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희·이소미·성유진 ‘젊은 피 수혈’, 한국 여자골프의 반등 원동력 될까

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2024. 3. 3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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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PGA 판 커지자 국내 정상급 선수들 미국 진출 꺼려
LPGA·올림픽 부진과 함께 ‘우물 안 개구리’ 전락

(시사저널=조수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3월25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퍼힐 박세리 챔피언십(총상금 200만 달러)에 유독 한국 골프팬들의 관심이 쏠렸다. 한국 여자골프의 '선구자' 박세리의 이름을 내건 대회로, LPGA투어에서 대회 명칭에 한국 선수 이름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때문에 그 첫 대회에서 이왕이면 한국 선수가 우승하길 바라는 기대감이 그 어느 대회보다 컸다.

하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우승컵은 넬리 코다(미국)에게 돌아갔다. 톱10에 든 12명의 선수 가운데 한국 선수는 신지애(공동 5위)와 제니신(공동 10위) 2명에 그쳤다. 톱20으로 범위를 넓혀도 김효주·이미향(공동 18위) 2명이 추가되는 데 그쳤다. 한때 '한국의 앞마당'으로 여겨졌던 LPGA투어에서 한국 선수들의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올 시즌 6개 대회가 마무리된 현재, 한국 선수의 우승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 무대를 평정하고 올해부터 LPGA투어로 무대를 옮겨 세계 정복에 나선 임진희·이소미·성유진 등 '대어급 루키'들은 아직 적응기가 더 필요한 모습이다.

임진희 ⓒAFP 연합

저물어가는 '태극낭자의 시대'에 위기감

올 시즌 LPGA투어에서는 미국 선수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6개 대회 중 3개 대회 우승을 미국이 가져갔고, 태국·뉴질랜드·호주가 각각 1승씩 챙겼다. 퍼힐 박세리 챔피언십에서도 톱10에 든 12명 중 5명이 미국 선수였다.

한국의 부진은 6개 대회의 톱10 명단에서도 확인된다. 시즌 개막전인 힐튼 그랜드 베케이션스 TOC에서는 톱10에 한국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2월 열린 혼다타일랜드에서는 공동 3위를 차지한 김세영과 최혜진을 비롯해 5명이 톱10에 들었다. 하지만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 2명(이미향·고진영), 블루베이 LPGA는 1명(최혜진)에 그쳤다.

지난 10년간 LPGA투어는 '한국 선수 천하'라고 부를 만했다. 1998년 박세리가 메이저대회 US여자오픈을 제패한 후 박인비·신지애·최나연 등 박세리에게 영감을 받은 '세리키즈'들이 미국 투어를 주름잡았고, 박성현·전인지·고진영 등이 또 그 뒤를 이었다. LPGA 최고 권위 대회인 US여자오픈은 지난 10년간 무려 7번을 한국 선수가 우승컵을 가져가면서 'US 코리아 여자오픈'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2022년 한국 선수들이 합작한 승수는 단 4승으로, 2011년(3승) 이후 가장 적었다. 그 빈자리는 태국과 미국, 유럽 선수들이 채웠다.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 평균타수상, 신인상 등 연말 트로피도 모두 다른 나라 선수들 몫이었다. LPGA투어에서 한국이 개인 타이틀을 단 하나도 못 딴 건 2008년 이후 2022년이 처음이었다.

그나마 지난해는 5승으로 전년에 비해 1승 더 늘었지만, 메이저 대회를 모두 놓치면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한국 선수의 메이저대회 우승은 2022년 6월 전인지의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이 마지막이다. 그나마 양희영이 역대 최고 상금이 걸린 시즌 최종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유해란이 한국 선수로는 4년 만에 신인왕 타이틀을 되찾아오면서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한국 여자골프의 침체 분위기는 올림픽에서도 이어졌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116년 만에 정식 종목으로 부활한 여자골프 금메달의 주인공은 박인비였다. 하지만 그다음 대회인 2021년 도쿄올림픽에서는 미국·일본·뉴질랜드가 금·은·동을 가져갔고, 대회 2연패를 노리던 한국은 노메달의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이소미 ⓒAFP 연합
성유진 ⓒAFP 연합

세대교체 실패가 하향세의 원인

이렇듯 한국 여자골프 하향세의 원인은 세대교체 실패에 있다. 박인비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몇 년 사이 LPGA투어에 (한국의) 젊은 선수 수혈이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은 결과가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이라며 "아무리 롱런을 하고 기량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프로로 10년 이상 활동한 선수들이 계속 우승을 따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동안 여자골프 선수들에게는 한국에서 정상을 찍은 후 LPGA에 도전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유소연, 김세영, 전인지, 박성현, 고진영, 이정은6가 그랬다. 한 선수가 주춤하면 다른 선수가 뛰어들며 '한국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한국에서 골프 붐이 일면서 KLPGA투어가 빠르게 덩치를 키운 것도 원인이었다. 올해 KLPGA투어는 30개 대회에 총상금 320억원이다. 물론 상금 규모로 따지면 LPGA투어가 훨씬 더 크다. LPGA투어는 올 시즌 33개 대회에 총 1억1655만 달러(약 1565억2665만원)의 상금을 내걸었다. 하지만 세계 톱랭커들과 싸워야 하는 만큼 대다수 한국 골퍼 입장에선 상금을 챙기기에는 KLPGA투어가 훨씬 낫다.

가성비도 한국 투어가 압도적이다. 미국에서 한 개 대회에 참가하려면 항공료·숙박비 등으로만 5000달러(약 660만원) 이상의 개인 돈을 써야 한다. 28개 대회에 출전한다고 가정하면 14만 달러(약 1억8500만원)에 이른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것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써야 한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항공료와 평소 머무를 거주비 등은 별도다.

골프계 관계자는 "LPGA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 중 상당수가 지난해 큰돈을 벌지 못했다"고 했다. 지난해 KLPGA투어에서 4승을 거두며 10억원 이상의 상금을 벌어들인 임진희는 "이 자리에 올라서고 보니 많은 선수가 왜 미국 진출을 고민하는지 이해가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우수한 한국 선수들이 미국행을 꺼리면서 한국 여자골프 수준도 우물 안 개구리로 전락하는 듯했다.

그런 면에서 2024 시즌은 한국 여자골프의 반등을 꾀할 수 있는 해로 기대되고 있다. 올해 LPGA투어에 3명의 국내 정상급 선수가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KLPGA투어 다승왕 임진희를 비롯해 통산 5승의 이소미, 3승의 성유진이 그 주인공이다. 세 선수 모두 KLPGA투어의 간판급 '대어'다. 특히 임진희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한 골프단 관계자는 LPGA투어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큰 선수로 임진희를 꼽으며 "여자선수 중 몇 안 되는 '찍어치는 샷'이 되는 힘 좋은 선수"라고 평가했다. LPGA투어 데뷔전이었던 LPGA드라이브온 챔피언십에서 컷 탈락하며 높은 벽을 실감하기도 했지만 두 번째 출전이었던 퍼힐스 박세리 챔피언십을 공동 27위로 마치며 서서히 페이스를 올리고 있음을 알렸다.

이소미는 롱 아이언의 달인이다. 최경주의 고향 완도에서 나고 자란 그는 바람에 특히 강하다. 통산 5승 중 3승을 바람이 강한 제주에서 올렸을 정도다. 올 시즌 LPGA투어 시드를 결정하는 퀄리파잉(Q) 시리즈에 차석으로 합격하며 일찌감치 미국 무대에서도 경쟁력을 확인했다. 성유진 역시 지난해 초청선수로 출전한 롯데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세 선수 모두 한국에서 받지 못한 신인왕을 올 시즌 미국에서 따내겠다는 각오로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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