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로 본 총선 ②] 용인갑, 누구를 위한 반도체 공약인가

문상현 기자 2024. 4. 1.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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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선거구(지역구)에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인구·자산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주요 선거구를 심층 분석했다.

[데이터로 미리 보는 2024 총선 - ② 경기 용인갑]

때로는 특정 선거구(지역구)가 한 사회의 변화 양상을 보여주곤 한다. 〈시사IN〉은 도시 데이터 분석가 신수현씨와 함께 이번 총선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지역구를 선정해 심층 분석했다. 각 선거구를 행정동 단위뿐만 아니라 투표구 단위로 분석하며, 개별 선거구의 개표 결과가 향후 한국 정치와 사회에 미칠 영향을 살펴봤다.

왼쪽부터 이상식 더불어민주당 후보, 이원모 국민의힘 후보, 양향자 개혁신당 후보. ⓒ각 후보 SNS

총선의 한 축은 인물이다. 정당 지지도, 정권 안정론과 심판론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일 때 결과를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된다. 경기 용인갑은 전국 선거구 가운데 특히 인물이 주목받는다. 제17대 총선 이후 용인갑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전원이 구속 수감됐다. 제17·18대 재선을 지낸 우제창 전 통합민주당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제19·20대 이우현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우현 전 의원은 20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낙마했다.

이번 제22대 총선을 앞두고서도 여야 지역 수장(지역위원장, 당협위원장) 자리가 모두 비었다. 직전인 제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정찬민 전 국민의힘 의원이 2023년 8월 제3자 뇌물공여죄로 징역 7년이 확정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더불어민주당 용인갑 지역위원장이었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는 대북 송금 의혹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는 중이다. 현역이 없는 무주공산 지역이 되면서 출사표를 던진 예비후보만 16명에 달했다.

용인갑에선 제19대 총선부터 제21대 총선까지 10여 년간 국민의힘 소속 의원이 당선됐다.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범위를 넓히면 다른 특징도 보인다. 용인시 단일 선거구에서 지금의 용인갑으로 분리된 제16대 총선 이후 당선된 역대 국회의원 전원이 용인 출신이었다. 그동안 용인갑 유권자들에겐 ‘우리 지역 인물’이 선택의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용인갑은 총선과 맞물려 거대한 변화도 앞두고 있다. 변화의 폭은 용인 전체 선거구 4곳(갑을병정)을 넘어, 경기 남부권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클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권이 용인갑을 설명할 때 ‘인물론’과 함께 내세우는 것이 이 변화다. 정부는 2047년까지 총 622조원을 투입해 경기 남부 일대에 국내 최초이자 단일 단지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민관 합동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업 대상지 가운데 핵심이 용인갑이다. 삼성전자 360조원, SK하이닉스 122조원 등 대규모 투자금이 용인갑 일대에 들어온다. 용인시는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에 맞춰 교통망 개선 및 확충, 반도체 산업단지의 배후도시 개발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개혁신당이 각각 용인갑에 후보를 냈다. 3파전이다. 국민의힘은 현역이 공석인 지역에 이원모 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을 전략공천했다. 이원모 후보는 대표적인 ‘친윤’ 후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특수부 검사를 지내 ‘윤석열 사단 막내’로 불린다. 대선 이후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정부 고위 공직자 인사 업무를 맡았다.

더불어민주당은 3인 경선 끝에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치안정감)을 후보로 확정했다. 이 후보는 행정고시 출신으로 대구·부산지방경찰청장, 국무총리실 민정실장, 김대중 재단 용인지회장 등을 지냈다. 2022년 대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 캠프의 국민검증법률지원단 부단장으로 활동했다. 민주당 내에서 ‘친명’ 후보로 꼽는다.

개혁신당에서는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양향자 의원이 출사표를 냈다. 광주여상을 졸업한 양 후보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삼성전자 임원(상무)까지 승진하면서 ‘고졸 신화’ ‘유리천장을 깬 아이콘’으로 불렸다. 2016년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성 인재로 영입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에 입성한 이후 반도체 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뤄왔다.

지역 정가에서는 그동안 용인갑 지역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고 새로운 세대와 인구가 유입되면서 지역색, 정치색이 옅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번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 3명도 그동안 용인갑 유권자들이 선택해온 ‘우리 지역 출신’이 아니고, 이들이 출마 선언 등을 통해 내놓은 공약마저 서로 ‘표절’이라고 지적할 만큼 비슷하다. 사실상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경쟁하는 구도다. 총선과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등, 전례 없는 변화를 앞둔 용인갑 유권자들의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다.

섬처럼 떨어진 아파트·다세대 입지

용인갑은 용인시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처인구(467.6㎢) 전역을 아우른다. 서울시(605.2㎢) 면적의 77.3%다. 선거구는 크게 2개로 권역으로 나뉜다. 용인시청과 처인구청, 고속버스터미널 등이 모여 있는 원도심이 중심인 지역과 논밭, 산, 물류센터, 골프장, 소규모 공장 등이 혼재한 지역이다. 이곳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선다.

〈시사IN〉이 국토교통부 공동주택 가격 정보를 참조해 그린 2023년 기준 용인시 아파트·다세대 입지 지도를 보면, 독특한 점이 나타난다(아래 〈그림 1〉 참조). 점의 크기는 단지별 세대수를 의미한다. 점이 클수록 세대수가 많고, 작으면 그 반대다. 용인갑 인구는 시청 등이 위치한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돼 있고, 그 외 지역은 대단지 아파트와 작은 점들이 마치 섬처럼 떨어져 있다. 개발규제지역과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 많아 개발이 어려웠거나 후순위로 밀리면서 이 같은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1990~2000년대 적정 규모의 기반시설과 교통계획 없이 추진됐다는 지적을 받아온 경기 남부권 일부의 ‘난개발’ 흔적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림 1> 2023년 기준 용인시 아파트·다세대 입지 지도. 점이 클수록 세대수가 많고, 작으면 그 반대다.

표심은 이곳에서 갈린다

인구가 밀집된 도심 지역이 용인갑 표심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 좀 더 자세한 분석을 위해 〈시사IN〉은 용인갑 선거구를 65개 투표구별로 쪼개 인구 데이터를 자세히 살펴봤다. 우선 분석을 위해 투표구의 연령대별 인구 구간을 다섯 개로 나눠 확인했다. 각 구간은 ①미성년(0~19세) ②미·비혼 특성이 강한 청년(20~34세) ③청·중년(35~49세) ④인구가 많은 장·노년(50~65세) ⑤점차 증가하는 은퇴 고령층(65세 이상)으로 분리했다.

이후 투표구별로 이 다섯 가지 인구 구간이 어떻게 분포되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4개의 집합으로 분류된다. 그 결과가 아래 〈그림 2〉다. 회색으로 표시된 지역에는 20~34세 인구 구간, 청년층이 모여 있다. 대학가 인근 지역이다. 회색 지역 중심에는 각각 용인대와 명지대, 한국외국어대, 총신대학교 캠퍼스가 위치해 있다.

<그림 2> 연령대별 인구 비율에 따라 구분한 용인갑 65개 투표구.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4개의 집합으로 분류된다.

녹색으로 표시된 지역에는 주로 35~49세 인구가 미성년 자녀 세대와 함께 살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이 밀집한 곳이라는 뜻이다. 지도에서 남서쪽 남사읍을 자세히 살펴보자. 조그맣게 녹색으로 칠해진 작은 구역이 보일 것이다. 여기에는 6800세대가 살고 있는 ‘미니 신도시급’ 대단지 아파트(용인 한숲시티)가 위치해 있다. 전체 지도에서 차지하는 면적은 작지만 선거에서 나올 표의 수가 상대적으로 많다. 선거에서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는 곳이라, 용인갑 후보자들이 집중적으로 표심을 살피고 있다. 직전(제21대) 국회의원이던 정찬민 전 의원도 현역 시절 주거지를 용인 한숲시티로 옮겨 지역구를 관리해왔다.

흰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35~64세 인구가 많다. 이 지역은 미성년 세대(0~19세)보다는 청년층(20~34세)이 조금 더 많은데, 성인이 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는 부모 세대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 유권자가 용인갑 전체 인구의 66%를 차지한다. 통상 전국 대다수 선거구에서도 50~64세 인구의 비중이 높다. 이 연령 구간은 투표율도 높다. 한국 정치의 주류 연령층으로 꼽히는 이유다. 인구가 가장 밀집된 용인시청과 처인구청이 위치한 용인갑 중심 도시, 수도권 전철인 용인에버라인이 오가는 자리도 이러한 인구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사실상 용인갑의 전반적인 선거 결과는 흰색 지역 표심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베이지색 지역은 투표구 수가 16개이고, 지도에서 차지하는 면적도 가장 넓지만 유권자 수는 적다. 앞서 용인 한숲시티에 살고 있는 유권자 수가 베이지색 지역 전체 유권자 수의 절반가량으로 집계된다. 땅은 넓지만 사람은 적다. 이곳은 논밭과 산, 물류센터, 골프장, 소규모 공장단지, 화훼단지 등이 혼재된 지역이다. 베이지색 지역에 반도체 클러스터와 산업단지 배후도시, 새 교통망 등이 들어선다.

<그림 3> 용인갑 2022년 투표구별 ‘당일 현장 투표’에서의 윤석열, 이재명 당시 후보 득표율 격차(사전 투표는 포함되지 않음). 당시 용인갑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46.64%를, 이재명 후보가 49.80%를 얻었다.

 

후보자가 바라보는 지점, 유권자가 바라보는 지점

용인갑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 3명이 제시한 공약의 최상단에는 공통적으로 ‘반도체 클러스터’가 있다. 소속 정당은 다르지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관련 공약 노선은 비슷하다. 공사 착공 시기를 앞당기고, 개발이익을 처인구 주민들에게 돌려주면서, 성공적인 최첨단 산업단지 조성을 통해 새로운 용인 처인구(용인갑)를 만들겠다는 게 골자다.

반도체 클러스터 관련 공약이 후보자들이 내놓은 약속의 핵심인 만큼, 유권자들이 여기에 얼마나 반응하느냐는 이번 용인갑 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다만 앞서의 투표소별 인구 특성을 종합하면, 사실상 선거 결과를 좌우할 붉은색 지역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지역과 물리적 거리가 있다. 표를 던져줄 핵심 유권자들이 정작 개발이익 등 직접 수혜 지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원삼면에서는 주민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토지수용과 보상 과정에서 시행사 측과 갈등이 있었다. 당초 2019년 초 용인갑에 반도체 산업단지 투자 계획을 밝힌 SK하이닉스는, 2022년 7월14일로 예정했던 착공식 일정을 취소한 바 있다. 토지수용 절차 등이 주민들의 반대로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총선을 앞둔 2024년 현재도 공사를 위한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다. 향후 삼성전자가 들어올 지역의 주민들과 협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후보자들 공약에는 용인갑에 깔린 ‘반도체 레드카펫’을 걷겠다는 ‘행정 약속’은 있지만, 이번 총선에서 당장 표를 받아야 할 주민들과 시행사, 정부 및 지자체 사이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등의 ‘정치 약속’은 빠져 있다.

용인갑 유권자들의 전입 경로도 눈에 띈다. 〈시사IN〉이 전출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0~2022년 사이 용인갑에 전입신고를 한 유권자 대부분은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용인시 기흥구, 동탄, 오산에서 이동해왔다. 이 지역들은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용인갑 남부가 아닌 서쪽과 서울과 가까운 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 기간 입주가 시작된 용인갑 지역 대단지 아파트들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 용인갑으로 전입해온 유권자들의 생활권 및 이에 따른 이해관계 등은, 앞서의 지역들과 공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용인에버라인 경전철 개통식이 열린 2013년 4월26일, 운행을 기다리는 전동차들이 기지창에서 대기하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용인갑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함께 공통적으로 교통망 개선 및 확충을 제시한다. 좁거나 노후화된 도로를 개선하고, 신설될 산업단지 및 경기도 주변 지역 또는 서울과 연결되는 도로와 전철을 신설하겠다는 게 골자다. 이 공약들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지역과 거리가 떨어진 지역 유권자들도 반길 만하다. 다만 공약 세부 내용을 보면 이미 용인시가 추진하고 있거나, 제21대 총선에서 전임 국회의원의 공약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교통망 개선 및 확충 공약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는 2020년 제21대 총선, 2022년 대선 및 같은 해 지방선거에 이미 반영됐을 수 있다.

2020년과 2024년 사이 용인갑 인구 변화는 크지 않았다. 행정안전부 인구통계(2020년은 4월, 2024년은 1월 기준)를 보면, 용인갑 전체 인구는 4년 사이 25만4483명(2020년)에서 2024년 26만1719명으로 7236명 늘었다. 미성년(0~19세) 세대와 청·중년(35~49)이 각각 2% 줄었고, 장·노년층(50~65세)이 2%, 고령층(65세 이상)이 3% 각각 증가했다. 현재까지는 용인갑에선 인구 유입보다는 고령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 다음 선거구 분석은 ③ 서울 중구성동갑·을로 이어집니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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