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리+생맥주’ 만든 을지OB베어가 을지로에 돌아왔다

고나린 기자 2024. 4.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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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 났던 '을지오비(OB) 베어'가 다시 을지로에 돌아왔다.

새로 연 가게에서 지난 27일 만난 을지오비베어 사장 최수영(69)씨는 "마포로 가게를 옮겼을 때도 틈만 나면 을지로에 와 돌아올 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을지오비베어 지키기'에 연대해주셨던 골목 사장님들한테 다시 맥주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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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자리서 200m 떨어진 곳에 새 둥지
‘왜 이제야 돌아왔냐’ 야단치는 손님들
지난 27일 만난 을지오비(OB)베어의 2대 사장 최수영(69)씨가 을지로3가에 다시 문 연 가게 안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에 놓인 ‘을지오비베어’ 간판과 벽돌 등은 처음 개업했던 당시 모습을 복원한 것이다. 고나린 기자

쫓겨 났던 ‘을지오비(OB) 베어’가 다시 을지로에 돌아왔다. 고물가로 치닫는 2024년에도 1만원을 넘지 않는 안주, ‘퇴근 뒤 한잔’이 간절한 1인 손님을 반기는 탁자, 골목의 작은 가게들과 손잡고 서로를 지키겠다는 다짐과 함께.

건물주와 5년 공방 끝에 2022년 강제 퇴거돼 서울 도심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하나로 여겨졌던 을지오비베어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을지로3가 296-12’에 다시 문을 열었다. 원래 있던 곳에서 약 200m 떨어진 곳이다. 그 사이 을지오비베어는 잠시 서울 마포구 경의선 책거리로 자리를 옮겨 장사를 이어왔다. 새로 연 가게에서 지난 27일 만난 을지오비베어 사장 최수영(69)씨는 “마포로 가게를 옮겼을 때도 틈만 나면 을지로에 와 돌아올 자리를 찾으러 다녔다. ‘을지오비베어 지키기’에 연대해주셨던 골목 사장님들한테 다시 맥주 한 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을지오비베어는 1980년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프랜차이즈 생맥주 가게로 연탄불에 구운 노가리와 매콤한 소스를 처음 개발한 곳이다.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시초였다. 최 사장은 “개업 9년 뒤에 뮌헨 호프가, 또 몇 년 뒤에 초원 호프가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아침에 퇴근하는 인쇄 골목 노동자, 야간 근무 후 아침 교대를 하는 지하철 노동자를 위해 이른 시간 문을 열기도 했다. 그 어떤 퇴근길에도 ‘생맥 한 잔’을 전하고 싶었다. 서울시는 2015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18년 을지오비베어를 주류 점포 최초로 ‘백년가게’로 선정했다. 100년 이상 보존할 가치가 있는 가게라는 뜻이었다.

‘가치’는 이윤에 무너졌다. 2018년 건물주가 건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싶다며 을지오비베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고, 명도소송을 거쳐 강제 퇴거 시도가 시작됐다. 주변 상가 세입자들, 문화 예술인들이 매일 같이 모여 강제퇴거를 막기 위해 ‘을지오비베어를 되찾기 위한 현장문화제’를 열었다. 5년을 버텼지만 2022년 떠나야했다.

다시 을지로에 문을 열기까지 혹시라도 구설에 오를까 무서워 종이로 간판을 가리고 ‘깜짝 오픈’을 감행할 정도로, 최 사장은 떨었다. 하지만 문을 연 날, 40여년을 함께해 온 단골들과 ‘힙지로’를 찾은 젊은 손님들로 1층과 지하 1층에 놓인 50석 자리가 가득 찼다. 최 사장은 “손님들이 ‘왜 이제야 돌아왔냐’고 야단을 치시다가도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다시 찾아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라고 말했다.

손님만큼 반갑고 애틋했던 건 을지로 골목의 이웃 상인들이다. 최 사장은 “없는 물건은 서로 빌려주고 도와주는 식으로 골목의 가게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며 “점점 골목 상권이 죽어가고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는 다 가족 같은 사장님들이라, 가끔 ‘시청에서 시위 있는데 한 번 나와달라’고 하면 나가서 서로 ‘가게 지키기’에 힘을 보태주기도 한다”며 웃었다.

2막을 시작한 을지오비베어에 거창한 목표는 없다. 최 사장은 저녁 오픈을 준비하며 “아직 특별한 계획은 없다. 지난해 돌아가신 1대 사장 장인어른께서 고수했던 저렴한 가격, 냉각기를 쓰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 숙성하는 맥주 등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소소하게 이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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