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의 걸작 발자크상, 한강변 마석에 자리 잡은 이유는

노형석 기자 2024. 3. 3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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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의 운명
2010년 컬렉터 이대우씨와 그의 어머니 반청자씨가 기증한 로댕의 걸작 발자크상. 모란 조각경원 경내 ‘수장고와 노래의 탑’ 내부의 전시공간에서 천장의 자연광을 받으며 전시되고 있다. 노형석 기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라면 누구나 두 대가를 이야기할 듯하다. 16세기 르네상스 절대거장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와 19~20세기 프랑스 거장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이다. 특히 로댕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높은 좌대 위에 앉은 1880년대 ‘생각하는 사람’이고 이 작품이 포함된 ‘지옥의 문’이나 그의 다른 대표작인 ‘칼레의 시민’ ‘청동시대’를 말하는 이들도 있을 터다.

한국에는 삼성가에서 서울 남대문로 옛 로댕갤러리에 전시했다가 철거한 ‘지옥의 문’과 ‘칼레의 시민’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실 그의 다른 대표작인 ‘발자크’ 상(1898년작)이 한국 현대조각의 주요 거점으로 꼽히는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미술관(1990년 개관)에서 유유하게 자태를 내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서울로 들어가는 한강 물줄기의 유유한 흐름을 볼 수 있는 모란미술관 경내 조각공원의 한구석에 하늘을 향해 비스듬하게 날개가 치솟은 모양으로 자리한 건축조형물 ‘노래하는 탑’ 안에 발자크 상은 있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탑 안의 콘크리트 공간에 둘러싸인 채 천장에서 들어오는 자연의 빛을 받으면서 관객들에게 숙연하면서 묵직한 거장 내면의 울림을 전하고 있다.

모란 조각공원 안에 있는 노래하는 탑과 수장고 건물의 발자크상 전시장 입구. 노형석 기자

발자크 상은 ‘인간희극’‘고리오영감’ 등 숱한 사실주의 명작 소설로 세계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오노르 드 발자크(1799~1850)의 석회석 조각상이다. 1891년 프랑스문인협회의 의뢰로 제작을 시작한 이 상은 무엇보다도 망토 자락으로 둘러싸인 높이 3m에 가까운 생생한 몸 덩어리란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준다. 당대 영웅이나 위인을 위엄있고 명료하게 표현해야 한다는 숨은 철칙을 벗어났다. 울퉁불퉁한 굴곡과 흉터 같은 파임이 드러난 거대한 덩어리로 발자크의 용모를 형상화했다. 빚에 가위눌려 살면서 생계와 빚 갚기를 위해 절박하게 작품을 써야 했으나 정작 작품에서는 당대 현실과 인간군상의 단면들을 잔혹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묘사했던 그의 작품세계, 작품 속 인간군상의 단면들까지 융합시켜 표현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전 모습.

무려 7년간 작가의 삶과 작품들을 연구하고 신체 치수까지 검토할 정도로 치밀하게 천착한 결과물이 바로 이렇게 인상주의를 넘어 현대 추상주의의 느낌까지 자아내는 문제작으로 나온 것이다. 작품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1898년 파리에서 석고 원본이 전시되었을 때 석탄 자루와 눈사람, 물개와 비슷하다는 조롱에 찬 평단의 공격을 받았고, 작품을 의뢰한 문인단체는 ‘조잡한 스케치’라며 인수를 거부했다. 로댕은 작품 비용을 반납하고 석고 모형을 파리 교외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옮겼고 오랫동안 보관했다. 결국 그가 죽고 수년이 지난 뒤에야 청동상으로 주조해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모란미술관의 발자크 상은 이렇게 몰드로 뜬 석회상 10여점 가운데 20세기 중반 제작된 마지막 시기의 상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지대한 명작의 일부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 상은 어떤 연유로 모란미술관에 들어온 것일까.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미술관 쪽의 공식기록과 설명에는 지난 2010년 이 상이 컬렉터였던 반청자(현재 101살)씨의 기증으로 미술관에 전시할 수 있게 되었다고 나온다.

미술관 인근 남양주에 오랫동안 살면서 이연수(79) 모란미술관장과 사교모임에서 함께 만나 모녀처럼 막역한 사이가 된 반씨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해달라며 소장품을 내어준 것이지만, 사실 이 작품은 그의 아들인 사업가 출신의 원로 컬렉터 이대우(77)씨의 애장품이었다. 1978년 프랑스 정부와의 교섭을 통해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 아틀리에에서 제작한 마지막 에디션을 거액을 주고 사들여 30년 넘게 소장했던 명작이었다. 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당시 박정희 정부에서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으로 완공했던 세종문화회관의 미술품 전시와 이 작품이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2010년 발자크상을 기증한 반청자 여사는 올해 101세의 고령이다. 남양주 자택에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석회상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때 한불문화예술협회라는 것이 막 생긴 상황이었는데, 세종문화회관이란 나라의 유력한 예술기관이 건립됐으니 여기 전시관에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과 연관된 유명 미술품을 들여와 전시하자는 사업을 추진한거지요. 저는 원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무척 좋아했던 터라, 이 기회에 아예 작품을 사들여 국내 관객들에게 작품도 선보이고 소중한 소장품으로 간직하고 감상하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건설업체를 운영하고 있던 이씨는 주한프랑스문화원장을 통해 프랑스 정부와 교섭해 지스카르 데스탱 당시 대통령의 추천까지 받으면서 루브르 당국을 움직여 마침내 당시 돈으로 30억 가까운 거액에 생각하는 사람과 발자크상, 그리고 세례 요한의 석고상 석 점을 구매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아시아 판매창구는 일본의 에이전시가 유일해 이를 통해 접촉하고 상공부 장관의 특별허가서를 받아 작품을 들여온 뒤 전시회를 개최한다. 1978년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 ‘루브르박물관 소장 조각 및 판화 100선’전이었다.

모란미술관 소장 발자크상에 새겨진 루브르 아틀리에의 인장. 모란미술관 제공

이 전시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애의 자격으로 참석해 테이프커팅을 하기도 했다. 이후 남양주 자택에 들어간 석점의 로댕 작품들은 야외와 실내에 나눠 소장됐으나 오랜 기간 야외에 있던 발자크상이 변색되고 훼손이 심해진 것이 소장자의 마음에 걸려 우선 이 작품을 모란 미술관에 기증한 요인이 됐다고 한다. 결국 어머니의 강력한 의지로 2010년 작품을 기증했고, 기증을 받게 된 미술관 쪽은 반씨 집 수장고를 조사해 바닥에 떨어져있던 루브르 아틀리에의 제작품 인장을 확인하고 루브르 미술관에 연락해 공식적인 에디션이라는 진품 확인서를 확보했다. 이런 경위를 거쳐 인계된 발자크상은 고 이영범 건축가가 이미 2002년 설계해 지은 노래하는 탑 안의 빈 공간으로 들어가게 됐고,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기서 관객들에게 자태를 내보이는 중이다.

발자크상이 전시된 공간인 ‘노래하는 탑’. 2002년 건축가 이영범이 보수를 받지 않고 설계해 올린 높이 27m짜리 건축물이다. 노형석 기자

전시공간인 ‘노래하는 탑’은 거장 아이엠 페이의 제자인 이영범 건축가의 주요 작품이긴 하지만, 작품 전시를 염두에 두고 지은 건물이 아닌 탓에 발자크상이 어둠 속에 묻혀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 소장자 이씨는 “습기로 인해 상이 많이 변색됐는데 새로 칠하는 것도 보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을 꺼내기도 했다. 이제 원래 소장자 쪽과 모란미술관, 미술계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발자크상의 미래를 위한 논의를 새롭게 해야 할 시점이 왔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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