니 개망신이네.

A.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잖아. 포브스는 트럼프 순자산을 26억달러(3조4천723억원)로 추산하는데 최근 미국에서 상업용 부동산이 침체되면서 트럼프에게서 자산 비중이 가장 높은 부동산값이 많이 떨어졌어. 그가 보유한 재산 가치도 다분히 뻥튀기된 정황이 짙어. 보증회사들이 공탁금 보증 서주기를 꺼린 게 이런 이유야.

한마디 더 해볼까. ‘소송에도 장사 없다’. 트럼프가 걸려 있는 민형사소송 사건의 혐의를 모두 합하면 91건이야. 엄청나지? 이중 감옥에 갈 수 있는 가장 심각한 사건은 2021년 1월6일 트럼프 지지자들이 저지른 의회 폭동이야. 트럼프는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 한 이 엄청난 사건을 사주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다만 이 재판은 대선 전에 열릴 가능성이 적어. 트럼프는 자신의 재임 기간 중 일이라면서 면책특권을 주장하고 있어. 이 사건은 연방대법원까지 갈 텐데,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대법관 다수가 자기가 임명한 보수적 법관이니까 사실상 ‘셀프 사면’을 하겠지.

가장 위험한 형사사건은 성인영화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가 성관계를 폭로하려던 것을 돈으로 입막음했다는 의혹이야. 2016년 대선 직전 개인 변호사를 통해 스토미 대니얼스를 돈으로 회유하고, 회사 기록을 조작해 그 비용을 마련했다는 혐의인데 지난해 3월 재판에 넘겨졌어. 트럼프 쪽은 이 재판 역시 연기시키려고 했지만 결국 4월15일 재판이 열리게 됐어. 이미 트럼프는 성폭행을 당했다며 소송을 낸 여성 칼럼니스트 진 캐럴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벌금 8330만달러(1100억원)을 내야 해.

Q. 와, 벌금도 벌금이지만 법률비용만 해도 어마어마하겠다.

A. 어, 블룸버그는 트럼프가 지난해 법률 비용으로 5120만달러(약 683억원)를 썼고, 앞으로 변호사에게 줄 돈이 2660만달러(약 355억원)라고 보도했어. 소송비용 때문에 7월쯤 되면 선거운동 자금이 잠식된대. 트럼프의 개인 선거운동 모금기구인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의 기부금 중 71%를 법률비용으로 썼다는구먼. 트럼프에게 ‘사법리스크’는 곧 ‘머니리스크’야.

Q. 그런데 선거자금을 개인 변호사 고용비로 써도 되나? 한국에선 정치자금을 기부받아 개인 비용으로 쓰면 불법이잖아.

A. 미국의 정치자금 시스템을 설명해줄게. 미국의 정치자금은 ‘소프트 머니’와 ‘하드 머니’로 나뉘어. 하드 머니는 개인이 직접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주는 정치자금으로 1인당 2천달러가 상한이야. 정치활동에만 써야 하고.

반면 소프트 머니는 개인 포함 기업·단체 등이 특정 정치인이 아니라 정치활동 전반을 위해 기부하는 돈으로 규제가 거의 없다시피 해. 주로 특정 정치활동을 표방한 정치활동위원회(PAC, 팩)라는 단체가 구성돼 모금활동을 벌여. 형식적으로는 특정 정치인과는 연계되지 않았지만 사실상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운동을 벌일 수 있어.

특히, 팩 중에서도 최고봉인 ‘슈퍼 팩’은 ‘독립적 지출 정치행동위원회’라고 하는데, 무제한 모금이 가능해. 특정 정치인에 대한 찬반 광고도 할 수 있고. 트럼프의 ‘마가’가 바로 슈퍼팩이야. 지출이 무제한인 ‘리더십 팩’이라는 것도 있어. 특정 정치인과 연계되지 않아야 한다는데 눈 가리고 아웅이지 뭐. 트럼프뿐만 아니라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모두 이렇게 팩을 통해 선거운동 자금을 조달했어.

Q. 트럼프는 열성 지지자들도 많다며. 모금 많이 하면 되잖아.

A.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백인 중하류층들로부터 소액 개인기부를 많이 받았어. 반면 공화당을 후원하던 전통적인 상류층, 부자, 기업들은 트럼프의 막가파 행태를 못마땅해했지. 이번 대선에서도 코크 형제 같은 공화당 ‘큰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어.

소액 개인 후원금이 많은 건 정치인으로선 뿌듯한 일이겠지만 역시 큰손이 움직여야 큰돈이 들어오는 거지. 아무리 개미 유권자들이 열광해도 기업이 이탈하면 고전할 수밖에 없어. 트럼프의 ‘리더십 팩’인 ‘세이브 아메리카’는 지난 2월 기준 3700만달러를 모금했는데, 바이든은 1억5500만달러를 모았어.

트럼프는 공화당 정식 후보로 지명되는 7월 전당대회를 학수고대하고 있어. 개인 모금 비용은 법률비용으로 쓰고, 선거운동 비용은 공화당 자금을 쓰겠다는 거지. 트럼프가 당내 경선 때 경쟁자인 니키 헤일리를 집요하게 공격한 것도, 헤일리가 빨리 사퇴해야 공화당 자금을 장악할 수 있어서였어.

트럼프는 지난해 11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의 로나 맥대니얼 위원장한테 ‘내가 사실상 공화당 대선 후보 아니냐. 당 자금을 쓰게 해달라’고 했어. 맥대니얼이 다른 경쟁 후보들도 있다는 이유로 망설이자 압력을 넣어 12월에 사임하게 만들었어. 그리곤 자긴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를 공동의장으로 내정했어. 정말 사익 추구의 끝판왕이라니까!

트럼프가 2020년 6월1일 워싱턴의 성 요한 교회를 방문하면서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 트럼프는 지지자들에게 ‘신이여, 미국 성경을 축복하소서’라며 성경 구입을 촉구하는 동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 소셜’에 올렸다. AP 연합뉴스

Q. 그렇다고 공화당 큰손들이 계속 호주머니에 손 넣고만 있을까?

A. 고민이 크겠지. 트럼프가 못마땅하다고 해서 민주당을 도울 순 없으니. 공화당 경선이 끝나니까 결국 헤일리를 지원했던 큰손들도 트럼프에 보험 들려고 움직이고 있다고 해. 의회 폭동 사태 직후 트럼프 지지를 후회한다고 밝혔던 ‘월가 거물’ 넬슨 펠츠는 3월 초 트럼프의 플로리다 호화 저택에서 조찬을 함께하고 난 뒤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했어. 부동산 재벌 로버트 비글로, 석유 재벌 헤럴드 햄도 이미 거액을 후원했고.

아무래도 바이든이 ‘백만장자세’(세율 25%)를 공언하고 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트럼프를 돕는 거지.

트럼프의 소셜미디어 플랫포인 ‘트루스 소셜’ 주가가 3월26일 상장 직후 폭등한 모습. AFP 연합뉴스

Q. 그래도 트럼프가 최근 호재를 만났다고 들었는데? 그가 엑스(트위터)에 대항해 만든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이 상장해서 대박을 쳤다며.

A. 트루스 소셜의 회사인 ‘트럼프 미디어&테크놀로지그룹’이 지난 26일 뉴욕 나스닥 증시에 상장됐지. 대박이 난 건 맞아. 첫날에 16%, 이튿날에 14%가 폭등했어. 사흘째부터 주가가 내려가기는 했는데, 이 회사 시가총액이 80억달러까지 갔어. 트럼프가 회사 주식 60%를 소유하고 있으니 51억달러 번 거지.

그런데 미국 법상 상장 주식은 6개월간 의무 보유해야 한대. 트럼프가 이사회 특별 승인을 얻으면 지분을 조기 매각할 순 있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주가가 폭락할 게 뻔하잖아. 아마 트럼프로선 이 주식을 담보로 맡겨서 법률비용을 대겠지.

트루스 소셜이 언제까지 상종가를 칠지 불투명해. 사실 트루스 소셜은 설립 첫 9개월 동안 330만달러 수입에 4900만달러 순손실을 기록한 보잘것없는 회사야. 현재 시가총액은 엄청난 거품인 셈이지.

투자자들이 몰린 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거라는 기대심리 때문일 텐데, 트럼프 지지율이 지지부진하면 폭락 가능성이 크지. 트럼프가 주식을 팔 수 있는 10월이 되면 과연 주가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어. 그때쯤이면 사법리스크도 더 커질 수 있어. (절대 트루스 소셜에 투자하지 말길!)

트럼프 소셜 미디어 ‘트루스 소셜’ 화면 캡처.

Q. 그런데 듣다 보니 근본적 의문이 들어.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트럼프 죽이기’일까, 아니면 법 앞에서 만인의 평등일까?

A. 나는 일단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대통령까지 지내고 다시 대선에 나오는 사람이 이렇게 민·형사 소송에 줄줄이 걸린 것은 그 소송의 타당성을 떠나서 미국 사회와 정치가 엄청나게 오작동하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거지. 사실 이 정도 문제 있는 사람이라면 정치를 그만두는 게 정상적인 사회잖아.

하지만 미국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진영끼리 격돌하고 상대방을 배제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졌어. 자기편이면 범죄 혐의가 있어도 넘어가고, 상대편이면 별것 아닌 혐의로도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거지. 정치란 건 법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타협과 조정으로 해결하는 거잖아. 그런데 쟁점이 되는 이슈를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니 자꾸 검찰이나 법원으로 넘어가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미국과 마찬가지잖아.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으로 홍해 가르듯 싹 나뉘어서 싸우다가 툭하면 검찰로 넘겨버리잖아. 이렇게 정치를 포기할 바엔 국회의원·대통령 뽑지 말고, 검사나 판사에게 통치를 맡기면 되잖아? 얘기하다 보니 서글퍼지네. 미국·한국 정치 모두 개탄스럽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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