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들의 행복한 봄꽃나들이...“귀로 코로 봄꽃축제 즐겨요”

장윤 기자 2024. 3. 3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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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시각장애인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마음으로 걷는 봄꽃 산책'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 /장윤 기자

“평소에는 꽃이 폈다는 방송 뉴스를 들으며 봄이 왔다는 걸 어렴풋하게만 알았는데, 오늘은 직접 밖에 나와 직접 봄꽃을 느낄 수 있어 봄이 온 게 실감나네요!”

2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윤중로 벚꽃길. ‘마음으로 걷는 봄꽃 산책 투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류정일(56)씨가 살구꽃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류씨는 10대 후반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그는 “어린 시절 봤던 꽃의 모양과 색을 어렴풋하게 기억하고 있다”며 “오늘 영상해설을 들으니 새싹이 돋아나고 온갖 색의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그대로 연상된다”고 했다.

영등포구청·문화재단은 시각장애인도 봄꽃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해당 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한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축제 해설 프로그램을 서울시가 운영한 건 이번이 최초다. 시각장애인의 관람을 돕기 위해 동선 안내와 봄꽃의 세부 묘사를 포함한 해설을 하는 프로그램으로, 다음 달 2일까지 1일 1회 운영될 예정이다.

이날 프로그램에는 시각장애인 10명, 동행인 10명, 영상해설사 2명 총 22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후천적 장애인으로, 색과 꽃의 형체에 대한 개념이 있다고 한다.

29일 오후 시각장애인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 열린 '마음으로 걷는 봄꽃 산책'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모습. /장윤 기자

영상해설사 일을 4년째 했다는 박수민(29)씨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중 눈이 안 보이는 사람들이야말로 청각적인 설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영상해설사 일을 시작했다”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어떤 말로 설명해야 눈앞의 풍경을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지가 늘 고민”이라고 했다. 영상해설사는 상세한 묘사, 다양한 감각의 활용을 통해 시각장애인이 봄꽃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이날 시각장애인들은 영상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손으로 꽃잎을 쓰다듬고 코로 꽃내음을 맡는 등 ‘눈과 귀로’ 봄꽃을 한껏 즐겼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정인직(53)씨는 조심스레 살구꽃을 만지며 “꽃잎이 여리고 부드럽다. 꽃송이가 작아서 조심스럽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 병을 앓은 이후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는 정씨는 “꽃 모양이 완전히 그려지는 건 아니지만, 해설을 들으며 꽃을 만져보니 꽃의 모양과 색이 평소보다 훨씬 실감나게 다가온다”고 했다.

정씨는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여행을 자주 다닌다고 했다. 그는 “여행지 풍경을 보지 못해 지역 맛집 탐방 정도에 만족해왔다”며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이러한 해설 프로그램이 많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의도봄꽃축제가 열리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윤중로 인근에서 시민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뉴시스

70대 시각장애인 최모씨는 남편 A씨의 손을 잡고 행사에 참여했다. 그는 10년 전 사고로 시력을 잃었을 당시 “온갖 고운 색의 꽃이 피는 봄이 오면 꽃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너무나도 슬퍼 사고 이후 거의 5년간 일부러 봄나들이를 나서지 않았다”고 했다. 최씨는 “눈으로 꽃을 볼 수는 없어도 촉감과 향기로 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특히 살구꽃 향기가 좋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신창숙(52)씨는 “20대 초반 시력을 잃기 전까지 가장 좋아하던 꽃은 목련이었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목련의 흰 빛깔이 고와서 좋아했다면, 이제는 진한 향 때문에 목련이 좋다”고 했다. 그는 “시력을 잃고 난 뒤 산수유가 노란색이라는 사실을 한동안 잊어버리고 살았는데, 해설을 듣고 산수유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그려졌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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