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그룹 모자(母子)의 난…이들은 왜 서로 등 돌렸나

김명지 기자 2024. 3. 2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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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명확한 후계 구도, 수천억 상속세가 뇌관
기술반환으로 회사 위기인데, 창업주 별세
제약산업, 가족 경영 문제 반복
“오너 중심 경영 안정화가 급선무될 것”
28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치러진 이사진 선임 표 대결에서 창업주의 장남과 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승리했다. 이에 따라 한미그룹이 지난 1월부터 추진하던 OCI그룹과의 통합은 무산됐다. 왼쪽부터 OCI그룹의 이우현 회장, 한미약품그룹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의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과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 임종훈 전 한미약품 사장/조선DB

한미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벌어진 신규 이사진 선임 표 대결에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승리하면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추진한 한미그룹과 OCI그룹과의 통합이 무산됐다. 한미그룹 창업주 가족은 OCI그룹과의 통합을 두고 모녀와 장·차남이 반대하며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모녀와 형제 간 갈등은 한미와 OCI그룹 통합 발표 훨씬 이전부터 감지됐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설명이다.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의 표면적인 시작은 창업주인 고(故) 임성기 회장이 별세한 지난 2020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임 회장은 한국 제약산업에서 입지전적 인물이다.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임 회장은 서울 종로의 ‘임성기 약국’으로 시작해 한미약품을 세웠다. 1989년 국내 제약사 최초로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제조 기술을 수출했고, 2009년 고혈압 치료제 두 가지를 합쳐서 만든 개량신약인 ‘아모잘탄’으로 중국 미국 유럽 세계 시장을 뚫었다.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이 한미약품공업 설립 직전인 1972년, 장녀인 임주현 부회장은 1974년, 차남인 임종훈 전 한미약품 사장은 1977년 태어났다. 임 회장은 세 자녀 모두 후계자로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 한미사이언스의 미국 파트너사인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 윌리엄 라이스 회장은 “창업주인 임 회장은 1980년대 세 자녀를 미국 보스턴으로 모두 유학을 보낸 것에 주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임종윤 전 사장은 보스턴칼리지, 임주현 부회장은 스미스칼리지, 임종훈 전 사장은 벤틀리대를 졸업했다. 전공은 다르지만, 셋 모두 미국 제약 산업의 심장인 보스턴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뜻이다. 장남인 임종윤 전 사장은 가장 먼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2000년부터 한미약품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임성기 선대 회장은 2004년 장남을 중국 법인인 북경한미로 보냈고, 매달 북경한미를 찾아 경영수업을 했다고 한다.

임종윤 전 사장이 중국에 있는 동안 장녀인 임주현 사장은 2007년 한미약품에 합류해 아버지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그래도 그 때까지는 장남 승계 구도는 뚜렷했다. 임종윤 전 사장은 북경한미 대표를 거쳐 2009년 한미약품 사장, 2012년 한미사이언스 공동대표 사장에 올랐다. 한미약품은 2015년 베링거인겔하임, 일라이릴리, 사노피, 얀센 등에 6건의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며 전성기를 누렸다. 기술수출 규모는 8조원에 달했다.

임성기 회장은 2016년 1월 개인 주식 90만 주(지분율 4.3%)를 직원들에게 무상 증여하며 화제가 됐다. 한미약품은 ‘직장인이 취업하고 싶은 회사’에 올랐다. 한미약품 주가는 2014년 6만원 선에서 2016년 70만원까지 치솟았다. 이 시기 임성기 회장이 공동대표에서 물러나면서 임종윤 전 사장은 단독 대표이사에 올랐고, 그해 6월 제이브이엠을 합병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그해 9월 베링거인겔하임이 기술 수출 계약을 해지하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기술수출한 후보물질이 줄줄이 반환됐고, 기술 반환은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한미약품 2016년 매출은 직전해와 비교해 30%가 줄었고, 순이익은 96%가 증발했다. 그러자 단독대표인 임종윤 전 사장에 화살이 돌아왔다.

지난 1월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한미 오픈 이노베이션 포럼’에서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한미약품의 차별화 전략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임종윤 전 사장은 소비재로 눈을 돌렸다. 자신이 설립한 코리그룹을 바탕으로 2017년 중국 현지에서 영유아 건강 식품사업을 추진했다. 하지만 사정은 여의치 않았다. 이듬해인 2017년 3월 동생인 임종훈 전 사장이 한미약품 이사회에 합류하면서 후계 경쟁이 시작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는 사이 임주현 부회장은 세를 불렸다.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주가 별세하자 혼란이 찾아왔다. 임 회장은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과 자녀 3명들에게 주식 1763만주를 상속했다. 임 전 회장이 작고한 2020년 8월 기준 상속한 주식의 가치는 7600억원 인데, 상속세로 약 3800억원을 내야 한다. 송 회장이 1500억원, 이상 세 자녀가 각각 800억원 이상을 부담하는 구조다.

배당을 늘리거나 주식 담보 대출 자산 매각으로 상속세를 마련해야 하는데, 임성기 회장은 토지 건물과 같은 재산은 남기지 않았다. 송 회장은 2021년 3월 임종윤 전 사장과 함께 한미사이언스 공동대표에 올랐고, 은행·증권사로부터 70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 대출을 받았다. 세 자녀도 주식을 담보로 1000억원 가량을 대출받았다.

코로나19 유탄을 맞으면서 한미사이언스 주가는 하락했고, 엔데믹 이후 고금리 기조로 변하면서 이자 부담은 커졌다. 주식 담보 대출 이자 납입 시기는 계속 다가오는데, 임종윤 전 사장은 디엑스앤브이엑스(DXVX)를 설립해 디지털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시기 임종윤 전 사장은 임주현 부회장에게 무담보로 266억 원 가량을 빌려 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결국 스스로 상속세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들은 지난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라데팡스파트너스에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이후 새마을은행 뱅크런 사태로 매각이 불발되자 라데팡스가 OCI그룹을 모녀에게 소개하면서 한미사이언스와 OCI 간 통합이 추진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배제된 형제가 반발하면서 한미그룹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모자의 난’은 형제의 승리로 끝났지만, 주총 이후에도 한미그룹은 한동안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가족 기업의 경영 방식은 크게 ‘지분을 소유한 가족(오너)이 직접 경영하는 체제’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체제’로 나눌 수 있다. 이번 모자의 난은 국내 제약산업에서 만연한 가족 경영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대표적 사례다.

가족 경영 체제에서는 승계와 상속 과정에서 지분을 둘러싼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거나, 경영 수업을 충분히 받지 못한 가족 후손이 경영권을 물려받으면 문제가 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한미그룹 경영권 다툼은 창업자가 작고한 이후 상속세 해법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서 벌어진 사태”라며 “형제가 경영권을 가져온다고 해도, 이 문제를 풀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경영권을 확보한 임종윤·종훈 형제가 어떤 사업영역과 계열사를 맡아 한미그룹을 안정화할 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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