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나를 만들어주는 봄날의 밥상

박미향 기자 2024. 3. 2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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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향의 미향취향 3가지 건강 음식 추천
김지영 셰프가 만든 도라지 요리. 박미향 기자
미향취향은?

음식문화와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기자의 ‘지구인 취향 탐구 생활 백서’입니다. 먹고 마시고(음식문화), 다니고(여행), 머물고(공간), 노는 흥 넘치는 현장을 발 빠르게 취재해 미식과 여행의 진정한 의미와 정보를 전달할 예정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현란한 조리 기술로 화려하게 차린 밥상일까. 로마 황제도 감탄할 만한 진귀한 재료로 만든 먹거리일까. ‘맛있는 음식’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궁극의 미식’에는 누구나 동의할 만한 조건이 하나 있다. 몸에 이로운 건강한 식재료가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금을 울릴 정도의 깊은 맛은 결국 식재료에서 나온다.

‘미쉐린 가이드’ 별점 레스토랑이자 사찰음식 전문인 ‘발우공양’의 김지영 셰프가 식재료 3가지로 음식을 만들었다. 봄 밥상의 주연들은 연근과 도라지, 더덕이다. 그는 “구하기 쉽고 조리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는데다가 봄에 단맛이 더 도드라지는 뿌리채소”라서 골랐다고 했다.

연근은 대표적인 사찰음식 재료다. 연꽃은 차로, 연 잎사귀는 연잎밥으로 쓰인다. 그는 연근에 냉이를 섞었다. 간 연근에 잘근잘근 썬 냉이를 섞어 프라이팬에 지져 만든 전이다. 연근 두 개에 냉이 70~80g가 다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소금만 들어갔어요.” 조리법이 단순하다. 투박한 색과 모양새에 ‘과연 궁극의 맛이 장착되었을까’라는 의심이 들지만, 한입만 먹어보면 우려는 눈 녹듯 사라진다. 연근 특유의 씹는 맛에 냉이의 향긋한 풍미까지 더해져서 화사한 봄날의 낭만을 연출한다. 슴슴하고 단출한 맛이다.

“열이 많은 이들이 먹으면 좋습니다. 해독에도 도움이 되죠.”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김 셰프는 먹거리가 제한적인 스님들이 긴 세월 체득한 채소의 다양한 효능을 잘 알고 있다. “취향에 따라 냉이 대신에 쑥을 넣어도 더없이 향긋한 연근전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김지영 셰프가 만든 연근 요리. 박미향 기자
김지영 셰프가 만든 도라지 요리. 박미향 기자

그가 만든 두번째 음식은 도라지가 주인공이다. 대략 10㎝ 정도 되는 도라지 여러 개가 붉은색 옷을 입고 나타났다. 한 폭의 그림이다. 이 역시 조리법이 단출하다. 도라지를 소금물에 약 10분 정도 담가뒀다가 꺼낸다. 부드럽게 두드린 후 들기름에 굽는다. 도라지가 입은 붉은색 양념은 고추장과 조청을 1 대 2로 섞어 만든 것이다. “양념 바른 것을 구워 먹어도 되는데, 굳이 굽지 않아도 맛납니다. 약한 불에 푹 익히는 게 좋습니다. 들기름이 도라지에 다 흡수되도록 하는 게 좋으니까요.” 그는 쌀 함량이 많은 쌀조청을 추천한다.

“도라지는 기관지가 약한 분들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강연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도라지정과를 가지고 다니면서 먹기도 해요. 요즘처럼 미세먼지가 많은 날엘 특히 더 좋지요.”

맛은 어떨까. 도라지 한 개를 입안에 ‘영접’하자 온몸이 도라지가 된 듯 달아올랐다. 달보드레하고 엇구수한 맛이 세포와 점막에 퍼졌다. 진득한 조청은 혀에 찰싹 달라붙었다. 단순한 맛의 소심한 변주가 입안 가득하게 울려 퍼졌다.

김지영 셰프가 만든 더덕 요리. 박미향 기자

그가 고른 마지막 재료 더덕은 배와 잣이 어우러져서 한층 깊은 맛을 냈다. 까만 접시 위에 엇갈리게 쌓인 더덕들. 마치 눈 쌓인 한라산이 몸을 깎아 작게 한 후 ‘순간 이동’한 듯했다. 이것도 조리법이 간단하다. 더덕은 두들겨 씹기 편하게 만든다. 배 반개와 잣 3~4큰술, 소금 약간을 한꺼번에 믹서에 넣고 간다. “잣 따로 으깨고, 배 따로 가는 것보다 함께 갈아서 마치 마요네즈처럼 만드는 게 좋아요.” 이것을 더덕과 함께 버무린 후 검은깨를 뿌려주면 완성이다. “더덕은 이제 가장 맛있는 철에 접어들었어요. 칼슘, 인 등 무기질이 풍부한 알칼리성 식품인 더덕은 사포닌 함량도 높아서 노화 방지, 암 예방 등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죠.” 씹을수록 사각사각 소리가 입안에 퍼진다. 마치 눈 밟은 소리 같다. 겨울이 달아나고 봄이 달려오는 소리다.

김지영 셰프가 만든 봄철 건강식 3가지. 박미향 기자

김지영 셰프가 ‘발우공양’에서 일한 지는 만 8년이 됐다. 이전 활동 포함해 15년이 훌쩍 넘는 경력의 요리사다. 본래 요리업계와는 관련 없는 일을 하던 그는 폐백음식을 만들던 모친의 영향으로 주방 칼을 들게 됐다. 한복려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 보유자(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가 운영하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수학하고 사찰음식 대가 선재 스님에게 사사했다. 이탈리아에서 2년마다 열리는 ‘세계슬로푸드대회’에 건강한 사칠음식으로 참여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음식 철학도 간명하다. “내 가족이나 내가 먹을 거라면 과연 이런 것들(몸에 좋지 않은 식재료나 양념 등)을 쓸까 생각하면 안 넣겠죠. 떳떳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음식, 거리낄 게 없는 요리를 열심히 만들고 싶습니다. 다행히 ‘발우공양’은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식당이라서 저의 이런 생각을 구현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죠.”

오늘 먹은 음식이 내일의 나를 만든다는 말이 있다.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가. 혀끝에 도는 감동은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에서 나온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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