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설치 유튜버 "개표조작 막기 위한 것"… 정치불신 극단으로

지홍구 기자(gigu@mk.co.kr) 2024. 3. 29.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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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투표소 37곳 불법카메라
서울·부산·인천·양산서 발각
경찰, 40대 긴급체포 후 조사
여야 불문 '부정선거 음모론'
대법원 판결 나도 꼬리 물어
전문가 "제도 불신 더 커져
장기간 걸쳐 신뢰 쌓아가야"
29일 대구 달서구 유천동 행정복지센터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구청 직원이 불법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4·10 총선을 앞두고 사전투표소에 침입해 불법카메라를 설치한 40대 유튜버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 유튜버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사전투표율 조작을 막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주요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제기되는 '부정선거 음모론'이 탁상공론에 그치지 않고 불법행위로 진화했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예상된다.

행정안전부와 선관위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소속 시설에 설치된 사전투표소 등을 일제히 점검한 결과 29일 오후 7시 기준으로 모두 37곳에서 불법 카메라로 의심되는 장치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인천 논현경찰서는 지난 28일 밤 9시 10분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40대 남성 유튜버 A씨를 건조물 침입,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A씨는 인천시 남동구 장수서창동, 서창2동, 계양구 계산1·2·4동 등 사전투표소 5곳에 몰래 들어가 불법카메라를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카메라는 정수기 주변을 비롯해 투표소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위치에 설치됐다.

경찰은 A씨 자택 등에서 불법카메라 설치 관련 증거물을 압수했다. A씨는 조사에서 "사전투표율을 선관위에서 조작하는 걸 감시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경찰은 추가 수사를 벌여 A씨가 인천뿐 아니라 경남 양산 사전투표소에도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 결과 인천 9곳과 양산에서 발견된 6곳에 설치된 불법 카메라는 A씨가 설치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A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경남선관위와 양산시에 따르면 지난 18일 경남 양산시 한 행정복지센터 2층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카메라가 발견된 후 이날까지 행정복지센터 총 6곳에서 불법카메라 6대를 찾아냈다. 사전투표소인 울산시 북구 농소3동 행정복지센터, 부산시 북구 구포2동 행정복지센터에서도 불법카메라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인천과 양산 외 다른 지역 사전투표소에도 카메라를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어 수사하고 있다"면서 "공범 유무, 카메라 구입 자금 출처, 구체적인 범행 동기 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도 특정 사전투표소 내부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정황이 확인됐다. 당시 A씨는 카메라 영상 속 투표 인원과 선관위 집계 인원이 다르다며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은 유튜브 등에서 하나의 '장르'가 된 지 오래다. 좌파 성향 방송인 김어준 씨가 2017년 개봉한 영화 '더 플랜'을 통해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꺾은 2012년 대선과 관련해 개표 부정 의혹을 제기한 것이 본격적인 시발점이다. 김씨는 전국 개표소에서 투표지 분류기가 인식하지 못한 미분류표 가운데 박 후보 표가 문 후보 표보다 1.5배(K값) 많은 양상이 전국 선거구에서 나타났다며 누군가 개표 분류기를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꺾은 2017년 19대 대선 미분류표를 보면 홍 후보 표가 문 후보 표보다 1.6배 많아 잘못된 주장으로 드러났다.

보수 진영이라고 다르지 않다. 2020년 4·15 총선에서 인천 연수을에 출마했던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밀려 낙선한 뒤 그해 5월 선거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당일 투표에서는 민주당 후보에게 7% 이상인 3358표를 앞섰지만 사전투표에서는 관내 10%, 관외 14% 차로 뒤져 최종 2893표 차이로 졌다"면서 "사전투표와 당일 투표에서 선거인 수와 투표 수가 일치하지 않고, 사전득표 비율이 63대36으로 일관되며, 집계가 실종된 선거구 등이 있어 조작하지 않고선 통계적으로 불가능한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2022년 7월 대법원은 민 전 의원이 제기한 총선 무효 소송에 대해 "이 사건 선거에 공직선거법 규정에 위반된 위법이 있다거나 그에 관한 증명이 이뤄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원고(민 전 의원)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부정선거 의혹을 일축했다.

대법원은 "수많은 사람의 감시하에 원고의 주장과 같은 부정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산기술과 해킹 능력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조직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원고는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누구인지조차 증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법부 판단도 음모론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 전 미래통합당 대표는 2022년 3월 치러진 20대 대선에 이어 지난해 출마했던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도 "조작이 의심된다"면서 음모론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극화가 심화한 상태에서 제도 불신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면서 "이 문제는 사회적 자본에 관한 것으로 순식간에 개선할 수 없고 장기간에 걸쳐 신뢰를 착착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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