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아버지를 이웃이 발견했다… 짖어댄 우동이 덕분이었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2]

박동미 기자 2024. 4. 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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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정이현
반려동물 - 남겨진 것
일러스트 = 토끼도둑 작가

우경과 영민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비교적 평범한 부부라는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겐 아홉 살짜리 딸 솔이가 있었다. 눈치 없는 누군가가 ‘둘째 계획은?’이라고 물어오면 우경과 영민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솔이는 동생을 갖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우경은 ‘나중에’라며 대충 상황을 모면하곤 했지만 남편 영민은 달랐다. “아니”라고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안 되는 걸 빨리 포기하도록 돕는 게 효과적인 교육법이라는 남편의 생각에 우경도 동의했다. 동생 대신 강아지, 라고 아이가 입장을 바꾼 건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였다.

“대신이라는 표현은 잘못됐어. 강아지도 하나의 생명체니까.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대신할 수는 없잖아.”

영민이 말했지만 솔이는 수긍하지 않았다.

“그래도 키우고 싶다고요.”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는 없어. 본인이 완전히 책임질 수 있을 때 하는 거지.”

“내가 책임질 수 있어요.”

“너는 아직 어린이잖아. 어린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영민의 말에 솔이는 의기소침해졌다. 우경이 아이를 달랬다.

“우리 이번 주말에 우동이 보러 갈까?”

“아니야. 나는 진짜 귀여운 나만의 아기 강아지를 원한다니까요.”

우동이는 우경의 친정에서 키우는 개 이름이었다. 재작년에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론 아버지가 홀로 키우고 있었다. 우경이 우동이를 처음 본 것은 솔이가 배 속에 있을 때였다. 오랜만에 내려간 고향 집 마룻바닥 한가운데에 흰색 털의 어린 발바리 한 마리가 철퍼덕 엎어져 있었다. 동네 어귀 분식집 사장님이 돌보던 유기견이 출산을 했는데 그중 한 녀석을 얻어왔다고 했다.

“얘는 품종이 뭐래요? 순종은 아닌 거 같고.”

“아니 요즘에도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다 있나.”

아버지가 강아지의 뒤통수를 연신 쓰다듬으며 느리게 대꾸했다. 무뚝뚝하던 아버지에게 저런 면이 있었나 신기했다.

“어찌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몰라. 종일 먹고 종일 싸고. 애 하나 키우는 거랑 똑같다니까.”

우경의 어머니는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강아지를 바라보는 눈빛에선 애정이 뚝뚝 떨어졌다. 우경은 내색하기 어려운,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얼마 후면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었다. 부모님은 맞벌이 딸의 육아 계획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손주를 봐주마, 얘기 역시 빈말이라도 하신 적이 없었다.

“어차피 엄마 몸도 약하고 너무 멀리 계셔서 난 아기 맡길 생각도 안 했어. 어른들 적적하신데 다행이지 뭐.”

영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우경은 괜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부모님은 귀한 늦둥이 돌보듯 정성껏 강아지를 키웠다. 어쩌다 두 분이 함께 딸의 집에 와도 혼자 남은 개 걱정이었고, 개밥을 줘야 한다면서 후딱 일어나려고 했다.

“사료 자동 급식기가 있다던데. 한번 알아볼까요?”

“아서라. 기계가 혹시 고장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말 못하는 강아지가 쫄쫄 굶게 될지도 몰라서 안 된다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가 맞다고 추임새를 넣었다. 부모님이 나누는 대화는 대부분 우동이와 관련된 얘기였다. 두 분이 우동이 대변 상태와 간식의 상관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다가 이내 티격태격하기도 하는 모습은 우경에게 우습고 낯설었다. 어쨌거나 우동이는 부모님의 무료하던 삶에 반짝이는 활력소였다.

“할아버지, 그런데 왜 얘 이름이 우동이에요?”

“솔이는 얘라고 하면 안 돼여. 우동이는 솔이한테 삼촌뻘인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이었다.

“분식집 출신이라서 우동이지. 아버님, 그렇죠?”

영민의 추측에 솔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와, 그러면 우동이 형제들 이름은 떡볶이, 김밥이, 라면이겠네요?”

우경의 아버지는 씩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홀로 남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아가겠다고 했다. 혼자서 괜찮으시겠는지 우경은 조심스레 물었다.

“내가 왜 혼자라고 그러냐?”

우동이가 아버지의 발치에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우리는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된다.”

아버지와 우동이는 그렇게 둘이 살기 시작했다. 뒷산을 매일 오르고, 당근과 고구마와 닭가슴살을 삶아 나누어 먹고, 천변 산책로를 오래 걷고, 일일드라마와 축구 중계방송을 같이 보고, 한 침대에서 잠들었다 일어났다. 꽃이 피었다 지는 길도, 이슬비가 오는 길도, 함박눈이 내리는 길도 함께 지났다. 우경이 종종 아버지에게 솔이 사진을 보내면 아버지는 답장으로 우동이 사진을 보내왔다. 아버지가 찍은 사진 속에서 우동이는 늘 편안하고 당당해 보였다. 체구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제법 듬직하게 느껴졌다. 개의 목에 연결된 리드줄을 잡고 있을, 프레임 밖 아버지의 표정은 어떨까 우경은 궁금했다.

“이것 봐. 할아버지랑 둘이 아주 단짝이야.”

솔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면서 우경은 새삼 아버지에게 우동이가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동이가 없었다면 멀리 있는 자신의 마음이 한층 무거웠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저녁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켰을 때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서울의 한 주택가에 검은손 긴팔원숭이가 출몰했다는 내용이었다. 영민과 우경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숨을 쉬었다.

“저거 멸종위기종일 텐데.”

“그러게. 어디서 탈출했지?”

“누가 밀수해서 키우다 버린 거 아닐까?”

솔이가 끼어들었다.

“나쁘다! 어떻게 버릴 수가 있어요?”

“그러게 말이야.”

곧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심상치 않다는 다음 뉴스가 이어졌다. 부부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짙은 한숨을 뱉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병원 응급실이었다.

마당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이웃이 발견했다고 했다. 짖고 또 짖어댄 우동이 덕분이었다. 급성 뇌출혈이었다. 우경의 식구들이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응급 수술이 시작되었다. 깊고 긴 밤이 지나갔다. 수술은 그런대로 잘 끝났다고 했다. 급한 고비는 넘겼으나 이제부터 결과가 불확실한, 오랜 싸움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중환자실 복도의 긴 의자에서 문득 솔이가 물었다.

“그런데 엄마, 우동이는요?”

아버지가 실려 간 뒤 이틀간 혼자 남아있었을 우동이에게 그제야 생각이 미쳤다. 우경과 영민은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떡하지?”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하지?”

“지금으로선 퇴원 일자를 전혀 모르는 거잖아?”

“퇴원하실 수 있을지 아니면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는 거 아니야?”

그들은 서로를 향해 물음표만을 던지고 있었다. 솔이가 불쑥 끼어들었다.

“근데요, 우동이요, 음식 이름 아니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우동이 이름 무슨 뜻인지 내가 알아냈어요. 우경이 동생이라는 뜻이에요. 김우경 동생 김우동.”

우경은 간신히 견디고 있던 것이 조용히 무너져내리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 내가 솔이랑 아버님 댁에 가 볼게. 빈집에 계속 혼자 둘 순 없잖아.”

영민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빈집에서 우동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두려움에 컹컹 짖고 있을까. 온몸을 웅크린 채 단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까. 맹목적으로. 아버지의 부재의 이유를 녀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아니 그것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우경의 머릿속은 뒤죽박죽 흔들렸다.

“엄마 아빠, 그럼 우동이 이제 우리 집에 가는 거예요? 정말?”

개를 기르는 일에 대해 우경은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서로 의지해 사는 일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조금 다를지도 몰랐다.

“키우는 게 아니라 서로 기대어 걷는 상호의존적인 관계”

■ 작가의 말

“보호소에서 입양한 ‘어린 개’와 함께 산 지 1년 5개월째입니다. 생활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각도 바뀌었죠.”

정이현 작가는 “많은 사람이 반려동물과 특별한 애정을 나누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이를 소설로 풀어보고 싶었다”며 ‘남겨진 것’의 집필 동기를 밝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그 일상을 담은 콘텐츠가 인기다. ‘남겨진 것’ 역시 반려견 ‘우동이’와 ‘할아버지’의 각별한 관계를 그렸다. 할아버지에겐 우동이가 자식과 같다. 늘 우동이 걱정뿐이고, 손주에겐 우동이가 삼촌뻘이라고 주의를 준다. 그가 쓰러졌을 때 우동이가 짖어대 이웃에 알리는 설정은 자주 들어 본 듯하지만, 새삼 애틋하고 뭉클하다.

처음 반려견 입양을 반대했던 정 작가는 곧 마음이 녹아내렸다. 집에 단둘이 남게 된 날, 강아지가 다가오더니 작은 몸을 발라당 뒤집어 배를 보여준 것. “‘이 아이도 지금 굉장히 노력하고 있구나’ 하며 짠해졌어요.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건,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게 되는 일이고, 커다란 책임이 따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웃들과 자연스럽게 정보도 공유하는 요즘. 정 작가는 ‘반려’의 의미를 돌아봤다.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이잖아요. 인간이 일방적으로 키우는 게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 서로 기대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존재입니다.”

■ 정 작가는

1972년생. 2002년 등단 후 ‘달콤한 나의 도시’ ‘낭만적 사랑과 사회’ 등을 썼다.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수상.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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