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서 “메이데이”→ 다리 통제… 인명 대참사 막은 ‘기적의 90초’

볼티모어/김은중 특파원 2024. 3. 2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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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교량 붕괴 김은중 특파원 르포

27일 동틀 무렵, 미 동부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시의 수상 다리 붕괴 현장이 내다보이는 강변 공원. 시민 수백 명이 말문을 잃은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 강물 위 ‘프랜시스 스콧 키’ 다리(약 2632m)는 중심부가 폭삭 주저앉은 채 일부 잔해만 물 위로 솟아 있다. 충돌을 일으킨 싱가포르 선적 대형 컨테이너선 ‘달리’는 잔해에 끼여 우두커니 인양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 퍼탭스코강은 미 최대 자동차 선적항인 볼티모어에서 대서양 방향의 유서 깊은 체서피크만을 향해 나가기 위한 수상 길목에 해당한다. 만(灣) 끝자락에 가로놓인 다리의 상판 아래로 통과하려던 선박이 돌연 교각을 들이받으면서 벌어진 일이다. 전날까지 사고 다리 북쪽 자택에서 창문으로 다리를 내려다봐왔다는 한 지역 주민은 “아침에 일어나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진=UPI연합뉴스, 그래픽=박상훈

지난 26일 새벽 발생한 사고로 당시 다리 위에서 심야 도로 보수 작업 중이던 중남미 이민자 등 인부 8명 중 6명이 수중에 추락·실종돼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 당국이 발표했다. 구조된 2명 중 한 명도 중태로 알려졌다. 충격적인 사고에 “다리에 대한 구조 보강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다만 충돌 당시 선박은 빠른 판단으로 즉각 조난신호를 발신했고, 경찰은 불과 90초의 짧은 대처 시간에 다리 입구에서 차량 진입을 차단해 큰 참사를 막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공개된 수상 보안 카메라 영상에는 어둠 속 선박이 교각과 충돌하기 불과 30초 전까지는 다리 위로 여러 대의 차량 불빛이 빠르게 오가다가, 충돌 직전에야 다리가 비워지는 긴박한 장면이 포착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브리핑에서 “배에 탑승한 이들이 메릴랜드주 교통국에 긴급 상황을 알렸고, 당국은 충돌 직전 통행 차량들을 막을 수 있었다”며 “이것이 사람들 목숨을 살렸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도 “어젯밤 수많은 생명을 구한 영웅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감사를 전한다”고 했다.

다리 상부는 양방향 총 4차로의 고속도로다. 볼티모어를 감싸 도는 외곽 순환도로(인터스테이트 695)의 일부를 이루며, 매일 주야간 3만5000대의 차가 오간다. 미 당국 브리핑과 당시 영상 등을 종합하면, 26일 새벽 1시 26분 선박은 8.5노트(시속 약 15㎞)로 천천히 항행하다가 다리 부근에서 돌연 원인 모를 정전이 발생, 모든 불이 꺼지고 동력을 잃었다. 이어 서서히 교각 쪽을 향하기 시작했다. 배가 항구에서 바다로 나갈 때까지 물길을 인도하는 도선사는 경력 10년 베테랑. 그는 “닻을 내리고 최대한 방향타를 돌리라”는 명령과 함께 즉각 메릴랜드 당국에 긴급 조난신호 ‘메이데이(Mayday)’를 전파했다. 미 언론들은 “인명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빠른 판단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약 2분 뒤 선박 일부가 교각에 충돌했고, 다리 상판이 내려앉는 데 단 20초가 걸렸다. 충돌 직전까지 화물차와 일반 차량 등이 다리 위를 오가고 있었다. AP는 ‘영웅들이 붕괴한 다리로 차량 진입을 막다: 인부들은 사망 추정’ 제목 기사에서 ‘메이데이’ 전달은 불과 12초 동안이었고, 경찰에게는 충돌 순간까지 불과 90초가량 주어졌다고 했다. 현장 경찰 등이 즉각 육지에서 다리로 진입하는 길목에서 차량들 진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당시 무전 기록을 보면 비상 근무자가 “한 명은 다리 남쪽, 다른 한 명은 북쪽에서 교통을 막으라”고 지시한다. 이어 한 경찰이 “(인부들이) 다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경고하겠다” “차를 몰고 다리로 가겠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곧 “방금 전 다리 전체가 무너졌다”고 다급하게 외쳤다.

충돌 순간 다리 위에는 과테말라·엘살바도르·멕시코 등에서 온 이민자를 포함한 인부 8명이 포트홀(도로에 움푹 파인 곳) 보수 작업 중이었다. 이날 강물 온도는 영상 9도로 최장 두세 시간도 버티기 힘들었다. 당국은 오후 8시쯤 “다이버와 헬기·배·드론(무인기) 등 모든 자원을 동원했지만 실종자들 모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색을 중단했다.

사고 직후 대부분의 미 언론은 소방 당국을 인용해 “통행하던 차량들도 추락해 최대 2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날 ABC는 국토안보부 내부 자료를 인용해 “교통 카메라를 검토한 결과 사건 당시 다리를 통과하는 차량은 없었다”고 했다. 제임스 월러스 메릴랜드주 소방국장은 CNN에 “수중 음파 탐지기로 확인한 결과 승용차 3대, 시멘트 트럭 1대, 미확인 차량 1대 등 차량 5대가 수중에 있는 상태”라며 “인부들이 아닌 다른 시민들이 여기에 탑승하고 있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선원 22명과 도선사 2명도 부상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선박의 선복량(적재량)은 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에 달하며, 컨테이너를 가득 싣고 있었다.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은 “이 정도 규모 선박의 직접적인 충격을 견딜 수 있도록 건설된 다리는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토목 엔지니어들을 인용, “(마치 자동차 범퍼처럼) 교각에 콘크리트나 나무 재질의 충격 완충 장치인 ‘펜더(fender)’가 설치돼 있었다면 충돌에 더 잘 견딜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가능한 한 빨리 현장을 방문할 계획”이라며 연방 정부 차원의 사고 수습 지원 방침을 밝혔다. 바이든은 “볼티모어항은 미국 최대의 해상 물류의 허브이면서 부통령과 상원의원 시절 여러 차례 방문했던 곳”이라며 “사고 수습과 재건에 쓸 수 있는 연방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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