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세현의 재난백서] 119 출동 막는 걸림돌 '불법 주차', 어떻게 빼야 할까?

강세현 2024. 3. 3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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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 출동할 때 3.5m 공간 필요
주차 차량 많으면 속도 늦어져
"강제처분 쉽게 할 수 있도록 바꿔야"
2017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주차 한 번 하기 참 힘들다."

서울에서 운전하다 보면 이런 말을 저절로 튀어나옵니다. 우리나라에 등록된 차는 2594만 대, 이 가운데 수많은 차가 수도권과 광역시에 몰려 있죠. 약속 장소 주변에서 주차 자리를 찾는 일은 늘 어려운 숙제고 심지어 내 집 앞에 주차할 곳이 없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주차 공간 부족은 단순한 불편에서 끝나지 않고 안전 문제로 이어집니다. 주차된 차가 소방차의 출동을 막아 화재 진압과 구조를 늦추기 때문입니다. 2017년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에도 건물 주변에 불법 주정차 차량 때문에 진입 늦어져 인명피해가 더 커지기도 했습니다.

도로 폭에 따라 달라진 출동 시간 (국립재난안전연구원)
3.5m의 공간

소방차가 수월하게 출동하려면 공간이 얼마나 필요할까요?

불을 끌 때 큰 역할을 하는 중형 펌프차의 길이는 8m입니다. 너비는 2.5m인데 여기에 사이드미러까지 고려하면 약 3m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립재난안전연구원과 부산소방본부가 이 중형 펌프차를 가지고 실험을 해봤습니다.

골목의 폭을 조금씩 줄이며 40m 도로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비교해 봤습니다. 폭이 4m일 때는 평균 11.7초가 걸렸고, 3.5m에서는 평균 11.4초가 걸려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폭이 3m까지 줄면 14.9초로 확 늘어났습니다. 실험에 참여한 소방대원은 4m와 3.5m는 길이 좁아졌는지 체감이 잘 안 됐지만, 3m는 확실히 좁다고 느껴졌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3.5m의 공간은 확보돼야 소방차가 무리 없이 출동할 수 있는 겁니다.

주차 종류 (국립재난안전연구원)
지그재그보다 일렬로 주차를

주정차 차량이 있을 땐 어땠을까요? 골목길 주차에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한쪽으로 쭉 주차한 일렬 주차가 있고, 양쪽으로 차를 세우는 지그재그 주차가 있죠. 두 가지 상황을 두고 비교해본 결과 한쪽에만 주차한 경우 훨씬 빨리 소방차가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일렬 주차와 지그재그 주차 비교 (국립재난안전연구원)

폭이 5m, 길이 40m 골목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해봤습니다. 자동차를 골목 한쪽에 일렬로 주차했을 경우, 평균 33.4초가 걸렸습니다. 반면 양쪽으로 지그재그로 주차했을 때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소방차가 뱀처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통과해야 하기 때문인데, 주차된 자동차 간의 간격에 따라 통과 시간이 달랐습니다. 차량 간격이 10m일 때는 70초가 걸렸고 8m일 때는 무려 135초가 걸렸습니다. 간격이 6m인 경우엔 아예 통과하지 못 하거나 주차된 차를 파손하고 나서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실험 결과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소방차가 수월하게 통과하려면 3.5m의 공간이 필요하다.
- 골목에 주차한다면 지그재그 주차보다 일렬 주차가 낫다.
- 지그재그 주차할 때는 차량 간격이 최소 10m는 돼야 한다.

강제처분 훈련 장면 (MBN)
망설여지는 강제처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불법 주정차 차량으로 피해가 커지며 소방차가 쉽게 자동차를 강제처분하고 진입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습니다. 법을 위반해 소방차의 통행과 소방활동에 방해가 됐다면 소방차가 출동하는 과정에서 차를 망가트리더라도 보상할 필요가 없게 한 겁니다.

이 법은 2018년 6월에 시행됐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 강제처분이 수월하게 이뤄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지난해까지 강제처분은 고작 4건에 그쳤습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1건도 없었고, 2021년에 1건, 2022년에 1건 그리고 2023년에 2건의 강제처분이 있었습니다.

법이 바뀐 뒤에도 소방대원들이 쉽사리 강제처분을 하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립소방연구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현장 소방공무원 74.5%가 강제처분이 '잘 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강체 처분을 망설이게 하는 주된 이유는 '사후 처리 과정에서 행정적, 절차적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었습니다. 강제처분을 한 뒤에 정당한 절차였음을 증명하는 증거를 준비하는 것도 일이고 혹여나 일이 잘못돼 민원이나 소송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부담이 작용한 겁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강제처분을 하다 소송이 제기됐을 때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현재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다 발생하는 소송을 지원하기 위해 공무원 책임보험과 행정종합배상 공제 등이 운영 중이지만 강제처분으로 인한 소송의 경우 보장 여부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강제처분을 지원 대상에 명확히 넣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 강세현 기자 / accent@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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