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 지나도 가려진 세월호의 진실…남겨진 자들을 위해

한겨레 2024. 3. 3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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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손희정의 영화담(談)
바람의 세월
사참위 조사에도 진상규명 미흡
유족이 든 카메라 ‘10년의 기록’
사회적 참사 상기해야 할 4월
‘세 가지 안부’도 공동체 상영
㈜시네마달 제공

자랑스러운 공영방송 케이비에스(KBS·한국방송)에는 ‘다큐인사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얼마 전 여기서 준비하던 세월호 참사 10주기 다큐멘터리 방영이 무산됐다. 사쪽에서 밝힌 이유는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비판이 거세지자 케이비에스는 “불방이 아니라 확대 제작이며 애초부터 ‘세월호 방송’이 아니었다”는 이상한 설명을 내놓았다. “세월호 방송이 아니라 대형 재난사고 생존자 피티에스디(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극복기 방송”을 만들어서 “방송법상 공정성의 준거인 형평성·균형성의 원칙”을 따르고자 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안 맞는 해명이다.

더 황당한 건 방송 예정일이 4월18일이었다는 점이다. 총선이 4월10일임을 생각하면, 지금 정치 지형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가 방영될 예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누군가가 겁을 먹었다는 말이다. 물론 그 ‘누군가’는 돌려 말할 필요도 없이 윤석열 정부와 여당인 국민의힘이다. 그러므로 세월호라는 ‘아이템’에 대한 이런 알레르기 반응은 여당에서 얼마나 세월호를 무겁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태원·세월호 언급이 두려운 이들

실제로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큰 역할을 했다.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2016년 촛불이라는 위대한 정치적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는 7주기였던 2021년 4월에 개봉한 ‘당신의 사월’에서 잘 다루고 있다. 눈앞에서 배가 가라앉고 있는 것이 빤히 보이는데 국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않았다)는 사실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2014년 4월, 그렇게 거리에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등장했고, 유족 및 피해자들과 연대했던 그 마음과 의지가 한국 사회에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건,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당이 세월호를 무시할 수 없는 물리적 힘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태원 참사까지 일어났다. 윤석열 정부에는 무엇보다 두려운 일이었을 터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이태원 참사의 사회적·정치적 의미를 축소하려고 발버둥 치는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과 쌓여가는 권력자들의 오판이 오히려 세월호를 더욱 정치화하는 딜레마가 부상한다.

나는 누구보다 세월호가 현실 정치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한명의 시민이다. 하지만 정치권이 이미 그렇게 해버렸으므로, 이제부터 아주 정치적인 의도로 다큐 한편을 소개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깨닫게 될 것이다. 세월호를 제대로 말한다는 것, 제대로 다룬다는 것은 거대 양당 어느 쪽에도 유리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 과정 속에서 유리해지는 것은 오직 우리, 정치적 역능을 가진 시민들임을.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극장을 찾아온 ‘바람의 세월’은 유족이자 미디어활동가인 문종택 감독이 다큐멘터리스트인 김환태 감독과 공동 연출한 작품이다. 유족이 직접 든 카메라와 유족 옆을 꾸준히 지킨 미디어활동가들의 카메라에 담긴 지난 10년의 기록이 유족 본인의 관점에서 한편의 다큐멘터리로 구성되어 유족 본인의 내레이션을 타고 관객에게 손을 내민다.

우리는 그의 안내를 따라 유족의 시간 3654일에 접속해서 그들이 당했던 것, 그들이 보았던 것, 그들이 느꼈던 것, 그들이 말했던 것, 그들이 버텨냈던 것, 그리고 그들이 기어코 해낸 것과 만난다. 이 작품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공정한 공영방송 케이비에스가 지우고자 했던 바로 그 목소리를 담았다. 그리고 문지성의 아빠 문종택 개인의 기록을 초과하여 박탈당한 자들의 끈질긴 증언으로서 유족 공동체의 공통의 기억과 공통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가야트리 스피박을 경유해서 말하자면 영화는 세월호 사건이나 유족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이후 남겨진 자들을 “위해” 말한다.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을 할 필요도 없다. 그 증언을 발판으로 삼아 그것을 넘어서서 다시 한번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은 유족이라는 테두리 밖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 즉 동료 시민에게 주어진 몫이다. 그리고 변화는 국민의힘이 싫어 민주당을 찍는 방식으론 이루어지지 않는다. 세월호의 진실을 파묻은 건 비단 국민의힘만이 아니고, 반쪽짜리 특별법을 통과시킨 민주당에도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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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달 제공

10주기 그리고 기억식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유족들은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진을 기획했다. 그리고 2월25일에 “아이들이 가고 싶었던 제주에 우리가 간다”는 일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제주에서 출발한 행진은 옛 팽목항인 전남 진도항을 시작으로 세월호가 거치돼 있는 목포를 지나 3월16일까지 전국 주요 도시를 거쳤다. 참사 10주기 당일인 4월16일엔 ‘4·16 기억식’이 진행된다.

유족이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머나먼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건 해결된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바람의 세월’의 호소다. 지난 3년6개월간의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참사 당일의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족들은 제발 이 사실을 기억해달라고 말한다. 세월호는 여러 관점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고 서사화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유족이 한국 사회에 전하고자 하는 이 메시지를 따라 놀랍도록 단정하게 증언을 이어간다. 누군가의 염려대로 음모론자들이 세월호를 이용하고 있다면 그건 국가가 진실을 숨겼기 때문이다. 음모론이 ‘불순한’ 씨앗이라면 그에 물을 준 것은 무책임하거나, 무능하거나, 혹은 심지어 야비하기까지 한 국가와 정당정치라는 시스템, 그리고 그 주요 행위자들이다.

매해 4월이면 세월호 관련 작품들이 찾아온다. 올해는 ‘바람의 세월’과 ‘세월: 라이프 고즈 온’이 극장에서 개봉하고 ‘세가지 안부’가 공동체 상영(일정 인원이 모이면 극장 외부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방식)을 진행한다. 몸과 마음을 움직여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나쁜 나라’(2015), ‘당신의 사월’(2021), ‘장기자랑’(2023) 등 집에서 만나보실 수 있는, 세월호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두텁게 만들어주는 좋은 작품들도 많다. 함께해주시기를.

영화평론가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개봉 영화 비평을 격주로 씁니다. 영화는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다시 시작됩니다. 관객들의 마음에서, 대화에서, 그리고 글을 통해서. 영화담은 그 시간들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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