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너를 흉내내지 마라, 즐기는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이주현 기자 2024. 3. 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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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언니의 마음책방]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달리기와 존재하기
게티이미지뱅크
삐삐언니의 마음책방은?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새로 알게 된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지식 총량이 늘어나는 건 잘 모르겠지만 이해력이 좋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나를 위로하고 타인을 격려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요. 좀더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은 삐삐언니가 책을 통해 마음 근육을 키우는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새롭고 낯선 일을 시도할 때 그 이유를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들의 경우엔 ‘그냥’ 이라는 식의 무심한 답변이 무척 멋지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가령 “왜 에베레스트에 가냐”는 질문을 숱하게 받았던 영국의 뛰어난 산악인, 조지 맬러리가 한 말 “산이 거기 있으니까”는 두고두고 세기의 명언으로 회자됩니다.

위대한 등반가 맬러리에 비하면 너무나 미천한 수준이지만, 나 역시 왜 달리냐, 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뭐 그냥… 네,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머릿속 생각은 글로 씌어질 때 비로소 구체적 형태를 갖게 됩니다. 올해 첫 트레일러닝 대회가 열흘도 남지 않은 오늘, 내가 사랑하는 달리기 책 두 권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왜 달리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달리기 입문은 2005년이었습니다. 당시 회사엔 ‘한건달’이라는 모임이 있었어요. 한겨레건강달리기의 줄임말. 건강과 건달, 두 단어 의미의 낙차가 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건달 회원이 되자마자 마라톤 입문서를 읽어봤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성 달리기에 관한 챕터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대목이 ‘안전’이었거든요. 야외에서 달리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 어둡고 외진 길을 피해야 한다, 만약 해 떠 있을 때 달리기 어렵다면 밤보다는 새벽을 택해라, 치한들은 새벽보다는 밤을 선호한다 등등.

‘그녀가 달리는 완벽한 방법’(카트리나 멘지스 파이크 지음·정미화 옮김, 북라이프)은 20대에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방황하던 여성 페미니스트가 달리기의 즐거움을 깨닫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카트리나는 달리는 여성들에 대한 뿌리깊은 역사적 반감과 사회적 통념을 들춥니다. 그리스 신화 속 달리는 여성들은 대체로 ‘치한 제우스’ 따위에게서 도망치는 다급한 모습으로 묘사되곤 해요. 여성들은 달리기 자체의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20세기 대부분 기간 동안 지금 우리가 장거리라고 생각하는 거리 정도를 달리는 여성들은 마치 품행이 단정치 못한 것인양 비난을 받았다. 고상한 여성들은 노골적으로 가슴이 움직이게 되는 일을 찬성하지 않았다. 땀을 흘리는 일은 괴이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며 매력이 없다고 봤다. 달리고 싶어 마음을 바꾼 여성들은 육체적으로 처참한 결과가 있을 거라는 경고를 받았다.”

196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저지당하는 캐서리 스위처. CNN 캡처 연합뉴스

장거리 달리기가 여성들의 건강(즉, 임신과 출산)에 해롭다는 이유로 1960년대까지도 미국에선 2.4km 이상 여성들이 달리는 것이 금지됐고, 1964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캐서린 스위처라는 여성은 ‘여자가 끼어드는 대회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남성 감독관에게 거칠게 저지당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1970년대까지 여성용 러닝화가 출시되지 않아 여성 러너들은 납작한 간호사 신발, 모카신 같은 걸 신고 뛰었다고 해요. 여성들의 마라톤 기록이 획기적으로 좋아진 건 1960년대 여성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일상의 반란’이 시작되면서였습니다.

나 역시 2000년대 말까지만 해도 늦은밤 한강변을 달릴 때는 언제라도 긴급신고가 가능하도록 핸드폰을 꼭 쥐고 달렸고 누군가 따라오는 낌새를 눈치채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이어폰을 빼고 달렸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며 밤늦게 달리는 여성들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저 역시 야간 달리기를 예전보다 덜 두려워하게 됐고요.

흔히들, 마라톤은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 ‘자기와의 싸움’을 싫어해요. 남들과 싸우는 것도 지치는데 굳이 자기와도 싸워야 하나 그런 심정입니다. 그래서 42.195km를 한번 달리곤 다시는 풀코스는 뛰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승전보를 빨리 알리려고 마라톤평원을 달렸던 아테네 병사 페이디피데스가 완주하고 죽은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시간의 방’에 갇혀 하염없이 달리는 마라톤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다시 달리기의 즐거움을 알게 된 건 트레일러닝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트레일러닝 대회는 통상적인 마라톤 대회 코스(10km·하프·풀)보다 거리가 훨씬 길어요. 컷오프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르막은 걷고, 완만한 내리막을 달리는 식으로 자유롭게 완급조절이 가능합니다. 숲을 달리며 풍경을 즐기는 기쁨도 대단합니다. 마라톤 대회에선 너무 뒤처질까 조급해했는데 트레일러닝 대회에선 완주의 기쁨이 워낙 크다보니 꼴찌를 해도 상관 없었습니다(실제로, 지난해 영남알프스 대회에서 뒤에서 두번째로 골인했어요).

하지만 평상시 트레일러닝 훈련을 하려니 장소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혼자 산에 가는 게 무서웠거든요. 폭력의 위험도 있지만 길을 잃는 게 두려웠어요. 함께 달릴 파트너를 구해야 했습니다. 달리기가 취미인 여자 친구가 주변에 없어서 남자 지인들에게 부탁하곤 했어요.

그러다 2년여 전 이사온 동네에서 연습에 맞춤한 장소를 발견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옛길이었다는데, 평탄하면서도 약간의 경사가 있고,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초여름, 처음으로 숲속 오솔길을 달리는데 심장의 고동에 온전한 기쁨이 차올랐습니다. 살랑이는 바람에 숲이 가볍게 출렁였습니다. 문득 바라본 파란 하늘, 그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던 초록색 나뭇잎들은 꿈에서 다시 보고 싶은 이미지로 가슴에 콱 박혔습니다. 내리막길에서 양팔을 벌려 펄쩍 뛰어올랐습니다. 산길을 나 혼자 달릴 수 있구나!

그동안 나는 단지 산길에서만 남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애정보다는 의존에 가까웠던 시간들, (나도 물론 상처를 줬겠지만) 아직도 아물지 않은 옛 상채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왠지 숲을 달리다보니 좀 달라질 것 같았습니다. 카트리나의 말처럼 “운동화를 신고 전 남자친구들로부터 달아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이야기 속으로 달려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렴풋한 희망. 그것은 자유였습니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시련은 상관없다는 태도로, 그저 뛰어노는 그 순간을 즐기던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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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의 현인’이라고 불리는 조지 쉬언의 ‘달리기와 존재하기’(김연수 옮김·한문화)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장거리 러너는 새로운 자신의 놀이를 발견한 사람이다. 그 놀이를 통해 장거리 러너는 자신의 몸을 정화시킨다. (…) 나는 새로운 종교를 만들 작정인데 이 종교의 첫번째 교리는 규칙적으로 뛰어놀아라, 이다. 오직 놀 때만 세상과 평화를 함께 얻을 수 있다. 놀 때,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한 동시에 대단히 하찮다는 것을 깨닫는다.”

2022년 제주도 트레일러닝대회 모습. 푸르나 작가 제공

사실,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4월초 열리는 트레일러닝 대회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하지만 조지 쉬언은 걱정하는 나를 위로합니다.

“무작정 달리기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는 달리기가 중요하다. 놀면서 하는 연습으로는 건강과 장수를 얻는다. 러너를 흉내내는 사람이 제일 위험하다. 더 빨리 병에 걸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걸 성취하려고 들며 다른 사람들과 언제나 경쟁하고 이기려고만 드는 사람들 말이다. ”

어쩌면 이번엔 중도 포기할 수도 있다, 고 각오하고 있습니다. 의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훈련 부족으로 근육이 제발 멈추라고 비명을 질러댈 수도 있어요.

혹시 도중 탈락하더라도 괜찮습니다. 나에겐 조지 쉬언의 문장이 있으니까요.

삶을 즐기는 사람을 이기는 방법은 없다.

반드시, ‘정신승리’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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