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태부족인데… K-인재 빼가기 속수무책

이한듬 기자 2024. 4. 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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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리포트-산업계 인재·기술 보호 빨간불]① 첨단산업 인재 유출 심각… 보호대책 마련 시급
[편집자주] 국내 기업들이 인재·기술 유출에 신음하고 있다. 과거에는 중국으로의 유출이 잦았던 반면 최근엔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가로의 유출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 간 패권다툼이 심화한 상황에서 주요 인력과 기술 유출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국내 산업계를 위협하고 있는 인재·기술 유출의 실태를 살펴봤다.



▶글 쓰는 순서
①인력 태부족인데… K-인재 빼가기 속수무책
②한국이 키워 미중일 배불린다… 기술유출 초비상
③반복되는 인력·기술유출 논란 막으려면



#. 최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부장판사 김상훈)는 SK하이닉스가 전직 연구원 A씨를 상대로 낸 전직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A씨는 SK하이닉스에 입사해 메모리연구소 설계팀 주임 연구원, D램설계개발사업부 설계팀 선임연구원, HBM(고대역폭메모리)사업 수석, HBM 디자인 부서의 프로젝트 설계 총괄 등을 지낸 인물로 2022년 7월26일 퇴사한 뒤 마이크론 본사에 임원급으로 재직 중이었다. 법원은 A씨가 SK하이닉스에서 근무하며 얻은 정보가 경쟁사인 마이크론으로 흘러갈 경우 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훼손될 것으로 판단해 제동을 걸었다.

첨단 산업 분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패권 다툼이 심화하면서 핵심 인력 유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거 중국기업을 중심으로 한국 인재를 빼가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미국, 일본, 유럽 등으로의 유출도 빈번한 상황이다. 주요 산업 현장에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재 유출까지 겹칠 경우 한국기업들의 경쟁력 훼손이 불가피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미국 마이크론이 한국의 반도체 인제 영입에 나섰다. / 사진=로이터


SK하이닉스 직원 이직 제동 걸었지만… 문제 여전


SK하이닉스의 사례는 법원이 핵심 산업인 반도체 분야의 기밀 유출을 우려해 이직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완전한 대책이 되진 못한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A씨가 이직금지를 적용받는 기간은 오는 7월26일까지다. 당초 SK하이닉스가 A씨에게 '퇴직 후 2년간 동종 업체에 취업하지 않는다'는 약정서를 받은 것을 근거로 해당 기간에만 효력을 인정해서다. 이후에 A씨가 마이크론이나 동종 업계 다른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더라도 막을 근거가 없다.

HBM은 최근 인공지능(AI) 시대의 개화에 따른 데이터 처리량 급증에 대응할 수 있는 최고의 AI 반도체로 꼽힌다. SK하이닉스가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으며 1세대(HBM)-2세대(HBM2)-3세대(HBM2E)-4세대(HBM3)-5세대(HBM3E) 순으로 혁신을 거쳐오는 동안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며 선두 자리를 지켜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HBM 시장 점유율은 SK하이닉스 53%, 삼성전자 38%, 마이크론 9%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마이크론으로 인재 유출이 이어질 경우 기술격차가 급격히 좁혀져 선두자리를 위협받을 공산이 크다.

비단 마이크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인 인텔도 한국의 파운드리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연구 인력들에게 막대한 연봉 등을 앞세워 일자리를 제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 부활을 추진하고 있는 일본 역시 민간 기업을 중심으로 해외 인재 영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한국도 주요 영입 대상에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배터리 역시 인재 유출이 빈번한 산업분야다. 앞서 2019년 전기차 시대 개막을 앞두고 배터리 수요가 급증하자 중국 배터리기업 CATL은 국내 배터리 연구·개발(R&D) 인력에게 기존 대비 3~4배 이상의 연봉 등을 제시하며 공격적인 한국인재 영입에 나선 바 있다.

중국 배터리 업체인 CATL은 과거 한국 R&D 인력에 연봉의 3~4배를 제안하며 영입을 시도한 바 있다. / 사진=로이터


인력 부족한데 해외 유출까지… "애국심 아닌 보상 필요"


배터리는 인력난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지난해 말 조사한 '유망 신산업 인력 수급 통계'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이차전지업계의 석박사 연구개발(R&D) 인력은 약 9400명으로 전체 수요에 700명가량 못 미쳤다. 2021년 한국배터리협회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배터리 석·박사급 연구·설계 분야 인력이 1000명, 학사급 공정인력은 1800명가량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만성 인력 부족 문제를 떠안고 있는 배터리 업계가 주요 인력의 해외 유출까지 겹치며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해외로 나가는 이공계 인재들은 늘어나고 있다. 2012년~2021년 10년 동안 해외로 유출된 이공계 인재는 34만6239명이며 정부출연연구기관 떠난 연구인력 수는 5년 간 1200명 이상이다. 2020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실시한 '2020 이공계인력 육성, 활용과 처우 등에 관한 실태조사'에서도 이공계박사 4명 중 1명(22.8%)은 해외취업을 선호했다.

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직접 첨단 산업 분야의 인재 육성 계획을 발표하고 있지만 공들여 키운 인재들이 해외 기업으로 유출될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는 첨단전략산업법의 후속 조치로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 분야 핵심 전문가들을 법이 정한 '전문인력'으로 지정해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는 제대로 된 보상과 처우를 마련해 인재들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반도체 전문연구원은 "이제는 예전처럼 애국심에만 호소할 수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인재 유출을 막으려면 그만큼 큰 보상을 주는게 중요하다"며 "각 기업들이 기업문화나 처우 등의 부문에서 다른 회사로 이직하는 것보다는 현재 기업에 남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을 갖도록 매리트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도 단기적으로는 인재와 기술 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는 이공계를 선호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바꿀 수 있도록 교육과 제도, 정책에 변화를 줘야한다"고 덧붙였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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