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과 겹친 트랜스젠더의 날… 美보수·진보 충돌

바이든, ‘트랜스젠더의 날’ 포고
트럼프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격”
성소수자 문제, 美대선 핵심 이슈로

지난해 4월 10일 백악관에서 열린 부활절 기념 행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웃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31일 기독교 2대 경축일인 부활절을 맞아 미국 보수와 진보 간 진영 충돌이 격화하고 있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조 바이든 정부가 매년 기념일로 선포해온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Trans Day of Visibility)’과 날짜가 겹쳤기 때문이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롯한 지지자들은 이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하며 맹공에 나섰다.

부활절은 예수의 부활을 축하하는 날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 이후 첫번째 보름달이 뜨고 나서 돌아오는 일요일을 말하는데, 날짜가 매년 유동적이다. 반면 성소수자 단체가 주도해 2010년부터 기념하기 시작한 ‘트랜스젠더의 날’은 매년 3월 31일로 고정돼 있다. 올해는 3월 31일로 날짜가 같았는데, 이틀 전인 29일 바이든은 ‘트랜스젠더의 날’ 포고문을 통해 “트랜스젠더 미국인들의 특별한 용기와 공헌에 존경을 표한다”고 했다. 이른바 ‘LGBT’라 불리는 성소수자 권익을 옹호해온 바이든 정부는 2021년부터 매년 포고문을 통해 이날을 기념일로 선포해왔다.

그러자 트럼프 선거캠프는 “소름 끼치고 모욕적”이라며 비판에 나섰다. ‘왜 하필 기독교 축일에 바이든이 성소수자 권익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내야하냐’는 취지다. 캐롤라인 레빗 대변인은 “바이든의 기념일 선포는 수년 동안 이어온 기독교 신앙에 대한 공격의 일환”이라며 “바이든 선거캠프와 백악관은 미 전역의 카톨릭·개신교 신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X(옛 트위터)에 “부활절 핵심 교리를 배반한 바이든 정부를 미국인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은 “날짜가 겹치는 걸 아무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며 “모든 기독교인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모욕”이라고 했다.

성소수자 문제는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중요한 사회 이슈 중 하나다. 보수 진영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스포츠팀 참여, 미성년자에 대한 성전환 치료 등에 거부감이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남성의 여성 스포츠 참가를 금지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공화당 정치인들이 기회가 될 때마다 이를 적극적으로 정치 쟁점화하고 있다. AFP 통신은 “대선 향배를 좌우하는 ‘문화 전쟁’ 속 일어난 가장 최근의 충돌”이라고 했다. 부활절을 맞아 백악관에선 수천 명의 어린이가 달걀을 굴리는 행사가 열리는데 백악관이 ‘지나치게 종교적이거나 정치적인 장식은 안된다’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도 뿔난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

논란이 계속되자 앤드루 베이츠 백악관 부대변인은 “기독교인인 바이든은 모든 미국인의 존엄과 자유를 옹호한다는 입장”이라며 “정치인들이 증오스런 수사로 나라를 분열시키는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