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사건 피고인은 수억원대 전관쓰고…일반인 대다수는 “비용 부담에 나홀로 소송”

홍인석 기자 2024. 3. 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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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 ‘타임차지’ 책정…수임료 수억 훌쩍
중소형 로펌도 민사사건 300만원부터
성범죄 등 구속 가능성 큰 사건 1000만원 넘기도
높은 수임료, ‘나홀로 소송’ 원인으로 지목
일러스트=정다운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1번 후보인 박은정(사법연수원 28기) 전 광주지검 부장검사의 남편 이종근(연수원 29기) 변호사가 다단계 사건을 대리하고 받은 수임료가 22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관(前官) 변호사 중에서도 유례 없이 높은 수준이라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부르는 게 값’인 전관들이 전반적인 변호사 수임료 수준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사기 사건 피고인이 억대 수임료를 내고 전관 변호사를 선임해 승소 확률을 높이는 반면, 민사 소송을 제기하는 일반인 대다수는 높은 법률비용에 나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29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 본안 1심 사건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은 ‘나 홀로 소송’ 비율은 ▲2017년 75.7% ▲2018년 72.9% ▲2019년 71.4% ▲2020년 71.2% ▲2021년 68.7% ▲2022년 66.5%다. 형사사건 1심도 같은 기간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진행한 경우가 40% 안팎을 기록했다. 나홀로 소송 비율이 이처럼 높게 유지되는 것은 인터넷에서 누구나 법률 지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고 전자소송도 가능해진 점이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대다수는 변호사 수임료가 부담 돼 홀로 법정공방을 하는 길을 택한다.

전문가 비용으로 여겨지는 변호사 수임료는 로펌 규모와 형태, 사건 유형 등에 따라 달라진다. 착수금과 성공보수로 구분되는 변호사 수임료를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로펌 규모다. 대형 로펌은 대개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타임차지’(Time charge) 방식으로 비용을 책정한다. 수천만원의 착수금으로 시작해 사건 쟁점이 많거나 하급심에 패소할 경우, 형량이 무거운 사건일수록 가격에 값비싼 ‘타임차지’를 적용한다. 한 사건에서 조세·형사 등 여러 쟁점이 얽혀 한 로펌 내 복수의 팀이 투입되면 수임료는 올라간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민·형사를 구분하지 않고 ‘타임차지’로 수임료를 받으면 수십억원에서 백억원이 청구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변호사 10명 이상 투입되는 사건은 각 변호사 또는 팀별로 1시간에 얼마를 받기로 한다는 계약을 맺고 일을 진행한다”며 “일정 금액 이상으로는 수임료가 올라가지 못하도록 상한을 설정한다”고 덧붙였다.

판·검사를 지낸 ‘전관 출신 변호사’에게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건을 맡기는 경우가 높고, 그만큼 수임료도 높게 책정된다. 가상자산·전세사기 등 비교적 신종 범죄나 유명인이 연루된 피의자들이 수사 단계에서 검찰 출신을, 재판 단계에서는 판사 출신을 찾는 분위기다. 또 다른 대형 로펌 변호사는 “전관이라고 처음부터 수임료가 비싼 게 아니라 의뢰인이 전관을 찾으면서 규모가 크고 쟁점이 많은 사건을 들고 오는 경우가 많아 수임료가 올라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개인·중소형 로펌은 대형 로펌보다 수임료가 낮지만 평범한 시민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민사는 300만~500만원부터 착수금이 시작된다. 손해배상이나 임대차 보증금 반환 등 민사소송을 제기해 승소할 경우 수백만원의 착수금에 10~20%의 성공보수를 줘야 한다. 만약 1억5000만원 규모의 임대차 보증금 반환 소송에 승소했다면 착수금 최소 300만원, 성공보수 1500만원 등 1800만원이 수임료가 된다.

형사사건은 더 비싸다. 벌금형이더라도 ‘전과자 낙인’이 찍힐 수 있어 수임료도 센 편이다. 서초동에서 형사사건 최소 착수금은 500만원. 마약 사건이나 성범죄 등 구속 위험성이 있는 사건은 1000만원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무효로 선언했지만 로펌들은 ‘잔금’ 등 명목으로 추가 비용을 받는다. 구속, 기소, 소송에서의 유·무죄 등 각 절차에 따라 중도금이나 잔금 등을 달리 책정한다. 만약 개인이 성범죄로 경찰 수사를 받는다면 수천만원을 수임료로 준비해야 한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어떤 사건인지, 변호사 승소율이 높은지 등 능력에 따라 형사사건 수임료가 매겨진다”고 운을 뗐다. 그는 “단순 사기, 폭행보다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나 마약, 성범죄가 소위 ‘단가’가 더 높다”며 “다단계·가상자산으로 돈을 벌고 문제가 생기면, 전관에게 맡기고 거금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 수가 늘면서 3만5000명에 육박하지만 ‘억’ 소리 나는 수임료 탓에 전문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직접 소송을 진행하려는 욕구도 있지만 여전히 법률시장 문턱이 높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재판부에 자신의 주장을 충실히 전달하거나 신속한 재판을 위해 소송 과정에서 변호사가 필요하다”며 “변호사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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