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불안이 일상이 될 때, ‘공유하는 공간’은 어떤가요 [ESC]

한겨레 2024. 3. 30. 07: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커버스토리 공간 공유하는 사람들
개인·공용 공간 갖춘 공유 주택, 커뮤니티 자동 형성 ‘정서적 안정’
‘젊은 분위기·세련된 인테리어’ 공유 오피스, 활기·영감 주고받아
1인 기업엔 안식처…“사람들과 같이 있는 것만으로 무언의 위로”
김봄 작가가 공유 주택인 ‘에피소드 수유838’ 라운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스튜디오 어댑터 염서정

김봄(31) 작가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다 최근에는 회사를 다니며 두가지 일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커뮤니티 기반의 주거 서비스 ‘에피소드 수유838’에 산다. 이곳은 ‘공유 주택’이다. 큰 건물 안에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이 나뉘어 있다. 개인 공간인 방(6평)에는 주방과 화장실이 같이 있다. 공용 공간은 카페·라운지·트레이닝룸·루프톱·마당·세탁실 등이다.

“어딘가 새롭고 특별한 곳으로 들어오는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건물 전체 디자인뿐 아니라 방 인테리어도 예뻐요.”

‘에피소드’는 서울 강남·신촌·서초·성수에도 있고, 용산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에스케이디앤디(SK D&D)가 운영하는 기업형 주택이다. 지상 23층, 지하 4층 건물에 818가구가 산다.

“여기서 9개월을 살았고, 그 전에는 역삼동에 있는 다른 브랜드 공유 주택에 6개월 살았어요. 저는‘그림 그리고 싶다, 재밌다’는 기분이 들어야 작업이 잘돼요. 저에게는 여기가 그런 곳이에요.”

‘함께’라는 안정감 속에서

김봄 작가와 3층·16층 라운지에서 사진을 찍는 동안 여러 사람을 보았다. 지난 24일 일요일 오후 5시. 책을 읽는 사람, 노트북으로 도표를 띄워놓고 궁리하는 사람,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의견을 교환하는 사람들. 다들 젊다. 보고만 있어도 역동적인 감각이 느껴졌다.

“저는 여기쯤 앉아 태블릿피시(PC)로 그림을 그려요.” 작가에게 이곳은 집이자 작업실이다. “운동하러 오기도 편해요. 엘리베이터만 타면 되니까.”

에피소드는 입주자를 대상으로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서로 만나서 함께 무엇인가 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 하지만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같은 공간에 머물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떤 일이 생기는 법.

“맞아요. 그건 정말 자연스러워요. 역삼동 공유 주택에 살 때 1층 공용 공간에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입주민을 보았어요. 수업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분에게 달려가서 ‘저, 영어 가르쳐주세요!라고 했죠. 그때 인연이 닿아서 지금은 그분의 추천으로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답니다!” 김봄 작가는 ‘에피소드 수유838’에서 그림 그리는 커뮤니티를 열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기업이 운영하는 큰 규모뿐만 아니라 작은 공유 주택도 있다. 서울 성수동 얼리브홈에는 10명 정도가 산다.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건물이다. 지하에는 세탁실이 있고 1층은 현관, 2층은 주방과 거실이다. 3~5층에는 방과 화장실이 있다. 에피소드 수유838과 마찬가지로 개인 공간과 공용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박준식(34)씨의 개인 공간은 5평이다. 5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다. 가장 오래 산 세입자다.

박준식씨가 공유 거실에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우성 제공

“청년들에게 ‘주거’가 크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저의 경우엔 이 공간이 그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었어요. 공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리고 저처럼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안전하게 커뮤니티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정서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안전’과 ‘정서’라는 단어가 특별하게 와닿았다. 이곳은 기업형 공유 주택보다 저렴하다. 당연히 혼자 사는 오피스텔이나 원룸보다도 싸다. “성수동에서 저렴한 가격에 이만한 공간에서 산다는 건 굉장한 이점이죠.” 가격이 주거 형태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공유 주택의 본질은 ‘공유’이다. 그러니‘누구’와 ‘어떻게’가 탐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서로 ‘하우스 메이트’라고 불러요. 주방과 거실을 공유하다 보니 자주 마주치고, 인사도 나누고 같이 저녁 먹고, 서울숲 산책도 하고요. 지난번 아시안컵 축구 경기는 거실에 모니터 가져다 두고 같이 응원하면서 봤어요.” 유쾌한 경험을 떠올리는 그의 표정이 밝았다.

박준식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성수동 얼리브홈의 방. 이우성 제공

“이 집에 사는 10명이 모두 친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두 같이 저녁 식사를 할 필요도 없죠. 어울리는 게 불편한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가끔은 하우스 메이트 단체톡방에 ‘제가 상처가 나서요, 밴드나 연고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누군가 글을 올려요. 그러면 연이어 톡이 올라오죠. ‘저요! 저요!’”

부엌과 거실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라는 안정감 속에서 ‘마음’을 공유한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는 말했다. “조금 있다 사람들이 퇴근하고 돌아오면 같이 저녁 먹으려고요.”

패스트 파이브 신사점에 입주해 있는 패션 브랜드 직원 김두리씨가 공용 라운지에서 일하고 있다. 이우성 제공

따로 또 같이 일한다

사는 공간뿐 아니라 일하는 공간도 공유한다. 이미 알려진 ‘공유 오피스’다. 김두리(31)씨는 뷰티 브랜드에서 일하는데 ‘패스트파이브’라는 공유 오피스를 사용한다. 패스트파이브 신사점 안에 두리씨 회사만 머무는 단독 공간이 조성돼 있다. 라운지를 비롯한 공유 공간은 다른 입주사와 함께 사용한다.

“직원 입장에서 회사가 공유 오피스에 들어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시설 관리가 잘되잖아요. 청소라든지, 냉장고 관리라든지, 하다못해 커피 캡슐도 구매해주니까. 인테리어도 감각적이어서 일하기에 최적의 조건이죠. 그리고 스튜디오가 있어요. 예약하면 간단한 제품 촬영도 할 수 있어요.”

순수하게 ‘직원 입장에서’는 어떤지 물었다.

“좋아요! 입주사 중에 스타트업도 많고 젊은 사람 위주여서 분위기가 활기차요. 저희가 제작하는 제품 주요 타깃이 이삼십대니까 여기서 일하는 분들에게 영감을 많이 얻죠!”

그와 라운지에서 이야기 나누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저녁 7시가 넘었는데 퇴근도 하지 않고. 간혹 늦게까지 일할 때 덜 외로울 것 같았다. 따로 일하지만 같이 일한다는 느낌.

“한번은 다른 층에 입주해 있는 어떤 브랜드에서 저희가 여기 입주해 있는 걸 알고 미팅 요청을 해 왔어요. 두 회사가 이벤트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셨어요. 바로 만나서 협의했어요. 같은 건물에 있으니까요. 시간 걸릴 게 없죠. 그런데….” 그가 말끝을 흐리며 미소를 띠었다. “공유 오피스도 좋지만 언젠간 저희 사옥을 갖게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여기는 저희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공간은 아니잖아요. 저희 브랜드가 지향하는 것들을 공간에 구현하고 싶어요. 크고 으리으리한 사옥이 아니어도, 저희가 직접 꾸민 공간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공유 오피스가 일하기 좋은 환경, 쾌적한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지만 개성이 존중받기를 원하는 세대의 기호를 모두 맞추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이 더 많긴 하지만.” 두리씨는 마지막으로 이 말을 덧붙였다.

미디어 스타트업 ‘더 파크’를 운영하는 정우성(43) 대표는 ‘무신사 스튜디오 한남1호점’에서 일한다.

“저는 외부 취재가 많아서 사무실에 자주 가지는 않아요.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야기해보자면, (공유 오피스는) 사업을 시작하기에 좋은 공간 같아요. 깨끗하고 내부 동선이 효율적입니다. 입지도 좋고요. 혼자 일하다 보면 외로울 때가 있는데 공유 오피스에서 제각각 일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면 그 활기에 덩달아 신이 나곤 해요. 가장 큰 장점이죠.”

지난해 여름 ‘도시요가’ 스튜디오에서 진행한 달리기 모임. 달리기 전에 공유 공간 중정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이우성 제공

현실에서 사람 만나는 공간

‘도시요가’라는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임보미(31) 대표는 ‘로컬스티치 크리에이터 타운 서교’에 입주했다. 로컬스티치는 공유 주택과 공유 오피스 기능을 모두 갖춘 공간이다. ‘도시요가’는 이곳의 독립된 오피스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 요가 스튜디오가 공유 공간 안에 있으면 어떨까?

“같은 공간에서 일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들, 같은 공간에서 살지만 역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건강한 취미로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 건물 안을 좋은 에너지로 채워볼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여기 살지 않고, 일하지 않는 사람들도 요가를 하기 위해 찾아오시는데요, 공유 공간에 관심이 많으셔서 저도 흥미로웠어요. 이 안에서 서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기를 바라고 있어요.”

바로 이 부분! 공유 공간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궁금했던 것은 한가지였다. ‘공유’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성, 효율, 심미적 만족감 같은 것이 온전한 답일까?

“저는 혼자 요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여기, 이 건물 안에 살고 일하는 모르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혼자가 아니다’랄까. 다른 분들도 같은 마음일 것 같아요. 무언의 위로를 주고받고 있을 거예요. 열심히 하고 있고 잘하고 있지만 힘이 안 나고 정체되어 있는 것 같은 감정에 빠진 분들께 공유 공간을 추천하고 싶어요.” 1인 기업이 늘고, 적은 인원이 도전적으로 시작한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공유 공간이 그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변화도 온전한 답변은 아니다.

“현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삶을 지속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어요.” 임보미 대표가 말했다. ‘도시요가’는 사람들을 건강한 취미로 연결하기 위해 달리기 모임도 운영한다. 지난해 가을 이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공유 공간 중정에 모여 준비운동을 하고 마을을 달리고 돌아와, 중정을 내려다보게 설계된 벽돌 계단에 앉아 명상을 했다.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인사를 하며 알아보니 로컬스티치 공유 주택에 사는 사람도 있었고, 근처에 사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끔 그날을 생각하며 웃는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여전히 느껴진다. 외로움과 불안이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점. 그것이 공유를 유행처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이우성 시인·슈퍼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크루 ‘미남컴퍼니’ 대표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