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틀임하는 섬 길을 걷는다[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용이 꿈틀대는 연화도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경남 통영여객선터미널 앞 서호시장에서 시락국(시래깃국)을 먹는다. 장어 뼈를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시래기를 넣고 끓인 후 제피(초피)가루, 청양고추를 넣어서 먹는 통영 별미다. 시락국으로 아침을 먹고 나니 해장이 되면서 힘이 난다. 오전 6시 반 연화도-욕지도행 배를 타니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른다.
통영에서 남쪽으로 24km 떨어져 있는 연화도에 1시간 만에 도착한다. 먼바다에서 바라보면 연꽃 모양을 닮았다고 하는 연화도는 여름에 섬 전체에 피어나는 수국으로 유명한 섬이다. 연화포구에 내려서 마을을 걷다 보면 전교생이 달랑 2명뿐인 원량초등학교 연화분교를 만난다. 학교 옆에는 연화사가 있고, 더 올라가면 해안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보덕암이 있다.
연화도 트레킹은 최고봉인 연화봉(212m)에서 시작한다. 연화봉에서는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능선을 타고 동쪽에 있는 동두마을로 걸어간다. 연화도 동쪽 기암절벽으로 형성된 해식애(海蝕崖·해안 침식과 풍화 작용으로 생긴 낭떠러지)인 용머리바위 연봉 위를 걷는 길이다. 이 길은 ‘통영 8경’의 하나로 꼽힐 정도로 천하절경이다. 삐죽삐죽 솟은 봉우리들은 용이 대양을 향해 헤엄쳐 나가는 모습처럼 꿈틀댄다. 섬 일주(一周) 관광버스 기사님 해설에 따르면 봉우리들은 용 목 부분 위에 튀어나온 ‘용의 비늘’이며, 용머리는 바닷속에 잠겨 있다고 한다. 용이 바다 위로 머리를 들어 올리는 날, 저 바위들이 솟구치면서 파도를 뚫고 하늘로 날아가리라.
용머리 해안 트레킹 중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서호시장에서 사온 충무김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노지(露地)에서 피어난 야생 갓이 자라고 있었다. 갓잎을 따다가 맛을 보니 알싸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입맛을 돋우는 봄의 맛이다.
용머리 바위 길에서 다시 돌아와 동두마을 해변으로 내려온다. 해변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수요응답형 마을버스’에 전화를 건다. 1000원을 내니 마을버스 운전사가 연화도 항구로 다시 데려다 준다. 이 운전사는 가파른 산길을 능숙한 솜씨로 드라이브하면서 섬 곳곳을 설명해준다. “여름에 수국 꽃이 필 때 섬에 한 번 더 오이소.”
● ‘섬 영화제’ 열리는 추도
통영 앞바다 한려수도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통영항 주변에 숙소를 정해 놓고 매일 아침에 섬 한 곳씩 다녀오는 트레킹 여행객도 있다.
통영항에서 남서쪽으로 14.5km 해상에 있는 추도는 관광객이 북적대는 섬이 아니라 주민들만 살고 있기 때문에 호젓하게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걸어서 2시간 정도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추도에는 미조, 대항 두 항구 마을에 주민 70∼80명이 살고 있다.
미조항 마을에는 통영 명물 ‘추도 후박나무’가 있다. 198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추도 후박나무는 높이 10m, 가슴 높이 줄기 둘레가 3.67m에 이른다. 수령 500년가량의 이 나무는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동서 15m, 남북 14m에 이르며 넓은 그늘을 만들어낸다.
미조항에서 출발해서 섬을 일주하는 길을 걷는다. 도로 주변에 있는 키 큰 소나무에 덩굴이 늘어지며 밀림처럼 우거져 있다. 용두암 근처 바다에서 거북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배를 타고 미역을 따는 어르신 모습이 봄을 느끼게 했다.
샛갯끝 앞에는 ‘개와 늑대의 시간’ ‘라스트 필름’ 등을 찍은 영화감독 전수일(경성대 교수)의 집이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처럼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지어진 펜션에는 ‘추도 컬처클럽 리조트’란 간판이 걸려 있다. 전수일 감독은 “4년쯤 전 추도에 처음 와서 한적함과 조용함에 반해 추도에 눌러살게 됐다”고 말했다. 전 감독은 “다른 섬처럼 관광지로 개발이 되지 않고 조용한 것이 추도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5월 17∼19일 열리는 올해 ‘추도 섬마을 영화제’의 주제는 ‘시(詩)와 섬’. 영화감독 3명이 약 1주일간 추도에 머물면서 시를 모티브로 촬영한 단편영화 3편을 상영할 예정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섬이라 그런지 항구 방파제 곳곳에는 영화 필름 모양으로 새겨진 ‘추도’ 간판과 나무조각 장식이 붙어 있다.
전 감독은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배우와 감독, 게스트와 문학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시 낭송과 콘서트를 즐기는 섬 영화제는 평생 꿈꿔 오던 축제”라고 말했다.
글·사진 통영=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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