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없앤 객석과 무대, 전쟁 넘어 사랑을 노래하다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24. 3. 31.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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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 3년 만에 국내 재공연…독특한 무대 구성과 ‘일렉트로 팝 오페라’로 관객과 호흡

(시사저널=조용신 뮤지컬 평론가)

2020년 국내 초연 예정이었다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미뤄져 한 해 후인 2021년 관객들에게 첫선을 보였던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이 3년 만에 시즌 재공연을 시작했다. 이 작품의 원작은 러시아 소설 《전쟁과 평화》(1869)로,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이자 소설가, 시인, 사상가로 유명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1828~1910)의 대표작 중 하나다. 그의 또 다른 소설 《안나 카레니나》(1877) 역시 뮤지컬로 만들어져 소개된 바 있다.

《그레이트 코멧》 공연 사진 ⓒ(주)쇼노트 제공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가 원작

《그레이트 코멧》의 원제는 《나타샤와 피에르 그리고 1812년의 대운석(Natasha, Pierre & the Great Comet of 1812)》이다. 브로드웨이 작곡가 겸 극작가 데이브 말로이가 《전쟁과 평화》의 방대한 원작 페이지 중에서 제2권 5장에 해당하는 70페이지 분량을 압축해 이 작품을 창작했다. 주인공이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인물인 '피에르'는 정서적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나타샤'와 '아나톨'은 그들의 관계와 행동으로 사건을 이끄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다.

장르적으로는 '일렉트로 팝 오페라'를 지향하지만, 19세기 배경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과 함께 힙합, 록, 일렉트로닉까지 다양하게 혼합돼 있다. 또 대사 없이 모두 노래로 이뤄진 '성 스루(sung-through)' 뮤지컬로서 인터미션 20분을 포함한 전체 2시간40분의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총 27곡의 노래가 쉼 없이 이어진다. 극장에 들어서면 온통 붉은색으로 꾸며진 극장과 무대를 볼 수 있다. 객석에 이르는 길에는 마치 러시아의 오페라하우스에 입장하는 듯한 느낌의 레드 카펫이 인상적이며, 벨벳 커튼과 천장에 매달려 영롱한 빛을 내뿜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에 띈다. 자세히 보면 극장 내부 자체가 아름다운 붉은색의 객석 경관을 드러내고 있다.

공연장인 유니버설아트센터는 1981년 리틀엔젤스예술회관으로 개관했다가 2007년 유니버설아트센터로 명칭을 변경하고, 대극장(1082석)에서 대형 뮤지컬과 무용 등을 공연하는 등 다목적으로 활용되는 곳이다. 극장 인테리어 중에서 매표소와 객석 입구의 화려한 몰딩은 러시아 귀족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의 미술적 콘셉트와도 조화를 이뤄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주얼로 꼽힌다.

이 작품의 특징으로는 앙상블과 연주자가 통합된 배역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연이 정시에 시작하기 전부터 악기를 연주하며 무대를 돌아다니는 뮤지션들이 있는데, 오케스트라·밴드석에 앉아 연주에만 집중하는 인원들과 비교할 때 이들은 오케스트라 피트를 벗어난 '로빙 아티스트'(Roving Artist: 무대와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공연예술가)라 부른다. 이들은 활동적인 움직임을 수반한 연주에 연기까지 보여주는 만능 재주꾼이다.

연기와 노래의 비중이 높은 주연배우 중에서도 직접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배역이 있다. 극 초반에는 철학자와 같은 무게감이 느껴지는 주인공 피에르가 아코디언과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후반부에 아나톨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공연장을 거대한 파티장으로 만든다.

나타샤 역을 맡은 이지수와 피에르 역을 맡은 케이윌 ⓒ(주)쇼노트 제공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애 묘한 긴장감

이 작품의 무대 디자인은 다른 여타 뮤지컬과는 확연한 차별점이 있다. 무대와 객석의 명확한 경계가 없이 여러 개의 원형 무대가 단차를 두고 입체적으로 겹쳐있다. 배우들이 관객과 가깝게 소통할 수 있도록 무대 위쪽과 무대 사이에도 객석이 분포돼 있다. 여러 구역으로 나뉜 객석과 원형 무대들이 질서를 가지고 얽혀있는 독특한 디자인은 배우들이 극 중에서 멀리 떠나거나 정처 없이 헤매는 장면에서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어떤 캐릭터가 무대를 한 바퀴 돌면 전후 서사의 온도는 달라져있게 되는데 이는 묘한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선사한다.

일반적인 공연에선 객석에 있는 모든 관중이 비슷한 한 방향으로 무대를 바라보게 돼 엇비슷한 시각적 체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대와 객석이 구역별로 섞여 독특하게 분포돼 있다. 마치 야구 경기장의 외야석처럼 반대편에도 관객이 있고, 배우들이 그 사이를 오가는 동선을 가지고 있기에 관객들 모두 독특하고 개인적인 관극 경험을 하게 된다. 3년 전 초연 당시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무대와 객석 사이의 접촉이 최소화됐다. 이 작품이 원래 가지고 있던 이머시브 요소는 팬데믹으로 축소가 불가피했다. 그에 비해 이번 시즌 공연은 관객들이 무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참여하면서 작품의 일부가 돼 배우들이 외치는 구호와 동작에도 열렬히 호응한다.

주인공 피에르 역은 하도권, 케이윌, 김주택이 맡았다. 부유한 귀족이지만, 벗이 없고 우울과 회의감 속에 방황하는 역할이다. 세 배우의 음악 장르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노래로만 이어가는 이 작품을 취향대로 감상할 경우 가장 비중이 높은 피에르를 따라 관극을 택하는 것이 좋다.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원정 온 상황에서 징집된 약혼자 '안드레이'를 그리워하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여인 나타샤 역은 이지수, 유연정(우주소녀), 박수빈(우주소녀)이 나눠 맡았다. 짝을 잃은 나타샤를 유혹하는 젊은 군인 아나톨 역은 고은성, 정택운(벅스), 셔누(몬스타엑스)가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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