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 양평 숲속의 미술공원 C아트뮤지엄

경기일보 2024. 3. 31. 09: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2m 높이의 면류관을 쓴 예수 얼굴상 <지저스 크라이스트>와 다양한 십자가 등 조각이 전시된 지저스 힐(jesus hill). 윤원규기자

 

때는 바야흐로 ‘호우지시절(好雨知時節)’이다. 세종대왕이 사랑한 당나라 시인 두보의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春夜喜雨’를 읊조리며 미술관에 들어선다. 봄비에 막 움트기 시작한 새싹들의 환희가 가득한 미술관은 조각품과 시비로 어우러진 숲속에 있다.

■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미술관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에 자리 잡은 ‘C아트뮤지엄’(관장 김종애)은 숨겨진 보석 같은 미술관이다. C아트뮤지엄은 지난해 6월 작고한 조각가 정관모 교수가 2006년 설립한 미술관이다. 미술관에는 입체작품 1천300여점, 평면작품 200여점이 전시돼 있다.아시아 최대이자 국내 유일의 기독교 조각미술관 공원으로 숲속 곳곳에 자리 잡은 조각작품과 명시를 감상하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대표 글자인 ‘C’에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

“C는 ‘이 시대’를 뜻하는 Contemporary와 ‘창조적인’이라는 Creativity와 ‘기독교 정신’이라는 Christianity, 그리고 설립자인 정관모 교수의 성씨 Chung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또 다른 이름은 ‘양평 숲속의 미술공원’이다. 정관모기념관은 미술관 설립자인 정관모 작가(1937~2023) 작품 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십자가와 성경 속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징물을 형상화한 조각들을 통해 작가의 영성 깊은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조각공원의 설립자 정관모 교수는 기독교 현대미술 운동에 앞장서 온 최고의 조각가로 평가받는 분입니다.”

학예사로 일하는 김영후 박사의 안내를 받으며 미술관 순례에 나선다. 옷차림이 소박해 얼핏 잡부처럼 보이지만 김 학예사의 내공이 놀랍다. 조각품 소개는 물론 조각과 함께 수십 개의 시비에 적힌 시를 줄줄 외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조경과 전통주에 관한 전문지식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 조각공원은 전기차를 타고 돌아야 할 만큼 규모가 엄청나다. 조각공원으로 난 오솔길은 느긋하게 산책하기에 아주 좋다. 포장된 도로로 휠체어가 다닐 수 있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도 갖추고 있다. 옅은 안개가 깔린 숲속에 조각품과 시비들이 나무처럼 서 있는 풍경이 신비롭다.

선교자들을 위한 기념비 말씀의 숲. 윤원규기자

■ 세 개의 돌기둥을 중심으로 별처럼 펼쳐진 미술관

미술관 마당 한가운데 우람한 세 개의 기둥이 서 있다. ‘심비(心碑)’, ‘마음에 새긴 믿음의 표상’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여러 가지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세 개의 돌기둥은 우뚝하고 든든하다. 보는 방향과 위치에 따라 세 기둥이 주는 느낌은 사뭇 다르다. 기둥에 새겨진 십자가 문양을 자세히 살펴본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

돌기둥에 새겨진 성경 말씀을 소리 내어 다시 읽어본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상징하는 듯 세 개의 기둥은 세 발 솥처럼 관람객의 시선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부지 22만㎡의 조각공원에는 작가 100여명의 작품 500여점이 숲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적 영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현대조각과 미술품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500여점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높이 22m에 달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상이다.

“예수 얼굴상을 조각한 작품으로는 세계에서 제일 큽니다. 특수강판인 코르텐스틸로 제작된 이 작품은 작가가 용접공 5명과 함께 무려 1년에 걸쳐 완성한 것입니다. 코르텐스틸은 한번 녹슨 상태서 시간이 지나면 색상만 좀 어두워질 뿐 녹은 더 이상 슬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얼굴이 평안하다. “성서를 보면 예수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에 ‘다 이뤘다’고 하지요. 그 순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곧 부활절이다. 잠시 가난하고 고통받는 약자들을 괴롭히고 수탈하는 권력자에게 미움을 받아 끝내 죽임을 당한 예수의 거룩한 생애를 묵상한다. 공원 맨 위쪽에 자리 잡은 ‘홀리스톤, 거룩한 돌’이라 명명한 작품도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화강석 11개로 구성돼 있는데 제일 큰 돌기둥은 높이 7.7m에 무게가 24t에 달합니다. 각각의 돌기둥에는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 경배, 찬양, 기뻐하라’는 문구의 초성 글자 네 개씩을 새겼습니다. 작가의 신앙고백을 담은 것이지요.”

내려오는 길에 시비를 살펴본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김소월, 서정주, 윤동주 같은 시인들의 시를 새긴 시문학동산이다. 유명한 영시와 한시를 새긴 시비도 있다. 시비를 지나니 이번엔 풍만하고 건강한 여성의 몸을 조각한 작품들이 나타난다. 생명을 기르는 여성의 몸은 봄날의 숲속만큼이나 신비롭고 아름답다. 사람만이 아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조각도 만날 수 있다. 수목원이나 휴양림처럼 작품을 감상하며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한 것이 돋보인다.

정관모 조각가의 다양한 나무 조각이 전시된 전시장 모습. 윤원규기자

■ 영성이 깃든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1937년 대전에서 태어난 정관모 작가는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해 평생 기독교인으로 살았다. 홍익대 조소과와 미국 크랜브룩 예술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성신여대 교수를 지냈다. 40대에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낼 만큼 조각계는 물론 미술계 전체에서 인정받는 작가였다. 1970∼1980년대 한국 조형이 서구 미학에 매몰될 때 ‘윤목’을 비롯해 토속성과 현대성을 융합한 조각 세계를 펼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개인전 40회를 비롯해 단체전 300여회에 참여할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펼쳐 기독교미술상, 김세중조각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다.

1970년대 중반에 시작한 ‘윤목’ 연작과 ‘코리아 환타지’, ‘표상·의식의 현현’은 한국 전통미를 현대조각으로 재현한 작품으로 주목받았다. 기독교 신앙을 육화한 ‘종말의 지평’과 ‘십자가 형태의 조형적 연구’도 관심을 끈다. 정관모기념관에서 만나는 그의 회화는 또 다른 즐거움과 감동을 선물한다. 화면에서 발견하는 물고기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라는 고백이다.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던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서로를 확인하는 기호로 물고기를 사용했던 사실이 흥미롭다. 성경 구절을 읽고 화면에 그려진 상징을 살펴본다. 기호와 색조가 단순하지만 신비롭다. 그림으로 읽는 성경은 글자보다 더욱 선명하게 가슴에 스며든다.

정관모 작가는 암으로 투병하면서 2021년 ‘너그러운 시각’과 ‘나의 오벨리스크’라는 문집을 발간해 자신의 예술철학을 정리한다. 한국미술청년작가 회장, 한국미술협회 이사장, 국전 심사위원·운영위원장을 역임했다. 놀랍게도 부인 김혜원 작가와 딸 정진아 작가, 사위 박창식 작가 모두가 홍익대 미대 조소과 출신이다. 김혜원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념관도 한 공간에 마련돼 있어 예술가 부부의 작품 세계를 넘나들며 감상할 수 있다.

산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 곳곳에 조각이 전시돼 있다. 윤원규기자

■ 별자리와 반딧불이와 만나는 곳

예수상 밑받침대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지하묘지에 조성한 예배실 ‘카타콤’을 재현해 놓았다. 천천히 예수상을 향해 걸어가면서 예수상의 변화를 살펴보고 어두컴컴한 카타콤에 들어가 내면을 울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이곳은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이 찾아오지요. 홀리스톤, 거룩한 돌이 세워진 곳 옆에는 여름이면 반딧불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미술관은 미술 관람뿐 아니라 명상에 잠길 수 있는 휴식처를 제공합니다. 예술과 영성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공간을 우리 청소년들이 많이 찾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아보고 반딧불이를 만나는 경험은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물 맑은 고장으로 소문난 양평은 C아트뮤지엄을 비롯해 구하우스미술관, 몽양기념관, 세미원연꽃박물관, 양평곤충박물관, 양평군립미술관, 양평아프리카문화예술박물관, 친환경농업박물관, 진아박물관,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이 모여 있는 문화예술의 메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