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기고] 참사 10년…‘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한겨레 2024. 4. 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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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주기-잊지 않았습니다
1. 소설가 김훈 기고
10년동안의 비바람에 노란 깃발도 빛이 바랬다. 하지만 기억, 약속, 책임의 다짐은 여전히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지난 3월 19일 오후 전남 진도 팽목항 부근에 설치된 추모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1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그날.’

수많은 이들이 울음과 자책, 다짐을 눌러 담아야 했던 세월호 참사가 오는 4월16일 10주기를 맞는다. 304명이 희생된 그날은 한국 사회에 어떤 의미이고, 그날의 기억에서 우리는 무얼 배웠고, 우리 주변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한겨레는 이런 물음에서 시작해 △10년 전 그날의 진실과 이를 규명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 △세월호가 바꾼 삶들과 사회의 변화 △그날을 기리면서도 놓아주기 위한 몸부림 등을 여섯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소설가 김훈이 ‘세월호에서 제2의 탈출 중인 한국 사회’를 진단한 글로 첫 회를 연다.
일러스트 김대중 작가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5분, 세월호 선장 이준석(당시 69살)은 59도 이상 기울어진 세월호를 탈출해서 해경 123정(정장 김경일)으로 건너갔다. 선장 이준석은 팬티 차림이었다. 기관실, 조타실의 간부 선원들도 피구조자의 행색을 하고 123정으로 건너갔다.

기울어진 배 안에는 승객 400여명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에 선내 방송은 “현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승객들에게 거듭 외쳤다. 10시30분 세월호는 뒤집혀서 승객들과 함께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일은 돌이킬 수 없이 어렵게 되었다. 뉴스가 나가자 단원고 학부모들과 일반 승객 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으로 몰려와서 울부짖었다. 물밑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긴 하루가 지났고 바다는 어두워졌다. 해경의 헬리콥터가 밤바다에 조명탄을 터뜨리면서 수면을 수색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방송사 취재팀이 보트에 카메라를 싣고 바다로 나왔다. 취재팀들은 낙하하는 조명탄이 펼쳐놓는 빛의 스펙트럼을, 자신들이 탄 보트를 찍어서 전국에 송출했다. 304명이 숨졌다. 이날 이후로 이준석의 팬티는 내가 살아온 시대의 암울한 표상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① 이 표상의 외양은 희극이고, 내면은 비극이다.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46분, 침몰해가는 세월호 조타실에서 속옷 차림으로 탈출하는 이준석 선장.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나는 1948년 서울생이다. 두 살 때 전쟁이 났다. 나의 가족은 인공 치하의 서울에 숨어 있다가 1951년 1·4 후퇴 때 피난 열차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피난길에서 수많은 아이가 열차 지붕에서 떨어져 죽거나 부모와 헤어져서 미아가 되고 고아가 되었다.

내 엄마는 나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때, 30대 후반이었던 내 젊은 엄마는 두 살 난 나를 포대기에 둘러서 등에 업고 포대기 끈을 뒤로 돌려서 내 엉덩이 밑을 바싹 동이고, 다시 포대기 끈을 앞으로 돌려서 당신의 가슴 위에서 X자로 묶었다. 내가 등 뒤에서 오줌을 싸도 엄마는 포대기를 풀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분리되지 않았고 죽지 않았다. 엄마는 늙어서 정신이 혼미해졌을 때도 6·25 때 피난 가던 얘기를 자주 했다.

―훈아, 그때 내가 너를 어떻게 업었는지 아니.

엄마는 포대기 끈 묶는 시늉을 했다. 나는 울었다. 그때 포대기 속에서 오줌을 싼 아이가 76살이 되어서 이 심란한 글을 쓰고 있다.

엄마가 포대기 끈을 X자로 묶는 방식을 화객선 선원의 용어로는 고박(固縛)이라고 한다. 고박은 네 가닥의 밧줄로 화물을 X자로 묶어서 갑판 바닥에 고정하는 작업이다. 고박은 선원들의 상무(常務)다. ‘고박’은 영어로는 래싱(lashing)이고 래싱에 사용되는 밧줄을 래싱벨트(lashing belt)라고 한다. 래싱벨트는 내 엄마의 포대기 끈과 같은 것이다. 레싱은 별것 아니다. 중뿔난 기술이 아니고 큰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이것은 초보적인 안전상식이지만, 이 별것 아닌 것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엄중한 의미를 가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급변침으로 세월호가 기울기 시작하자, 고박 불량 상태로 과적되어 있던 화물(컨테이너, 중장비, 트럭, 승용차 등)이 갑판에서 분리되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바다로 떨어졌다. 배는 더욱 기울고, 물이 들어왔고, 뒤집혀서 가라앉는다. 세월호가 복원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더욱 기울어진 주된 원인은 고박 불량이었다.

피난길에 나선 엄마가 두 살 난 나를 포대기 끈으로 X 래싱 했듯이 화객선은 컨테이너, 트럭, 승용차를 X로 묶어서 갑판 바닥에 고정해야 하는데, 세월호는 이 X 래싱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과거 아이엄마들은 아이를 등에 업고 포대기를 X자 래싱해 아이를 꼭 붙들어 맸다. 아이가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당연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런 기본이 10년 전 세월호에선 지켜지지 않았고 큰 참사로 이어졌다.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기본을 지키고 있을까. 사진은 1983년 7월14일 낮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아이를 업은 채 비에 젖은 이산가족찾기 벽보와 전단 등을 살피는 아이엄마의 모습. 연합뉴스

래싱벨트 네 가닥을 모두 사용해서 X 래싱을 하면 갑판 바닥의 면적을 많이 차지하게 되어 적재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선원과 해운사 간부들이 수사 과정에서 진술했다. 이로써 이 참사의 심층구조 핵심부가 밝혀졌다. 그것은 이윤이다. 과적, 불법 증개축, 고박 불량, 정원 초과 등 세월호 침몰의 모든 원인은 이윤이다. 진술 끝에 선원과 해운사 간부는 죄송하다… 관행이었다…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라고 말했다.

승객 476명과 컨테이너 145개, 중장비, 트럭, 승용차를 실은 이 화객선은 6·25 때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피난길에 나선 애 엄마만도 못한 안전장치를 하고 바다로 나갔다. 배가 출항의 시동을 걸자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날 이후 10년이 흘렀다. 이 1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전통적 주류를 이루어온 세력은 이 참사와 그 희생자들을 타자화(他者化)하고 소수화(小數化)해서 구석으로 몰아붙이는 언설 행위를 계속해왔고, 이 노력은 상당 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나 증기선 시대에 위험에 처한 배에서 승객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배와 함께 최후를 맞는 영웅적 선장들을 끌어대면서, 혼자서 먼저 도망친 이준석의 비열한 행동을 성토하고, 구조 임무를 맡고 현장까지 와서 기우는 선체 안으로 진입하지 않고 배 언저리에서 우물쭈물했던 구조세력의 무능을 규탄하고, 세월호를 불법 증축하고 상습 과적해서 이윤을 추구했던 청해진해운 회장 유병언의 반사회적인 탐욕을 극언으로 비난하는 언설 행위는 필요한 일이기는 했으나, 그렇게 비분강개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만으로 이 사회 토대의 질병을 정당화할 수는 없었다. 이준석, 김경일(해경 123호 정장), 유병언에게 독박을 씌워서 뭉개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충격으로 넋이 빠져 있던 한동안이 지나자 참사 자체를 일상에서 떼어내서 원격지로 몰아 고립시키려는 움직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슬픔이라는 정서는 전망 없고 폐쇄적인 심리 현상이고 한(恨)에 침잠해 있으면 개인의 삶은 퇴행하고 국가 경제가 오그라져 먹고살기 어려워진다고 말 힘 좋은 논객들이 말했다.

‘일상으로 돌아가자!’가 그 깃발이었고 ‘극복’이 표제어였는데, ‘극복’을 외치는 이 깃발은 사태의 심층구조를 우회했고, 일상 속에서 밥 먹듯이 거듭되는 죽음과 통곡을 외면하고 있었다.

2016년 봄, 이 사건의 중요한 부분에 대한 대법원의 선고가 끝났다.② 이때부터, 문제가 모두 일단락되었다며 ‘일상으로 돌아가자’라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 참사는 대형 ‘교통사고’이며 그 희생자들은 재수 없이 그 사고에 얽혀든 불운한 소수의 사람들(the unlucky few)이므로 적절한 보상과 조문과 위령의 의전을 베풀어 줌으로써, 이 우연한 사태가 산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의 영역으로 넘어오지 않도록 하고, 소비경제에 미치는 심리적 악영향을 막아 경기를 활성화하자는 것이 세월호 ‘극복’ 움직임의 핵심적 논리였다. 이 ‘극복’ 움직임의 상당한 부분이 정치권력에 의해 작동되고 있었다는 것은, 증명할 수는 없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와 수컷닷컴 회원 등 30여명이 지난 2014년 9월13일 세월호 유가족 단식은 거짓이라며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앞에서 시민들에게 초코바를 나눠주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선장 이준석이 기울어진 배에서 도망쳤듯이, 그리고 해경 구조세력이 승객 400여명이 남아 있는 배 안으로 진입하지 않았듯이, 참사 이후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다시 세월호로부터 탈출했고, 기우는 선체 내부로 들어가서 사태의 핵심부와 직면하지 않았고, 희생자들을 소수자로 몰아서 고립시켰고 타자화했다. 이것은 제2의 세월호 탈출이었다. ‘제2 탈출’의 깃발과 언설은 강력하고 화려했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회는 이 거대한 비극의 의미를 내면화하지 않았고, 그 비극의 심층구조를 맞대면하지 않았고 미래를 향한 반성과 실천의 발판을 확보할 수 없었다. 세월호 이후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일상적인 노동과 생산과 생활의 현장 속에서 수많은 이준석, 김경일, 유병언과 만나게 된다.

그 후 10년 동안 기업이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2만명 이상(아아!)③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팔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터지고 골병이 들었다. 또 정부가 책임져야 할 영역 안에서 대형·중형·소형 재난사고가 거듭 발생해서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2022년 10월29일에는 서울 이태원에 놀러 나왔던 시민 159명이 경찰의 도움을 절규하다가 깔려 죽고 밟혀 죽었다. 이 모든 비명(非命)이 모두 일상 속에서 벌어졌으니 돌아가야 할 일상은 어디인가?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한국의 근대사는 가야 할 길이 멀고 발걸음이 다급했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초개로 여기는 사회 풍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것이 지나친 말이라는 것을 내가 모르지 않거니와, 국가와 사회가 인간 생명을 유린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목표와 사명을 설정해 놓고 그쪽을 향해서 죽음에 죽음을 잇대는 돌진을 강행해온 것이 사실이므로 나의 말은 다소 거칠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환경재단 주최 피스앤그린보트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지난 2006년 12월13일 첫 기항지인 일본 후쿠오카현 타가와(田川)시에 있는 \'한국인 징용 희생자 위령비\'에서 추모식을 올린 뒤 내려오고 있다. 일제에 강제 징용되었다가 희생된 조선인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약 1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배체제가 다수 인간의 생명을 일회용으로 소모해버리는 사태는 일제강점기 경부선, 경의선, 경경선(중앙선) 철도 건설 현장에서 대규모로 벌어졌다. 연선(沿線) 현장을 따라서 수많은 조선 노동자가 작업 중 사고로 죽었고, 병들어 죽었고, 얼어 죽었고, 일본인 감독관들에 의해 타살, 사살, 처형되었다.④ 구간별 개통식에는 총독부 고위 간부들과 민간인들이 모여 궁성요배하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했다.

몇년 전 일본에 가서 1930년대 징용된 조선인들이 희생당한 구리광산, 무연탄광산을 답사했는데, 그 현장에 ‘순난자(殉難者) 위령비’라는 것이 세워져 있었다. ‘순난’은 어려움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는 뜻이다. 순난이라는 단어의 형식은 모호했지만, 그 모호한 형식으로 표현하려는 뜻은 분명했다. 침략전쟁의 후방기지에 동원되어서 야만적 수탈 노동에 희생된 죽음은 ‘순’(殉)으로 미화되었고 침략전쟁은 ‘난’(難)으로 위장되었다. 순난이라는 두 글자를 보면서 나는 국가나 민족이 자신의 역사 앞에서 정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했다. 이 위장과 미화는 식민지 철도 개통식에서 제창했던 황국신민의 서사나 기미가요와 맥이 통하고 있었다.

광복 후에도, 목숨을 수탈해서 목표를 이루는 생산 방식과 건설 방식은 여러 공화국을 거치면서 전승되었다.

경부고속도로는 착공한 지 887일 만에 428㎞를 개통했다. 세계는 이 공사의 속도와 공격성에 경악했다. 공사는 노동자의 시체를 넘고 넘어서 전진했다. 이 공사에서 노동자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경부 간 중간 지점쯤 되는 금강휴게소에 죽은 노동자들을 위한 위령탑이 세워졌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던 날(1970년 7월7일) 박정희 대통령 내외는 이 위령비를 제막하고 헌화했다.

위령비에는 ‘그들은 실로 조국 근대화를 향한 민족 행진의 산업전사요…’라고 지금도 새겨져 있다.(이은상 지음)

2000년 7월6일 충북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 위령탑 앞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순직한 노동자의 한 유가족이 헌화하고 있다. 착공 887일 만에 428㎞ 길이 고속도로를 완공한 ‘속도전’에 세계가 놀랐지만, 이 과정에서 노동자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옥천/연합뉴스

경부고속도로는 국토의 척추 간선으로 ‘한강의 기적’의 서막이었고, ‘근대’로 가는 지름길이었는데 위령비는 그 입구에 서 있다. 희생자들은 산업전사(産業戰士)로 추켜세워졌고 그 후 반세기 동안 전국의 노동 현장에서 수많은 ‘산업전사’들의 주검이 쌓여갔다.

노동 현장에서의 비명(非命)들은 복잡하거나 난해한 병리학적 과정을 거치는 죽음이 아니다. 이 많은 죽음은 대부분이 날벼락이다. 일제강점기 철도 공사장이나 경부고속도로 공사장에서 노동자들은 흙이 무너져서 깔려 죽고, 발파작업 중 날아오는 돌에 맞아 죽고, 기계에 끼여 죽고, 떨어지는 바위에 눌려 죽고, 고소작업 중에 떨어져 죽었다. 그로부터 100년 이상 지나서 한국은 우주선을 올리고, K-머시기들이 세계를 제패했는데, 작업 현장의 노동자들은 여전히 깔려 죽고, 맞아 죽고, 파묻혀 죽고, 끼여 죽고, 떨어져 죽고, 부딪혀 죽고, 말려 들어가 죽고, 감겨 죽는다. 식민지 시대나, ‘조국 근대화’ 시대나 K-머시기들의 시대나 사고의 유형과 원인은 단순하고 원시적이고 반복적이다. 세월호는 별것도 아닌 X 래싱을 하지 않아서 기울었고 침몰했다. 무엇이 X 래싱을 못하게 하는가를 세월호 선원들이 검찰 조사에서 이미 말했다.

정상적인 사유 능력과 감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이 참을 수 없이 단순한 원시성과 한 세기에 걸친 불변의 무지몽매에 절망할 수밖에 없는데, 죽음이 망각에 묻혀 일상화되면 사람들은 절망을 절망으로 인식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상실하게 된다.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 위원들이 2019년 4월3일 오후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 현장조사를 하고 있다. 태안/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러하되, 세월호 참사는 이 산업화되고 일상화된 죽음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시민의식을 각성시켰고, 결집시켰다. 2018년 12월10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에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젊은 노동자 김용균의 죽음은 생명의 안전뿐 아니라, 저임금, 불완전고용, 하도급, 외주화, 민영화, 중간착취 등 산업 전반에 누적됐던 구조적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일상생활의 안전과 노동 현장의 안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행동은 거듭된 죽음의 배후를 이루는 조건들을 혁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것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달걀로 바위를 쳐서 겨우 얻어낸 결과물이었는데, 2024년 1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하는 조항을 2년간 더 유예하자는 경제단체들의 공세로 법 전체가 무력화될 기로에 처하게 되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미 준비기간 2년을 주어서 법 적용을 유예해 주었는데, 다시 2년을 미루어 달라는 것이 경영자 쪽의 요구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고 지금도 알지 못하며, 안전시설을 갖출 자금이 없고, 사업주가 처벌받으면 공장을 돌릴 수가 없게 되어서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밥 먹기가 어렵게 된다고, 경영자 세력은 국회와 정부를 찾아다니며 로비했다. 이들의 말은 언론을 통해서 쾅쾅 울렸다. 이 말들은 말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범위 안에서 맞다. 나는 그 범위 밖을 말하려 한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준비가 되지 않은 까닭은 지난 2년 준비기간 동안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비하지 않으면 준비는 되지 않는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그 ‘무엇’을 준비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 마나 한 소리다. 법조문이 모호해서 무엇을 할지를 몰랐다고 하는데 사업장 최고책임자가 날마다 루틴하게 돌아가는 작업 과정에서 어느 장소, 어느 단계, 어느 위치가 위험한지를 어찌 모를 수가 있는지를 나는 모르겠다. 돈이 없어서 안전설비를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생산과정 투입되는 자금의 항목 중에서 안전비용의 크기와 순위를 맨 밑바닥에 설정해 놓고 정부가 주는 돈과 조치를 기약 없이 기다리는 동안 여러 작업장에는 주검들이 쌓여갔다.

중소기업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 및 건설업계 17개 협·단체 소속 대표 및 회원들이 지난 1월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계단 앞에서 50인 미만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유예를 호소하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사업주가 처벌받으면 공장을 돌릴 수 없어서 다들 밥 못 먹게 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맞는 말이다. 나는 이 ‘맞음’의 밖을 말하려 한다.

일자리가 모자라서 밥 먹기 어려운 시대에 밥 없는 사람들을 밥으로 겁박하면, 사람들은 밥과 죽음의 기로에서 밥 먹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밥과 죽음이 섞여 있는 자리를 향해서 밥 없는 사람들은 가고 또 간다. 살려고 먹는 밥숟가락 속에 죽음이 들어 있다. 날마다 거듭되는 죽음이 빤히 보이는데 동료 인간의 목숨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공장을 돌려서 나의 밥을 먹고, 내가 재수 없으면 나의 목숨을 동료 인간의 밥의 토대로 바쳐야 한다면 이런 밥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밥이 아니다. 밥을 벌어먹으려다 죽은 사람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별수 없이 또 밥을 벌러 가야 하는 사람들을 향해, 지난 2년 동안 아무 준비도 안 한 사람들이 내가 감옥 가면 너희들은 모두 밥 못 먹게 된다고 하는 말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들이대지 말고, 무엇을 우선 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말을 듣고 싶다.

‘조국 근대화’ 이후 산업과 생활의 현장에 지층처럼 쌓여 있는 주검들은 모두 X 래싱 정신의 결여, 체질이 되고 생리가 된 무신경,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생명을 업신여기는 마음, 욕망과 목표를 향한 필사의 돌격에서 비롯되었다.

쓰다 보니 X 래싱으로 말이 길어졌는데, 묶고 조이는 일을 바로 하자는 말이고, 피난 가던 내 엄마의 포대기 끈을 자랑하려는 뜻은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자리에 다시 가 봤더니 봄을 맞는 섬들이 아지랑이 속에서 나른했고 수평선에까지 물비늘이 반짝였다. 바다는 빛으로 덮였고 신생(新生)하는 시간의 미립자들이 물 위에서 춤추고 있었다.

※이 글 중에서 세월호의 침몰과 수사에 관한 사실적 기록은 ‘세월호, 그날의 기록’(진실의 힘, 세월호기록팀, 2016)에 따랐다.

<각주> ①이 팬티는 가끔 내 꿈에 나타난다.

②2016년 초 대법원은 선장 이준석에게 30년, 그 밖의 선원 14명에게 1년6개월~12년을, 해경 123호 정장 김경일에게 징역 3년을 확정했다(상고 기각). 그밖에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 종사자, 세월호 인허가 관련자 등에 대한 재판을 마무리했다. 청해진해운 회장 유병언은 사고 직후부터 숨어 지내다가 2014년 7월 주검으로 발견되어 공소권 없음 처분되었다.

③고용노동부는 2013~2022년까지 10년 동안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1만9847명이라고 집계했다. 이 수치는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라고 인정한 죽음의 건수이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한 죽음과 은폐된 죽음의 규모가 얼마인지는 정부 통계로는 알 수가 없다. ④일제강점기 철도 건설 공사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실태는 정재정 교수의 역작 ‘철도와 근대서울’(2018, 국학자료원)과 ‘일제 침략과 한국 철도’(1999,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에 소상히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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