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뻔한 '눈물의 여왕', 뻔하지 않게 살린 셋

최지윤 기자 2024. 3. 3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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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김지원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tvN 주말극 '눈물의 여왕'은 신데렐라 이야기를 뒤튼 것 외에는 새로운 점이 없다. 재벌가 남성과 평범한 여성의 로맨스에서 성(性) 역할을 바꾸고, 처가살이를 녹여 흥미를 더했다. 하지만 박지은(48) 작가 대표작인 '별에서 온 그대'(2013~2014)의 '도민준'(김수현)이 10년 만에 '백현우'(김수현)로 환생하고, 톱스타 '천송이'(전지현) 대신 퀸즈그룹 재벌3세 '홍해인'(김지원)을 앉혀 놓은 듯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해인은 '상속자들'(2013)의 '유라헬'(김지원) 10년 뒤처럼 보였고, 동창 '윤은성'(박성훈)은 '더 글로리'(2022~2023)의 '전재준'(박성훈)과 겹쳐 매력이 떨어졌다. '도민준과 유라헬, 전재준이 나오는 드라마'라는 우스개 섞인 반응이 나온 까닭이다.

이 장르에 특화된 김은숙(51) 작가의 10년 전 작품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해인의 시한부 판정부터 빌런 은성 등장, 재벌가를 노리는 세력까지 클리셰 범벅이었다. 예상 가능한 전개에 낯간지럽고 오그라드는 대사가 이어지자, '뻔하고 유치하다'는 반응도 쏟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회 5.9%(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 6회 시청률 14%를 넘으며 인기몰이 중이다. 박 작가의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살린 이들 덕분이 아닐까.

◇김수현, 현명한 선택

김수현(36)은 가장 잘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보여줬다. 전작인 쿠팡플레이 '어느 날'(2021)에서 평가가 엇갈린 탓일까. 새로운 시도를 하기 보다, 자신의 매력이 가장 돋보이는 로코물로 돌아왔다. 박 작가와 별그대, '프로듀사'(2015)에 이어 세 번째 호흡을 맞춰 누구보다 서로 장점을 잘 알 터다. 전작들과 비슷한 요소가 꽤 많지만, 데뷔 17년 차 내공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로맨스와 코믹 연기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고, 유치한 대사도 맛깔나게 살렸다. 서울대 법대 출신 퀸즈그룹 법무이사답게 똑똑한 매력을 뽐내다가, 어느새 능청스럽게 주접을 떨었다. 해인과 티격태격 하다가, 금세 애절한 멜로 연기로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동안 김수현은 여주인공이 돋보이는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다. 별그대부터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 눈물의 여왕까지 제목처럼 전지현(42), 서예지(33), 김지원(31)이 더 주목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주인공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시청자 공감을 이끌어냈다. 김수현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뻔한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을까 싶을 정도다. 제작발표회에서 "김수현식으로 처가살이를 표현해보고 싶었다"며 "섬세함, 스마트함, 지질함 등 여러 매력을 재미있게 버무려서 웃기고 울리고 싶다"고 한 데 수긍이 갔다.

김정난(위), 김도현 장윤주


◇몰입도 높이는 연출

섬세하고 아름다운 연출이 몰입도를 높였다. 제작비 약 400억원을 투입한 만큼, 매회 영상미에 감탄하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다. 장영우(44)·김희원 PD는 박 작가와 '사랑의 불시착'(2019~2020)에 이어 의기투합했다. 두 사람은 전작에선 책임 프로듀서(CP)와 연출가로 호흡했다면, 이번엔 공동 연출해 현장에서 함께 머리를 맞댔다. 17년 간 알고 지내 "눈빛만 봐도 안다"고 했는데, 남녀 심리를 녹여 조화롭게 연출한 점이 통했다. 중반부로 갈수록 재벌가가 허술하고 빌런들에게 쉽게 당해 설득력이 떨어졌지만, 현우와 해인의 로맨스 만큼은 영상미 덕분에 더욱 애절하게 보였다.

특히 해인이 뇌종양 증세로 일부 기억을 잃었을 때 장면이 빠르게 전환되며 오버랩되는 신이 인상적이었다. 5회 엔딩에서 현우와 해인이 키스할 때 그림자가 하트 모양처럼 보이게 한 장면, 6회에서 해인이 바다에 빠지면서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고, 7회 방송 초반 해인이 독일에서 기억을 잃어 호텔에서 나왔을 때 바로 길로 넘어가는 신 등 세심한 연출이 돋보였다. 또 매회 마지막에 에필로그를 넣어 시청자들을 울고 웃겼다.

◇탄탄한 조연 보는 재미

용두리 이장 아들인 현우 집안과 재벌 3세인 해인 가족을 비교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나영희(62)는 천송이 엄마에서 해인 엄마로 등장, 별그대가 곳곳에서 겹쳐 보이곤 했다. 해인 고모 '홍범자'(김정난)는 개연성없는 조연 서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어머니 제사에 호피무늬 원피스를 입고 등장하고, 불륜으로 이혼한 전 남편 재혼식을 파투 내 웃음을 줬다. 아버지 '홍만대'(김갑수) 동거녀 '모슬희'(이미숙)를 유일하게 의심하는 인물이다. 퀸즈그룹은 어떻게 재벌이 됐나 의문이 생길 정도로 허술하기 짝이 없는데, '고구마'를 먹은 듯 답답함을 느끼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관심사다.

별그대에 만화방 '홍사장'(홍진경)이 있다면, 눈물의 여왕엔 현우 누나 '백미선'(장윤주)이 있다. 퀸즈헤어살롱을 운영하며 부모님에게 얹혀사는데, '백현태'(김도현)와 티격태격하며 현실 남매 케미스트를 뽐냈다. 장윤주(43)는 모델답게 항상 패셔니스타운 면모를 보였는데, 극중에선 핑크색으로 브릿지 염색하고 등장해 실제 시골 미용사라고 착각할 정도로 싱크로율이 높았다. 자칫 밉상 캐릭터가 될 수 있었지만, 다채로운 표정 연기로 호감을 샀다. 슬희와 은성 모자를 비롯해 '홍수철'(곽동연) 부인 '천다혜'(이주빈), 마담뚜 '그레이스 고'(김주령) 등 빌런이 너무 많아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지만, 해인 비서인 '나비서'(윤보미)부터 미선 미용실 단골 '방실'(이수지)까지 연기 구멍없는 이들의 활약이 완성도를 높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plai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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