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휠체어석 예매는 고난의 연속…정보 공유하고 싶었죠"

최주성 2024. 3. 31. 07: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휠체어석 리뷰 계정' 운영자 "말로 전할 수 없는 상황 그림으로 전해요"
휠체어석 운영 주체 달라 예매 어려움…"휠체어석 환경 바꾸는 계기 되길"
장애인 휠체어석 [서울어린이대공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대학로 극장에서 휠체어석을 예매하려면 인터넷이 아닌 전화를 통해야 하는데, 그 순간부터 고난의 연속입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 관객은 대학로 극장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장벽을 넘는다.

극장이 장애인석을 갖추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첫 번째 장벽일 뿐, 공연 제작사에 전화를 걸어 휠체어석 운영 방침을 확인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예매에 성공하더라도 휠체어석에서 관람이 가능한 환경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달 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 '휠체어석 어디까지 가봤니'라는 이름의 계정을 개설한 구모 씨(30)도 극장이라는 장벽에 부딪힌 장애인 관객 중 한 사람이었다.

휠체어석을 예매할 때 좌석 위치나 구조를 안내받지 못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잦았다는 그는 장애인 관객과 직접 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구씨는 지난 2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전화로 설명을 들어도, 인터넷을 검색해도 휠체어석에 대한 정보가 항상 적었다"며 "극장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지, 들어갈 수 있다면 어디까지 접근 가능한지 알고 싶어 할 다른 이동장애인이 봤으면 하는 마음에 계정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엑스 계정에는 대학로 소재 6개 공연장의 휠체어석 정보가 구씨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함께 담겨있다. 구씨는 향후 20개가량 극장이 휠체어석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좌석의 폭이나 시야는 어느 정도인지 상세히 묘사할 예정이다.

그는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상황을 전하고 싶었으나 공연장 내부를 촬영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최대한 정보를 기억해 그림으로 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구씨가 '휠체어석 어디까지 가봤니'에 게시한 그림 ['휠체어석 어디까지 가봤니' 엑스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구씨는 장애인을 위한 좌석을 비치해야 한다는 규정조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현행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공연장은 의무적으로 장애인을 위한 관람석을 마련해야 한다.

통계 역시 구씨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2023 공연예술조사'에 따르면 대학로 극장 127개 중 장애인석을 보유한 극장의 비율은 26.1%(33개)다. 서울 소재 극장 429개 중 절반인 218개 극장이 장애인석을 보유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평균을 밑도는 수치다.

관계자들은 대학로 극장이 반지하나 노후한 건물에 자리를 잡은 경우가 많아 장애인을 위한 관람 환경을 조성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한국소극장협회 관계자는 "협회에서 임대료 감면 사업을 진행할 때 배리어프리(장애물 없는 환경을 만들려는 움직임)를 하는 극장에 가점을 주고 있다"면서도 "지어진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극장에 시설을 새로 설치하기도 어려워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위쪽부터 뮤지컬 '더 라스트맨',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 예매안내 페이지 [인터파크 홈페이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갖춘 극장도 제작사나 극장에 따라 휠체어석을 운영하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라 혼란을 겪기 일쑤다. 휠체어석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창구 역시 일원화되어 있지 않다.

실제로 공연예매사이트에서 공연 정보를 확인해보니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더 라스트맨'은 공연제작사 측에서 휠체어석 예매 문의를 받고 있지만, 지난해 같은 공연장에서 열린 '더 테일 에이프릴 풀스'는 예매처에서 문의를 담당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씨는 매 공연 전화 예매 단계부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예매 문의 전화를 받은 뒤 그제야 극장에 휠체어석 사용이 가능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제작사도 있었다고 돌아봤다.

구씨는 "극장 측에 공간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면 좌석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는 있다"며 "그러나 설명 끝에는 휠체어석 운영은 제작사의 결정이라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꼭 덧붙인다"고 말했다.

구씨의 계정은 300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작은 규모지만 비장애인 관객들로부터 장애인석 운영 실태를 처음 알게 되었다는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반응이 극장과 제작사 차원에서 장애인의 문화생활을 위한 시설 마련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

"제 게시글로 휠체어 관객이 더욱 많아져 극장과 제작사도 장애인 문화생활을 위한 시설 마련이 필수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더불어 휠체어석의 열악한 환경이 알려져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cjs@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