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떠났다… 지금도 가슴이 먹먹

문희인 기자 2024. 4. 1.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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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오늘] 장국영 사망
지난 2003년 4월1일 아시아 최고 스타 홍콩 가수 겸 영화배우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은 생전 장국영의 모습. /사진=당학덕 인스타그램
"마음이 피곤해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2003년 4월1일. 만우절인 이날 아시아 최고 스타 홍콩 가수 겸 영화배우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46세.

장국영은 20세이던 1976년 홍콩 ATV 아시아 뮤직 콘테스트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콘테스트에서 2위를 차지한 그는 본격적으로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1978년 영화 '홍루룬상춘'을 통해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장국영은 인기를 끌지 못했다. 무명으로만 약 8년을 보냈다. 당시 홍콩 최고의 가수 겸 배우였던 진백강이 연예계를 주름잡았기 때문이다.

1986년 8월2일 장국영을 스타 반열로 이끈 작품 '영웅본색'이 탄생했다. 그는 '영웅본색'에서 특유의 애절한 눈빛과 감성으로 관객을 사로잡았고 영화 흥행의 1등 공신이 됐다. 이듬해 출연한 '천녀유혼'에서도 돌풍을 일으키면서 장국영은 1980년대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1990년 12월15일 장국영은 영화 '아비정전'에 출연했다. 작품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후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를 연기하면서 배역과 혼연일치된 섬세한 감정을 선보였다. 특히 그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방 안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명장면이다.



'패왕별희'로 세계적 스타반열에… 거짓말 같은 죽음


장국영은 2003년 4월1일 오후 6시43분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정문 앞 택시승강장에서 세상을 떠난 채 발견됐다. 사진은 아비정전 영화스틸컷. /사진=머니투데이(영지걸전영제작유한공사 제공)
장국영의 연기는 문화와 언어에 한계를 두지 않았다. 1993년 12월24일 영화 '패왕별희'에 출연한 장국영은 단 열흘 만에 경극 동작을 습득하면서 전세계적으로 극찬받았고 이 작품은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배우로서 사랑받는 장국영이었지만 원래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이때 중국 출신 사업가 석설이 접근했고 장국영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주는 등 신뢰를 쌓았다. 또 석설은 장국영의 꿈인 영화 감독 데뷔까지 약속하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장국영은 시련을 맞고 만다. 데뷔작 촬영을 일주일 앞두고 석설이 수천억원 규모의 사기죄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들은 것. 장국영은 투자받기로 했던 300억원을 날렸고 그를 믿고 따라온 영화계 스태프들까지 엮여 죄책감으로 고통을 겪었다.

1998년 8월22일 칸 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왕가위 감독의 영화 '해피투게더'가 공개됐다. 장국영은 작품에서 동성애자로 열연했다. 그러자 홍콩 언론과 각종 미디어는 그의 성적 성향에 관한 추측성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앞서 '패왕별희'가 공개됐을 당시에도 그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문제의 2003년 4월1일. 장국영은 이날 오후 1시 지인 모화빙과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같은날 오후 4시30분 그는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내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 후 테라스에서 전망을 감상했다. 그는 오후에 진숙분 매니저와 통화하면서 "이번 기회에 홍콩을 제대로 보고 싶다"고 전했다. 진숙분은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택시를 타고 만다린 호텔로 향했다.

장국영은 같은날 저녁 6시38분 진숙분에게 재차 전화를 걸어 "5분 후 호텔 정문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겼다. 진숙분은 오후 6시43분 호텔 정문 앞 택시 승강장에서 '쿵'하는 소리를 들었다. 장국영은 호텔 24층 객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 장국영은 같은날 저녁 7시6분 끝내 숨을 거뒀다.



평소 우울증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대중들은 '충격'


장국영이 사망한 후 홍콩과 중국 내부에서 수많은 음모론이 쏟아졌지만 그의 사망은 결국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사진은 장국영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진 당학덕이 장국영(오른쪽)과 함께 있는 모습. /사진=당학덕 인스타그램
'장국영 사망'이라는 너무나 충격적인 소식을 대중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특히 4월1일이 만우절이어서 그의 죽음을 질나쁜 거짓말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영웅본색'에서 장국영과 호흡을 맞췄던 주윤발은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후 "아무리 만우절이라 해도 장난이 과하다"며 믿지 않았지만 사실을 알게 되자 대성통곡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국영이 사망한 후 홍콩과 중국 내부에서는 수많은 음모론이 쏟아졌다. 당시 대만 폭력조직 삼합회가 장국영을 살해했다는 의문이 가장 많이 제기됐다. 삼합회는 평소 홍콩 영화배우들을 상대로 강제 촬영을 요구하는 등 협박을 일삼았는데 장국영이 생전에 삼합회의 영화계 관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이 음모론에 신빙성이 더해진 것은 장국영과 각별한 사이로 알려졌던 당학덕의 행적이다. 당학덕은 평소 삼합회의 행사에 모습을 자주 드러냈으며 장국영의 사망 후 그의 자산 460억원을 유산으로 상속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그는 장국영이 죽고 난 후에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장국영의 사진을 업로드하는 등 꾸준히 그를 추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장국영의 조카 알리사는 "평소 장국영이 우울증을 앓아왔다"며 "그것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진숙분은 지난 2013년 장국영 사망 10주기 추모 콘서트에서 "장국영은 우울증 때문에 항상 괴로워했고 '편하게 가는 방법이 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후 별다른 조사 결과가 밝혀지지 않으면서 장국영이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좁혀진 상황이다.

나아가 장국영은 항상 파파라치들과 각종 매체의 음모론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했다. 심지어 일부 파파라치들은 적외선카메라를 이용해 벽 너머에 있는 장국영의 행적을 지켜보기까지 했다. 이에 장국영이 받는 스트레스는 날이 갈수록 극에 달했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진숙분을 부른 점조차 자신의 마지막이 파파라치들에게 먼저 발견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1980~90년대 아시아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홍콩의 톱스타 장국영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떠난 지 21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그가 출연한 세계적인 영화들과 OST 등은 문화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문희인 기자 acnes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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