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셰? 그 말 하겠다는 사람이 줄어든다

정시행 기자 2024. 3. 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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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차라리 일본어 배운다
중국어 인기 폭락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2일 충남 당진시장을 찾아 총선 유세를 하며 “(윤석열 정부가)왜 중국을 집적거려요”라고 말한 뒤, 두 손을 맞잡는 동작을 해보이며 “그냥 '셰셰',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되지 뭐 자꾸 여기저기 집적거리나”라고 말하는 모습. 그는 "이번 총선은 신 한일전"이라고도 했다. /TV조선 캡처

초등 방과 후 학교 강사인 정모(36)씨는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지난해까지 서울 시내 4개 학교에서 ‘중국어·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올해 새 학기부턴 중국어를 싹 들어내고 ‘한자’로 강의명을 바꿨다. “자녀에게 중국어 가르치기 싫으니 한자에 집중해달라”는 학부모 요청이 쏟아진 탓이다. 정씨가 별도로 하던 성인 대상 중국어 회화 과외 일감도 뚝 끊겼다.

“코로나 이후 반중(反中) 정서가 심해진 게 피부로 느껴져요. ‘중국어는 원어민이 가장 많은 언어이니 배워두는 게 낫다’고 설득해도 안 통해요. 어쩔 수 없죠.”

중국어가 위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최근 “중국에 집적대지 말고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는 뜻의 중국어)’ 이러면 된다”고 했다. 이 말이 옳으냐 그르냐는 논외다. 그냥 ‘셰셰’ 하는 사람이 줄고 있다. 모든 분야에서 한·중 관계가 경색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중국어의 빈자리는 웬걸, 일본어가 채우고 있다.

반중 정서의 반사이익으로 상대적으로 일본 문화 컨텐츠와 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왼쪽부터 국내에서 많은 팬을 확보한 메이저리그 일본 출신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 일본 애니메이션 '더 퍼스트 슬램 덩크'. 중국 '소변 맥주' 파동으로 국내 수입 맥주 점유율 1위를 탈환한 일본 맥주. /사진=뉴스1·박상훈 기자, 그래픽=송윤혜

◇그냥 ‘셰셰’ 하라고?

서울의 한 고교 1학년 여학생은 중국어를 꽤 하는데도, 정작 제2 외국어는 전혀 모르는 일본어를 선택했다. 어머니 이모씨는 “과거 중국어가 뜬대서 유치원 때부터 9년간 학습지로 조기 교육을 했다”며 “그런데 이젠 중국어 하겠다는 친구들이 너무 적어 내신 따기도 어렵게 됐다. 반면 일본어 선택자는 5배가 넘으니 좀 수월하겠더라”고 말했다.

실제 2024학년도 대입 수능에서 제2 외국어 응시자는 1위인 일본어(29%)에 비해 중국어는 절반 정도(15%)에 그쳤다.

지난해 전국 공립 중등 교원 임용에서도 중국어는 전년도에 이어 2년 연속 ‘0명’을 기록했다. 2018년 82명에서 2020년 43명, 2021년 33명으로 줄더니 채용 절벽이 왔다. 일부 중국어 전공자는 미술 등 예체능 교과를 이수해 과목을 바꾸기도 한다. 반면 일본어 교원 임용 규모는 되레 늘어 연 30명 안팎을 유지 중이다.

일본어의 인기가 중국어 인기를 능가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 /그래픽=송윤혜

외국어 능력 시험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중국어 한어수평고시(HSK) 응시 인원은 코로나 전보다 크게 줄었다. HSK 접수처도 5곳에서 2곳으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일본어 능력시험(JLPT) 응시자는 두 배 이상 늘었다.

중국어는 세계 13억명의 모국어이자 한국 최대 교역국의 언어다. 일본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본토 인구인 1억2000만명 정도다. 일본어가 10배 이상 구사자가 많은 중국어를 밀어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3억의 언어가 어쩌다

전국 대학 중국어학과 입학자는 2018년 4000여 명에서 지난해 2500명 이하로 40% 급감했다. 중어중문학·중국학 전공부터 교양 과목까지 수강생이 반의 반 토막까지 나 줄줄이 폐강 위기다. 한때 ‘중국’만 붙으면 추가 수업을 개설해야 할 정도로 학생이 몰렸던 것과 천지 차이다. 어문 계열이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지만, 중국어의 추락은 유독 심하다.

그 배경엔 누적된 반중 정서가 있다.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이 시작이다. 201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 대표단이 한복을 입고, 김치를 ‘파오차이’라며 한국을 속국 취급하는 역사 동북 공정이 이어졌다. 2020년 우한발 코로나 확산은 결정타였다.

또 홍콩과 신장·위구르 인권 탄압, 탈북자 강제 북송, 시진핑 체제의 전랑 외교(늑대처럼 무력을 과시하는 외교), 중국발 미세 먼지와 중국산 식품 위생 논란까지 겹쳤다.

지난 2022년 중국대사관 인근에서 시민들이 중국의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와 인권문제 해결, 2022 베이징 올림픽 개최 반대를 주장하는 반중 집회를 벌이고 있다. 2017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부터 각종 이슈로 반중 정서가 누적돼왔다. /연합뉴스

한국인이 중국어를 공부해 좋은 일자리를 잡기 어려워진 것도 이유다. 국내 80만명을 넘어선 중국 동포가 중국인 관광객 가이드 같은 단순직은 싹쓸이하고 있다. 반면 중국 내 인건비가 비싸지고 기술력도 발전하면서 한국의 중국 진입 장벽은 크게 높아졌다.

중문과를 졸업하고 본토 유학까지 갔던 황모(31)씨도 2017년 한한령 여파로 중국 취업 길이 막힌 경우. 그는 귀국해서도 전공을 살릴 길이 없자, 폴리텍대 에너지설비과에 다시 들어간 뒤 현재 공공기관 기술직으로 근무 중이다. 외대 통·번역대학원을 나온 고급 중국어 인재들도 대기업 취업문이 좁아져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추고 있다.

중국에 장기 체류하는 기업·공공기관 주재원들도 자녀가 중국어 배우기를 꺼릴 정도다. 한 주재원은 “아이들을 대부분 베이징 영어 유치원이나 국제학교에 보내느라 거금을 쓴다”며 “중국 인맥과 중국어 구사 능력이 미래 가치가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전했다. 아예 가족을 한국에 두고 단신 부임하는 경우도 많다.

올초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한 고객이 ‘소변 맥주’ 논란을 빚은 중국 칭따오 맥주(칭다오 맥주의 국내 제품명) 대신 일본 맥주를 집어 들고 있다. '소변 맥주' 사태로 국내 수입 맥주 점유율에서 일본이 5년만에 1위로 올라섰고, 중국은 3위로 추락했다. /뉴스1

◇‘NO 재팬’은 시들

중국어 기피는 세계적 현상이다.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둔 호주·뉴질랜드도 중국어 전공자가 7~8년 새 반 토막 났다. 인도 정부는 국경 분쟁 여파로 중국어를 권장 외국어에서 빼버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는 “과거 중국의 부상에 미국 오바마 정부가 ‘학생 100만명이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며 “그러나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공산당을 기쁘게 하느라 해외선 인기가 없고, 소프트 파워(soft power)가 약해져 중국어의 매력도 감소했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에선 기록적 엔저(円低)에 따른 일본 여행 증가, 일본 게임·영화의 꾸준한 인기로 일본어 학습자가 늘고 있다. 2023년 국내 포털·소셜미디어 14곳의 정보량 빅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일본어 정보량이 전년보다 10% 증가한 145만여 건으로 압도적 1위였다. 2위 중국어는 82만여 건이었다.

지난해 여름 인천국제공항의 일본행 노선 출국 수속을 밟는 여행객들. 역대급 엔저에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으로 일본 여행객 수가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으며, 일본어 배우기 열풍도 일고 있다. /뉴스1

2019년 대법원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의 수출 통제 조치로 ‘NO 재팬’ 운동이 일었고, 지난해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가 반일(反日) 감정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그러나 반중 정서가 워낙 큰 데다, 한·일 상호 문화적 호감과 안보 연대 필요성이 부각되고 교류가 늘면서 ‘노 재팬’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셰셰하라”는 이재명 대표는 “이번 총선은 (친일 정권을 심판하는)한일전”이라고도 했다. 워워, 외세 끌어들였다간 큰일 난다. 선거는 한국어로 치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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