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생닭’과 윤석열의 ‘대파’

정남구 기자 2024. 3. 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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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설 명절을 나흘 앞둔 2월5일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청과물시장·경동시장을 방문해 구매한 생닭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남구│논설위원

‘생닭’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값싼 고기’다. 지난 24일 농산물유통정보(KAMIS) 사이트에서 보면, 육계 1㎏ 전국 평균 가격은 5860원이다. 돼지고기 삼겹살은 4배 가까운 2만1950원, 한우 안심(1+ 등급)은 20배가 넘는 12만4900원이다. 닭고기가 싼 것은 생산비가 낮기 때문이다. 고기 1㎏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사료의 양(배수)을 사료요구율이라 하는데, 비육우가 10, 양돈이 2.7∼3.0인 데 견줘, 육계는 1.55∼1.65밖에 하지 않는다. 큰 부담 없이 집에서 조리해 먹는 닭백숙이 예부터 서민의 보양식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생닭’을 여당 대표인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월5일 전통시장에서 샀다. 지난해 12월26일 취임한 한 위원장은 설 연휴를 나흘 앞두고 그날 서울 청량리청과물시장과 경동시장을 방문했다. 후드티에 청바지 차림의 그는 온누리상품권과 현금을 내밀며 번데기와 어묵을 사 먹고, 삶은 옥수수와 밤도 사고, 황태포도 샀다. 이날 행보의 절정은 ‘생닭’이었다. “뭐 하나 받을까, 닭 하나 주실래요?”라는 한 위원장의 말에, 검은 비닐봉지에서 맨살을 반쯤 드러낸 생닭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다. 한 위원장은 그것을 마치 우승컵 들어 올리듯 오른손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떠나려고 차에 타서는 비닐봉지에서 거의 꺼내 보이며 사진 촬영에 응했다.

한 위원장은 시장 방문을 마친 뒤 커피 전문점에서 기자들에게 말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있는데 경기가 굉장히 안 좋다. 우리가 더 노력하겠다는 마음,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왔다.”

그러나 그가 취임한 뒤 지금까지 보인 행보를 보면, ‘민생 현실’에 대한 진지한 염려와 여당 대표로서의 책임감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한 위원장은 경동시장을 방문하기 전, 경기 구리시(2월2일)·김포시(2월3일)의 전통시장을 방문했다. ‘서울 편입’ 바람을 불어넣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 앞서 1월23일 큰불이 난 충남 서천특화시장을 방문했는데, ‘김건희 명품 백 수수’ 건 처리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던 윤석열 대통령에게 직각으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장면을 연출했을 뿐이다.

그가 전국 각지의 총선 유세에서 경제, 민생을 언급한 일도 거의 없다. 3월15일 전남 순천 아랫장번영회 시민 간담회에서 ‘농축산물 가격안정자금 1500억원 투입’을 ‘발표’한 것이 거의 전부다.

이번 4월 총선은 윤석열 정부 출범 2년의 성과를 평가하는 성격이 짙다. 지난해 10월11일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참패한 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민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물가고와 실질소득 감소, 고금리에 따른 이자 부담으로 대표되는 민생고가 선거 패배의 핵심 원인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부터 민생토론회라는 이름의 정책 보고회를 24차례나 열었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것은 ‘감세, 감세, 감세’에 ‘개발, 개발, 개발’이었다. 쉼 없는 부자 감세와 경기 후퇴로 인한 세수 감소 상황에서 정부가 건전재정을 내세워 정부 지출을 급격히 줄인 것이 민생고를 심화시켰지만, 이에 대한 한마디 반성도, 개선 노력도 없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하나로마트 양재점에서 “그래도 (대파 한단에)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고 이상한 말을 했다. 민생 현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그는 ‘민생토론회 현장에서 제기된 민생 과제에 대한 해답을 담아 내년 예산안을 편성할 것’이라고 26일 국무회의에서 말했다. 참으로 느긋하시다.

지지율이 바닥을 기는 윤 대통령을 대신해 여당 대표로서 총선을 이끌기 위해 등판한 한동훈 위원장은 조금 다를 것이라고, 나는 사실 기대했다. 머리 좋다는 그가 핵심 원인을 모를 리 없다고 봤다. 그러나 그가 총선을 2주 남겨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를 세종으로 이전해서 세종을 정치·행정수도로 완성”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는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그가 정작 강조하려던 것은 “(국회가 사라진 여의도를) 금융·문화 중심 메가시티가 되도록 적극 개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민생의 ‘민’ 자도 그의 머릿속에는 입력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에 지나지 않았다.

한 위원장이 생닭을 사서 치켜든 그날 영상을 다시 본다. 이런 소리가 자꾸 귓전을 때린다. “내가 생닭을 샀따아∼.” 웃기면서, 슬프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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