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탈을 쓴 일본어’ 등 방송·법률용어 순화 힘쓴 박갑수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정충신 기자 2024. 3. 3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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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듣기 어려운 경범죄처벌법·민사소송법 표현을 고치는 등 평생 법률·방송용어 순화에 애쓴 남천(南川) 박갑수(朴甲洙) 서울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23일 오전 6시 45분경 서울성모병원에서 만 8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유족의 네이버 블로그 글('소천을 알립니다')에 따르면 "고인은 1년반 전에 낙상한 뒤 거동이 불편하던 차에 2월 22일 갑자기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가 이튿날 이른 아침에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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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세종문화상 수상 당시의 박갑수 서울대 명예교수. 문화체육관관부 제공

경범죄처벌법 제1조 14 ‘음용(飮用)에 공(供)하는 정수(淨水)를 오예(汚濊)하거나 또는 그 사용을 방해하는 자’ → ‘사람이 마시는 물을 더럽히거나 그 사용을 방해한 사람’(1983년 개정)

민사소송법 198조(재판의 탈루) ‘법원이 청구의 일부에 대하여 재판을 유탈(遺脫)한 때에는 소송은 그 청구의 부분이 계속(繼續)하여 그 법원에 계속(係屬)한다.’→212조(재판의 누락) ‘법원이 청구의 일부에 대하여 재판을 누락한 경우에 그 청구 부분에 대하여는 그 법원이 계속하여 재판한다.’(2002년 개정)」

알아듣기 어려운 경범죄처벌법·민사소송법 표현을 고치는 등 평생 법률·방송용어 순화에 애쓴 남천(南川) 박갑수(朴甲洙) 서울대 국어교육과 명예교수가 지난달 23일 오전 6시 45분경 서울성모병원에서 만 8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유족의 네이버 블로그 글(‘소천을 알립니다’)에 따르면 "고인은 1년반 전에 낙상한 뒤 거동이 불편하던 차에 2월 22일 갑자기 응급실을 통해 입원했다가 이튿날 이른 아침에 영면"했다. 고인은 지난해 10월 ‘본인의 소천 사실은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한 달 뒤에 사회에 알리기로 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작성해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유족은 지난 26일에야 블로그에 별세 사실을 공개하고, 지인들이 추모 글을 쓸 수 있는 방명록을 마련했다.

1934년 8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난 고인은 청주고, 서울대 사범대학, 동 대학원(국문학과)을 졸업했다. 1958∼1967년 이화여고와 서울사대부고 교사로 일하다 1968년 청주여대 조교수를 거쳐 1969년부터 서울대 국어교육학과에서 가르쳤다.

1980년 법제처 정책자문위원 제의를 받고 경범죄처벌법 조문을 쉬운 말로 바꾸는 데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법제처가 ‘법률 용어 순화집’ 6권을 펴내는 데 모두 관여했다. 1997년 대법원의 의뢰로 민사소송법 한글화 작업에 착수, 다음해 ‘공무소(公務所)’는 ‘공공기관’, ‘게기(揭記)하다’는 ‘규정하다’, ‘계쟁물(係爭物)’은 ‘다툼의 대상’, ‘해태(懈怠)하다’는 ‘게을리하다’, ‘수계(受繼)하다’는 ‘이어받다’로 각각 바꾸는 내용의 순화안을 제출했고, 이중 일부가 반영됐다.

1972년 MBC에서 ‘이것이 바른말’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1985∼1987년 KBS 2TV ‘바르고 고운 말’에 출연하는 등 라디오와 TV에서 수십년간 우리말을 가르쳤고, 스포츠 중계나 광고의 외래어 남용 문제점을 지적했다. 1985년 KBS 시청자 불만처리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신문·잡지 등에도 ‘바른 말 고운 말’(동아일보), ‘우리말 산책’(중앙일보) 등 연재했다. 동아일보 연재를 보면 1994년 5월 12일자에선 스승의 날 노랫말 중 ‘참되거라 바르거라’는 ‘참되고 바르게 돼라’, ‘고마와라’는 ‘고마워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같은 해 7월7일자에선 방송 사극 ‘한명회’에 나온 ‘민초(民草)’라는 말은 한자의 탈을 쓴 일본말이어서, 조선조 세조 때에는 쓰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같은 해 8월 18일자에선 ‘쓰레기 분리수거해 달라’는 어색한 표현이라며 ‘분리는 시민이, 수거는 당국이’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초 외에 출영(出迎)·하주(荷主)·입장(立場)·명도(明渡) 등이 모두 ‘한자의 탈을 쓴 일본말’이라고 한 것도 고인이었다.

서울대 사대에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지도자과정’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1995∼1996년 한국어국제화추진협의회 공동대표, 1996년 회장을 맡았고, 2001년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로 활동하는 등 한국어 세계화 운동에도 앞장섰다. 중고교 한문·문학 등 교과서 집필에도 다년간 참여했다. 학문적으로는 문체론에 관심을 기울여 ‘문체론의 이론과 실제’(1977), ‘국어문체론’(1994), ‘현대문학의 문체와 표현’(1998) 등을 펴냈다. 1988년 도쿄대 도서관에서 춘향전 필사본을 찾아냈다.

국민훈장 모란장(1999), 세종문화상(2015), 대한민국 세계화 봉사대상(2019)을 받았다.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한 뒤 분당 봉안당 홈에 모셨다.

정충신 선임기자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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