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유일한 박사의 ‘소유-경영 분리’ 창업정신을 훼손했나?

곽정수 기자 2024. 4. 1. 09: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HERI이슈]유한 ‘경영권 사유화’ 사태 진실
현 경영진, ‘임원연임 제한’ 무력화
재단 장악으로 견제-균형 원칙 훼손
유한대학교 학생들이 3월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유한공업고등학교 안에 위치한 유일한 박사 묘소를 찾아 둘러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난 27일 경기도 부천시 유한공업고등학교 안에 있는 ‘유일한 기념관’. 인접한 유한대학교의 스포츠재활전공 신입생 20여명이 학교 창립자인 유일한 박사의 유물과 사진, 어록을 둘러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기업의 이윤을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환원한다”는 건학이념을 들으며 눈을 반짝였다.

유일한 박사. 유한학원 제공

기념관 오른편에는 유 박사가 1971년 3월11일 타개하면서 남긴 유언장이 전시돼 있다. “손녀 유일링에게 대학 학자금 1만달러를 준다. 딸 유재라에게 유한공고 안의 내 묘소와 주변 땅 5천평을 물려주니, 유한동산으로 꾸며 학생들이 마음대로 놀게 하라. 유한양행 주식 14만여주는 전부 유한재단에 기증한다. 아들 유일선은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자립해서 살아라.” 사실상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내용이다.

유 박사는 병세가 악화하자 타개 2년 전 유한양행의 사장직을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었다. 수석부사장이었던 외아들은 회사와 상의없이 내보냈다. “내가 죽은 뒤 가족들 때문에 회사 안에 파벌이나 알력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이유였다. 유한양행이 국내 첫 소유-경영 분리 기업, 전문경영인체제로 출범하는 순간이었다. 사장 시절에는 종업원들에게 보유주식을 나눠줘 최초로 종업원 지주제를 도입했다. 사회지도층이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철저히 실천한 유일한 박사는 지금까지 많은 국민에게 큰 존경을 받는다.

자녀들도 부친의 유지를 충실히 따랐다. 아들은 부친이 남긴 손녀 장학금 1만달러 가운데 절반만 쓰고 나머지는 사회에 환원했다. 딸은 1991년 사망하면서 전 재산을 재단에 기부했다. 유한양행 사장을 지낸 창업자의 동생 유특한 유유제약 회장도 경영에서 은퇴한 뒤 유유문화재단을 세우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형의 뜻을 따랐다. 창업자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과 상관없이 경영권을 승계하고, 이를 위해 불법과 편법도 마다치 않는 재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유 박사 최측근 연만희 전 고문, 30년간 실세 군림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이 깃든 유한양행은 오랫동안 기업지배구조의 ‘모범생’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유한양행은 최근 큰 혼란에 빠졌다. 경영진을 향해 ‘“경영권을 사유화하려 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올해 주총에서 회장·부회장직을 신설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전체 직원의 6분의 1이 반대서명을 하고, 트럭시위까지 벌였다. 문국현 전 유한학원 이사장, 이필상 전 유한재단 이사장(전 고려대 총장) 등 유한과 인연이 깊은 사회원로 11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유한이 고위 경영진의 그릇된 판단으로 유일한 박사의 고귀한 정신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껏 유한에서 회장직에 오른 사람은 유일한 박사와 연만희 전 고문 두명 뿐이다. 2009년에는 아예 회장 직제를 없앴다. 재벌은 지배주주가 회장 자리에 앉아 절대권한을 행사한다. 하지만 전문경영인 체제인 유한에 굳이 회장직을 둘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에스지(ESG) 전문가인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오너가 존재하는 재벌처럼 회장직에 앉아 좌지우지하려는 사전포석”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경영진은 “회장·부회장 신설은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고 있는 시점에서 외부인재를 쉽게 영입하기 위한 조처로,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게 아니다”며 맞선다. 창업자의 유일한 직계 후손(손녀)인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가 미국에서 귀국해 창립정신이 흔들릴 수 있다고 반대하는데도 강행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이 자리한다. 그는 2015년부터 2020년까지 6년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유한의 모든 임원은 맡은 자리에서 최대 중임까지만 가능하다. 경영진의 전횡을 방지하려는 일종의 안전장치다. 임기가 3년인 사장은 최대 6년까지 가능하다. 승진이 안되면 회사를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 이사회 의장은 2020년 사장 임기가 끝난 뒤에도 이사회에 계속 남았다. 사내이사도 아니고, 사외이사도 아닌 기타비상무이사라는 ‘꼼수’를 동원했다. 기타비상무이사가 사장보다 높은 자리가 아닌 만큼 중임 규정을 훼손한 것이다. 올해 주총에서 연임에도 성공했다. 한 전직 임원은 “이 이사회 의장이 사장 임기만료 직전 임직원들에게 회사에 남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헌신짝처럼 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한술 더떠 이사회 의장까지 차지했다. 이전까지는 정관에 따라 대표이사 사장이 맡았던 자리다. 회사는 “이사회의 독립성 확보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심이라면,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에게 맡겼어야 했다. 그가 지난해 기타비상무이사로 받은 보수는 2억4500만원로, 사외이사 평균 보수 4400만원의 5.6배에 달한다. 유한은 “조욱제 사장이 미국 식품의약청(FDA)에 신약 허가를 추진하고 있어, 경험이 많은 이 전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사장이라도 회사의 규정을 어기면 안된다.

경영진, 재단 장악하고 ‘창업주 유지’ 퇴출

유일한 박사는 보유주식을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에 모두 기부했다. 이에 따라 유한의 소유구조는 유한재단·학원→유한양행→유한화학 등 계열사 순서로 이어진다. 1대주주인 유한재단(지분율 15.8%)과 3대주주인 유한학원(7.8%)의 지분을 합치면 24%에 육박한다. 유일한식 소유-경영 분리의 핵심 기반이다. 유한재단·학원은 창업자의 경영원칙에 따라 유한양행과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유한재단은 2021~2022년 이정희 유한양행 이사회 의장과 조욱제 사장을 차례로 이사로 선임했다. 경영진을 동시에 재단 이사로 선임한 것은 드문 일이다. 대신 유일링 이사는 임기만료를 이유로 재선임하지 않았다.

이는 두가지 큰 의미가 있다. 첫째 창업자의 후손이 재단 이사직을 맡던 전통이 끊겼다. 창업자의 후손은 유한이 유일한 박사의 유지를 충실히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이다. 둘째 유한재단이 사실상 유한양행 경영진에 장악되면서, 소유-경영 분리 원칙이 깨졌다. 현재 재단 이사 10명 중에서 전·현직 유한양행 임원은 이 이사회 의장과 조 사장을 포함해 4명에 달한다. 이전까지는 1~2명에 그쳤다.

주총에서 회장·부회장 신설을 위한 정관 변경안은 95%의 찬성표를 얻었다. 유한재단과 학원이 큰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두 찬성한 것이다. 재단이 유한양행 경영진에 장악됐거나, 유착됐음을 보여준다. 문국현 전 유한학원 이사장은 “경영권 사유화는 이정희 전 사장이 2021년 대표직에서 물러나고도 이사회 의장과 유한재단 이사를 동시에 맡을 때부터 잉태됐다”면서 “유일한 박사의 소유-경영 분리 경영철학에 정면으로 반하는데도 방치되어 이 지경에 이르게 됐다”고 탄식했다.

경기도 부천시 유한공업고등학교 안에 위치한 유일한 기념관에 보관된 유일한 박사의 유언장. 전 재산을 사회환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만희, 후임자에 밀려났으나 ‘책임론’

유한의 ‘경영권 사유화’ 사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시야를 좀 더 넓힐 필요가 있다. 내부사정을 잘아는 사람들은 연만희(94) 전 고문에 주목한다. 그에게는 유일한 박사의 최측근, 유한 역사의 산증인 등 화려한 수식어가 뒤따른다. 1961년 공채로 입사한 뒤 창업자를 10년간 보필했다. 이후 1988년부터 2020년까지 유한양행의 사장·회장·상근고문과 유한재단 이사장을 두루 역임했다. 유한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연 전 고문은 30년 넘게 회사와 재단을 함께 아우르는 최고 실세로 군림했다. 막후에서 핵심 인사를 좌지우지한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그가 사장을 마친 뒤에도 회장·상근고문·재단 이사장을 지낸 이력은 현재 논란이 되는 이정희 이사회 의장의 행보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자신이 주도해 도입한 임원 연임 제한을 스스로 허문 것이다. 창업자의 소유-경영 분리 원칙을 지키는 ‘수호자’를 자임했지만, 창업자가 사라진 유한에서 과도한 권력을 행사하며, 창업자의 유지를 훼손하는 모순된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필상 전 유한재단 이사장은 “연 전 고문이 정신적으로 유한을 이끈 것은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오랫동안 최고 실세 역할을 하다보니, 유한양행과 재단이 유착되고, 이권 카르텔이 구축되는 결과를 낳은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연 전 고문 쪽은 “창업자의 유지를 지키려는 목적이었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후배 경영인들은 그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자신들도 잘하면 ‘제2의 연만희’가 될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꾸지 않았을까? 연 전 고문은 2015년 이정희 전 사장을 발탁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전 사장은 6년 뒤 연 전 고문의 퇴진을 주도했다. 회사 안에서는 ‘늙은 마름’(연만희)이 ‘젊은 마름’(이정희)에게 밀렸다는 말이 무성했다.

유한대학교 스포츠재활전공 신입생들이 27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유한공업고등학교 안에 위치한 유일한 기념관에서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한 유일한 박사의 생애를 돌아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년 뒤 창업 100주년…철저한 반성·쇄신 필요

유한양행의 한 간부는 “이번 사태로 지난 98년 동안 쌓아온 국민과 사회의 사랑과 신뢰를 한순간에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기주총은 끝났지만, 유한사태는 끝나지 않았다. 유한을 사랑하는 사회원로들은 “하루속히 사태를 정상화해야 한다”면서 이정희 전 사장의 퇴진 등을 촉구한다. 전·현직 임직원들은 현 경영진의 채용비리 의혹을 고발한다는 방침이다. 기존 생산직 노조와 별개로 사무직 노조 결성도 추진되고 있다.

유한이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창업자의 소유-경영 분리라는 기본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핵심은 이번 사태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유한양행과 유한재단·학원 이사회의 철저한 반성과 쇄신이다. 이사회가 20~30년 전에 연만희 전 고문에게 안된다고 말하고, 2~3년 전에 이정희 전 사장에 제동을 걸었다면, 유한이 지금의 위기를 맞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유한재단은 경영진과의 유착을 끊고,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을 잘 이해하는 독립적인 외부인사들로 이사진을 교체해야 한다. 현재 4명이나 되는 전·현직 유한양행 출신은 1~2명만 남기고 정리해야 한다. 문국현 전 이사장은 “유한재단 이사진에 창업자 유족를 다시 참여시키고, 이사장을 유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부 명망가들로 채워온 낡은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한양행도 재단을 장악하려는 헛된 생각을 버려야 한다. 허물어진 임원 연임 제한 원칙도 재확립해야 한다. 명분없는 기타비상임이사직은 없애고,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에게 맡겨야 한다. 사외이사들은 경영진과 유착되지 않은 독립된 외부전문가로 교체해야 한다. 사장이 바뀌고, 이사장이 바뀌어도 회사와 재단의 시스템과 문화에 의해 창업자의 정신이 계속 지켜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현상)를 해소하려면 재벌의 지배주주가 회사이익을 뒤로 빼돌려 일반주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선결과제로 꼽힌다. 유한의 경영권 사유화 논란은 재벌이 아닌 소유-경영 분리 기업도 지배구조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준다. 주인없는 회사도 전문경영인이 가짜 주인행세를 할 위험성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지배주주가 있는 재벌, 소유분산기업, 소유-경영 분리기업 모두 지배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이사회의 감시·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는 게 중요하다.

유한양행의 한 간부는 “연 매출이 2조도 안되는 유한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높은 것을 보고 유일한 박사에 대한 우리사회의 존경과 유한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유한은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고,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라는 유일한 박사의 가르침을 일깨워주는 한국사회의 귀중한 자산이다. 유한은 2년 뒤 창업 10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 남은 2년간 무엇을 하느냐가 유한이 또 다른 100년을 존경받는 기업으로 열어갈 수 있을지를 결정할 것이다.

곽정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는?

성공한 기업인이자 독립운동가
일제에 기부한 동생과는 ‘절연’

유한양행을 창업한 유일한 박사는 성공한 기업인일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가, 교육자, 사회사업가였다. 또 항상 삶의 우선순위를 국가, 교육, 기업, 가정 순으로 삼은 철저한 애국자였다.

1895년 평안도 평양부에서 자수성가한 상인의 5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9살 때 대한제국순회공사 박장현을 따라 미국 유학길에 올라, 명문 미시간대를 졸업했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 서재필, 이승만과 함께 필라델피아 한인자유대회를 열고, 독립운동 결의문을 공동작성하여 낭독했다. 27살 때 숙주나물 통조림 제조공장을 창업해 청년사업가로서 대성공을 거뒀다.

31살 때 중국계 미국인 의사인 부인과 고국으로 돌아와 유한양행을 설립했다. 일제 치하에서 굶주림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고 제약업종을 선택했다. 일제의 패망을 내다보고, 태평양전쟁을 앞둔 시점인 47살 때 미국으로 돌아거 항일무장 독립군인 맹호군 창설을 주도하고, 미군의 항일투쟁계획인 냅코작전의 특수공작원으로도 활동했다.

해방 뒤 다시 귀국해서 제약사업을 이어갔다. 투명경영과 성실납세, 정경분리는 그의 경영원칙이었다. 권력이 정치 참여와 장관직을 제안했지만 끝내 사양했다. 불법적인 정치자금 요구도 거부했다. 박정희 정권은 보복성 세무조사를 벌였으나 탈세가 발견되지 않자 오히려 1968년 동탑산업훈장을 수여했다. 당시 이낙선 국세청장이 “유한은 다른 기업과 다른 것 같다”고 대통령에 보고했다고 한다. 1971년 76살을 일기로 타개한 뒤 최고영예인 국민훈장 무궁화장과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그에게는 아픈 가족사가 있다. 독립운동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사이 동생인 유명한이 유한양행의 사장을 맡았는데, 조선총독부의 강요에 못이겨 전쟁지원금을 기부했다. 유 박사는 동생이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인연을 끊었다.

곽정수 선임기자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