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돌려준 전세금만 3.5조원, HUG 적자 9배 늘었다
전세 사기와 역전세난 여파로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보증보험을 취급하는 공기업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4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한 해에만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느라 3조5000억원 이상을 지출한 탓이다.
이런 실적 악화는 지난 정권의 부동산 정책 실패의 여파로 보는 분석이 많다. 2020년 8월 도입된 ‘임대차 3법’의 부작용으로 전셋값이 치솟고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정부는 그해 9월부터 HUG의 보증 수수료를 70~80% 인하했다. 세입자 불만을 가라앉히려 한 정책 때문에 보증보험 가입액은 2020년 37조2595억원에서 2021년 51조5508억원으로 폭증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보증보험 가입 확산이 역설적으로 ‘무자본 갭투자’를 통한 전세 사기의 바탕이 됐고, HUG의 조 단위 손실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HUG의 재무 구조가 나빠지면 신규 보증 발급이 어려워지고, 세입자들이 주거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최근 HUG에 5조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섣부른 부동산 정책이 전세 사기 피해를 확산하고, 공공기관의 부실과 거액의 세금 투입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HUG 적자 규모, 1년 새 9배로
31일 HUG 결산 공고에 따르면, 지난해 HUG 당기순손실은 3조8598억원으로 집계됐다. 2022년 4087억원 순손실에 이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1993년 설립 이후 최대 적자다. 2010년만 해도 HUG는 매년 3000억~4000억원 안팎 영업이익을 거둬 재무구조가 우량한 공기업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10년 치 영업이익을 최근 2년 사이 적자로 날리게 됐다.
이 같은 실적 악화는 지난해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전세 사기와 역전세 여파로 세입자들이 제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고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HUG가 지난해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지급한 돈(대위변제액)은 3조5540억원으로 역대 최다다. 1년 전(9241억원)의 4배 수준이다.
HUG는 대위변제 후 보증 사고가 발생한 주택을 매각하거나 경매에 부쳐 돈을 회수한다. 이 과정에서 통상 1~2년 정도 걸리지만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 여파로 적정 가격에 매각이 이뤄지지 못하면서 회수가 늦어지고 있다. 피해 주택을 경매에 부친다 하더라도 평균적으로 피해 금액의 70~80% 정도만 회수 가능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 단위 손실이 불가피하다.
HUG의 경영 부담은 올해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세시장 거품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2년 상반기 체결했던 계약의 만기가 올해 돌아오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기준 수도권 주택 전셋값은 2022년 2월에 비해 13% 낮다.
◇보증 중단 우려한 정부, 5조원 긴급 수혈
HUG의 손실이 급증하면서 자칫 신규 보증 발급이 중단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세 보증보험 등 보증을 발급할 수 있는 한도가 HUG 자본 총액과 연동하기 때문이다. 손실이 누적돼 자본이 줄어들면 보증 발급 한도가 줄어드는 구조다. HUG의 자본은 2021년 말 6조470억원에서 작년 말 2조996억원으로 줄었다.
HUG의 최대 주주(70.25%)인 국토교통부는 보증 중단을 막기 위해 지난달 4조원 규모 도로공사 주식을 HUG에 현물 출자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국토부는 작년 2월과 12월에도 각각 7000억원, 3839억원을 현금으로 출자했다. HUG 자본 확충을 위해 1년 사이 약 5조1000억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한 구제 장치는 필요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피해를 메우는 구조는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윤상 KDI 연구위원은 “보증기관의 손실을 줄이려면 보증료율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의 반환보증은 주택 유형별로 같은 수수료율을 적용하는데, 이를 임대인의 신용등급이나 상환 능력에 따라 차등화하는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상습적으로 보증 사고를 일으키는 악성 임대인에 대한 관리 감독과 전세 사기범에 대한 처벌 강화가 시급하다는 의견도 많다. 작년 12월부터 악성 임대인 명단이 공개되고 있지만, 경찰 조사 또는 재판이 진행 중인 임대인은 제외돼 현재까지 공개된 사람은 28명뿐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추가 범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범죄 의도가 명확한 악성 임대인은 조사 중이라 하더라도 일부 정보라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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