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개발로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된다”[시사저널-경실련 공동기획]

정윤경 기자 2024. 4. 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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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임형백 한국지역개발학회장 "최악의 개발사업, ‘정치적 논리’에 크게 좌우 돼"

(시사저널=정윤경 기자)

[전문]선거철만 되면 '돈잔치'가 벌어진다. 공항·철도·도로 등 사회기반시설(SOC), 테마파크·관광 단지, 재개발·재건축 등 대규모 건설과 관련한 개발 공약이 난무한다. 특히, 지역 대표를 뽑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봇물 터지듯 나온다. 막대한 재원이 투입되는 개발사업은 정확한 계획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지역사회는 경제적 이익을 위해 난개발이 추진되는 경우가 많다. 잘못된 도시개발‧공공사업으로 인한 재정낭비와 환경파괴 등은 고스란히 시민들 몫이다. 시사저널은 4.10총선을 맞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시개혁센터와 함께 ▲전문가들이 선정한 역대 최악의 도시개발·공공사업 ▲254개 지역구 출마자의 개발 공약 전수조사 등을 진행했다. 개발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유권자들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시사저널과 경실련은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진행된 도시개발·공공사업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중에서 최악의 사업을 선정했다. 1위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차지했다. 이 밖에 서울-김포 통합, 4대강 사업, 레고랜드, 가덕도 신공항이 TOP5에 올랐다. 무안·청주·양양 공항, 도시재생 사업, 새만금 사업, 대구 신공항, 해운대 엘시티 사업이 뒤를 이었다. 이 설문조사는 도시 계획·설계·개발 관련 학회 등을 대상으로 2024년 3월15~25일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전문가들(응답자 108명)이 40개의 예시 사업 중 각각 5개 사업을 선정하고, 선정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국지역개발학회의 임형백 회장(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은 "잘못된 개발로 이익은 사유화되고, 손실은 사회화된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은 4.10총선을 열흘 앞둔 3월30일 성결대에서 임 회장을 만나 정치인의 '선심성 개발 공약'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임형백 한국지역개발학회의 회장(성결대 국제개발협력학과 교수) Ⓒ 시사저널 최준필

한국지역개발학회에 대해 소개해 달라.

"한국지역개발학회는 지역개발에 관심이 있는 교수, 연구원, 대학원생, 정부공무원 등이 모인 비영리 학술단체다.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하고 나아가 미래를 예측해서 선제적으로 대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최악의 도시개발·공공사업'에 대해 총평을 한다면.

"최악으로 꼽힌 사업들은 '정치적 논리'에 크게 좌우됐다. 충분한 논의와 검토의 시간이 없었고, 대국민 홍보와 의견수렴 등 사회적 합의도 부족했다. 특히, 실패한 사업에 대해서 반성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1위를 했는데.

"미국 정치권에 'Politics stops at water's edge(정치는 물가(국경선)에서 멈춘다)'라는 표현이 있다. 1947년 냉전 초기에 공화당 소속 아서 반덴버그 상원 외교위원장이 민주당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외교 문제에서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면서 한 말이다. 국내에서는 싸우더라도 국익을 위해서는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런데, 잼버리의 경우 국정감사에서 준비상황에 대한 문제점이 여러 번 지적됐는데도 고쳐지지 않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추정치에 의하면, 2021년도 국가별 경제규모(명목GDP) 순위에서 대한민국은 10위를 차지했다. 군사력의 경우에 때로는 5위로 평가되기도 한다. 한류 등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굉장히 높아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잼버리의 실패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의 위상을 낮추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전파한 것이다. 잼버리의 실패로 인한 손실은 추산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책임 회피만 있고 반성은 없었다."

레고랜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레고랜드가 건설된 중도(강원도 춘천시 중도동)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 모든 시기의 유물이 나오는 유적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들다. 1만년 된 유적으로 알고 있다. 요하 문명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중도 유적지는 고고학적 가치를 계산할 수 없다. 이런 엄청난 유적지에 레고랜드를 건설하는 것이 말이 되는지 묻고 싶다. 중도 유적지를 보존하고 연구했다면, 미래에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할 논리와 유물이 반드시 나왔을 것이다. 이제 레고랜드는 오히려 적자와 유지·보수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레고랜드 건설을 추진한 정치인들, 이를 막지 못한 관련 학자들, 심지어 동조한 학자들의 책임이 크다."

레고랜드 전경 Ⓒ연합뉴스

대구와 광주를 잇는 '달빛철도'는 재석 의원 216명 중 찬성 211명으로 법안이 의결됐다. 반대는 단 1명뿐이었다. 달빛철도에 대해 평가한다면.

"달빛철도는 2021년 4월 낮은 예비타당성 수치와 국토부의 반대로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공청회에서 배제됐다. 이후 6개 지자체장이 거창군 군청 광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영호남 상생공약이었다'며 국토교통부에 공약 이행을 촉구했다. 그러자 2021년 6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됐다. 하지만 2023년 10월 기획재정부가 (달빛철도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요구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즉 기획재정부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2023년 12월 '달빛내륙철도 특별법'이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다. 달빛내륙철도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조항은 그대로 담겼으나, 국토교통부의 강력한 요구로 복선화 조항이 삭제됐다. 하지만 여전히 단선인지 복선인지도 확정되지 않은 것 같다. 경제적 타당성이 없더라도 다른 이유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럼에도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경제적 타당성도 최저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획적인 개발이 왜 중요한가.

"국토는 한번 잘못 개발하면 돌이키기 어렵다. 즉 비가역적이다.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개발했다면, 수도권에 큰 비용을 들여서 지하철과 GTX를 만들 필요도 없었다. 지상도로와 비교해 지하철과 GTX는 경관을 즐길 수 없다. 무엇보다 건설비와 유지·관리비가 많이 든다. 서울의 강변북로와 강변남로 대신에 수변공간을 활용할 수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후보자들이 지역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나온 개발 공약은 '포퓰리즘'적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다. 사전 검토도 부족했고, 건설 비용 등 구체적 계획도 없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선거가 끝나면 일부 공약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고, 일부는 낮은 경제적 타당성으로 인해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이다. 대규모 개발사업에 있어서 건설 비용에만 집중하는데, 유지·관리 비용이 더 큰 문제다."

선심성 개발 공약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이 있다. 유권자인 국민이 현명해져야 한다. 정치인이 제시하는 공약이 타당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무서워서라도 정치인들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 유권자인 국민이 개인적 이기심과 지역 이기주의를 버려야 한다. 어떤 공약이 유권자 개인과 그 지역에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해가 된다면 거부할 정도의 높은 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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