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다리 떡장수가 이룬 꿈
[‘아무튼, 봄’ 희망 편지] (12·끝)
2024년이 4분의 1을 지나고 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길목인데요. 따뜻한 날 맞이할 준비들 하고 계시는지요. 제가 사는 충남 천안은 날씨가 오락가락하는데, 저에겐 이미 포근한 봄날이 찾아왔습니다. 많은 분이 저를 외다리 떡장수로 기억하실 텐데요. 신상에 변화가 좀 생겼습니다. 꿈에 그리던 과일 장사를 하게 됐거든요. 이제 떡장수가 아닌 과일 장수입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면요. 3월 초 중고 트럭 한 대를 사 아내와 함께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전국 곳곳에서 목발을 짚고 누구보다 빠르게 뛰어다니며 찹쌀떡을 팔았는데요. 코로나 터지고 장사를 못 하게 되면서 ‘내 장사’를 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하루에 알바를 2~3개씩 했어요. 화장품 용기 검사, 치킨 배달, 마트 주차 관리, 대리 운전 등등요. 큰돈은 아니지만 차곡차곡 모아서 드디어 1000만원짜리 중고 트럭을 마련했습니다. 새 차를 사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2013년식 28만㎞를 달린 녀석을 만났습니다. 첫 트럭이니만큼 애지중지 다루고 있고요.
장사는 잘되느냐고요? 첫날은 쉽게 완판했습니다. 개업발이라고 하죠? 장사를 시작한다고 하니 여기저기서 지인들이 와줘 3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습니다. 그날은 혹시 몰라 딸기, 오렌지 등 물량을 적게 준비했거든요. 가장 많이 판 날은 96만원이었습니다. 순수익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지만 그래도 신이 납니다. ‘내 장사’니까요.
매일매일 장사가 잘되는 건 아니에요. 솔직히 어느 날은 알바가 더 낫겠다 싶기도 해요. 하지만 첫술에 배부른 법 없잖아요. 과일 값이 워낙 비싸서, 사는 것도 파는 것도 부담스러운 날이면 뻥튀기, 쌀과자, 전병을 떼다 팔기도 하고요. 그래도 너무 안 된다 싶으면 목놓아 외쳐보기도 합니다. “뻥뻥뻥 뻥튀기 사세요!” “블랙라벨 오렌지, 아이고 맛있어라. 한입만 드셔 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잖아요. 그래서인지 누구는 제가 표정과 몸짓으로 장사한대요.
찹쌀떡 장사를 할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웬만하면 다 팔아야만 퇴근합니다. 오전 7시에 나와 자정까지 장사하는 날도 많아요. 잠깐 자리 비우는 시간도 아까워 도시락을 싸오는데요. 가끔은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우고요. 부지런한 사람이 파는 물건은 뭐 하나라도 더 사주고 싶잖아요. 사람 마음 다 똑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거의 앉질 않고 서서 장사를 해요. 힘들지 않으냐고요? 전혀요. 너무너무 재밌어요.
저는 부모 얼굴도 몰라요. 얹혀산 친척집에서 학대도 당했고요. 열 살 땐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었죠. 절망 속에서 십수 년을 보냈습니다. 동굴 속에서 살았어요. 이렇게 살 바엔 죽자는 생각도 여러 번 했고요. 새해가 밝았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살아 보니 살 만한 세상이더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떡장사 할 때 뛰어다녔던 먹자골목에 트럭을 세워놓고 좌판을 깔면 지금도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찹쌀떡 아저씨 맞죠? 목소리 듣고 열정을 보니 맞네 맞아” “코로나 때 힘들었죠?” “어떻게 지내셨어요?”라고 묻는 분부터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장사하는 걸 보니 아주 고맙다”며 연방 손을 잡는 분까지. 제가 더 감사한데 말이죠. 중요한 건 사는 거예요. 저처럼 한 번 살아내 보세요.
아직 목표한 것을 다 이뤘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곳을 향해 첫발을 내디딘 정도죠. 시작 단계에 불과해요. 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해내는 것 같아요. 인생에 또 다른 밝은 빛이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목표요? 좋은 장사꾼이 되는 거죠. 돈을 많이 벌면 더 좋고요. 그렇게 되려고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뛰어보려고 합니다. 공장에서 알바를 할 때는 온종일 앉아 있다 보니 운동화가 닳을 일이 별로 없었거든요. 이제 닳을 일이 많이 생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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