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된 현지식 식당…외국인 밀집지역 지탱 [지역을 변화시키는 외국인, 못다한 이야기 完]

이호준 기자 2024. 3. 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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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두천 ‘아프리카 식당’·시흥 ‘중국 식당’ 등...장거리 마다않고 현지식 찾는 손님들 ‘북적’
일상 공유하며 상부상조하는 ‘교류의 장’

못다한 이야기 完 ‘사랑방’ 된 현지식 식당…외국인 밀집지역 지탱 

시흥 정왕동에 위치한 중국 식당에서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풀고 있다. 오종민기자

외국인들이 어느 한 지역에 정착해 모여 살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생기는 공간이 있다. ‘현지식 식당’이 바로 그곳이다. ‘의식주’(義食住)에 대한 충족 역시 외국인들의 삶에서도 예외가 아닌데, ‘현지식 식당’이 그 지역 외국인들의 ‘식’(食)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러한 식당들은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에서 환전소나 여행사 보다 시기적으로 먼저 자리 잡는다. 이 때문에 그 지역 외국인의 삶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 외국인이 식당을 차리기 위해선 D-8(기업투자) 또는 D-9(무역경영) 비자가 있어야 하는데, 비자 발급을 위해선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라 일정 금액 이상을 투자하고 국내에서 회사를 경영함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또 식당의 경우 식품위생관리법에 따라 별도의 영업허가 역시 필요하다.

오경석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은 외국인 밀집 거주 지역의 식당들은 단순히 현지 음식을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 소장은 “외국인들이 사는 곳에서 각 나라 식당들은 그 나라 사람들의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며 “같은 국적 사람들끼리 식당에 모여 정보도 공유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돕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흥 정왕동의 한 중국 식당에서 손님들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종민기자

실제 경기도내 외국인 밀집 거주지역 안에 위치한 현지식 식당에선 그 동네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먹고 이야기하며 회포를 푸는 모습이 자주 목격된다. 현지식 식당이 일종의 ‘사랑방’ 역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동향 사람들과 식당을 찾아 음식을 먹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며, 식당 사장으로부터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나 조언도 듣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원 고등동이나 시흥 정왕동 등 외국인 밀집지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외국인 사장’들은 단골 손님의 비중이 높다고 공통적으로 강조했다.

한국계 중국인이 다수 거주하는 수원 고등동에서 훠궈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 A씨는 “아무래도 평일보다는 주말에 각지에서 모이는 손님들이 많은데, 단골 비중이 50%를 넘길 정도로 많다”고 말했다.

■ “회포 풀고 생활 정보도 얻고”…단골손님 모이는 ‘현지식 식당’

동두천 보산동에 위치한 아프리카 식당에서 주방장이 아프리카 음식을 만들고 있다. 오종민기자

“그 식당에 가면 같은 나라에서 온 다양한 친구들이 모여서 자주 가게 되는 거죠”

파주에 사는 아프리카계 외국인 빈센트씨(35·가명)는 2주에 한 번씩 ‘고향’을 찾는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친구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됐다. 그곳에 가면 따뜻한 ‘스왈로’도 팔고, 동향 사람들도 많다는 친구의 귀띔 때문이었다.

그렇게 빈센트씨가 향한 곳은 바로 동두천 보산동에 있는 ‘시그니처 아프리칸 레스토랑’이다. 식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70% 이상은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이다. 파주부터 동두천까진 1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아프리카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 그에게 이동시간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경기북부지역에는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이 모여 살지만 아프리카 식당이 거의 없어, 이 식당은 경기북부지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외국인들에게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은 옥수수 같이 녹말이 많이 든 채소나 곡물을 반죽처럼 만든 ‘스왈로’가 가장 인기가 좋고, 음식을 포장해가는 손님들도 많다.

또 최근에는 매일 식당에서 밥을 포장해 가는 일곱살 아이 저스티스의 부모님이 잠시 본국으로 돌아가, 혼자 이곳에 오면 직원이 함께 집에 데려다 주는 뜻깊은 선행(?)도 하고 있다.

식당 단골 서니씨는 “음식이 맛있고, 근처에 아프리카 식당이 많이 없어 한국생활 정보도 나누고 동포도 만나기 위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 같은 아프리카계 음식점보다 훨씬 숫자가 많은 한국계 중국인 밀집지역의 중국 식당들은 점심, 저녁 가리지 않고 현지식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시흥 정왕동에 위치한 중국 식당 '골목양피' 앞에 서 있는 사장 천국동씨의 모습. 오종민기자

시흥 정왕동에 위치한 식당 ‘골목양피’는 주변 건설현장에 근무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교류의 장 같은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건설 현장의 외국인 근로자들은 새콤한 맛이 일품인 중국식 비빔국수 ‘량피’(凉皮)를 찾는다. 저녁에는 고된 노동을 마친 근로자들이 중국식 찜닭인 ‘황먼지 정식’을 먹으며 든든하게 배를 채운다.

5년째 이 식당을 운영 중인 사장 천국동씨(45)는 “저희 식당은 70% 이상이 한국계 중국인들 단골”이라며 “단골들이 소개해 새로운 손님을 데려오기도 하는데, 이곳을 찾는 동포들에게 맛있는 음식 제공은 물론이고 하나라도 더 친절하게 알려주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흥 정왕동에 위치한 식당 '골목양피'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오종민기자

사장과 단골 손님들이 ‘상부상조’하며 서로 돕기도 한다. 이번 달 초에는 한국어를 잘 못하는 단골인 남성 하나가 자동차가 고장 났다고 찾아와, 사장 천씨는 그와 자동차 수리점에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수원 고등동의 한 훠궈집 사장 김영호씨(가명·55) 다른 지역에서 식자재 사업을 해보고 싶다는 단골 손님의 말에 거래처 대표를 소개시켜 주기도 했다. 이 식당에선 특히 마라·사골 반반 훠궈가 단골들로부터 인기가 많은데,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이곳을 찾는 한국계 중국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일주일 동안 쌓였던 회포를 푼다.

김씨는 “저희 식당은 수원 고등동에서 중국인들에게는 거점 같은 곳으로 인천이나 시흥, 서울에서 오는 단골 손님들도 있다”며 “이렇게 외국인들이 몰려 사는 지역에선 저희 같은 현지식 식당이 이들의 삶의 한 켠을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K-ECO팀


※ ‘K-ECO팀’은 환경(Environment), 비용(Cost), 조직(Organization)을 짚으며 지역 경제(Economy)를 아우르겠습니다.

이호준 기자 hojun@kyeonggi.com
김정규 기자 kyu5150@kyeonggi.com
이지민 기자 easy@kyeonggi.com
오종민 기자 fivebell@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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