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 정부·여당이 불붙인 ‘외국인 가사 도우미’···공(公)약인가, 공(空)약인가

배시은 기자 2024. 3. 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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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의 예비후보자 공약집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이주 가사 노동자 제도’ 도입을 강조하고 나서자 복지 전문가들과 노동계가 “수요자와 노동권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서울 마포갑 지역에 출마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3일 발표한 공약집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누구나 돌봄 서비스 경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주 가사 도우미 도입을 총선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다. 지난해 3월 조 의원은 이주 가사 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논란이 됐다.

정부·여당 인사들의 이주 가사 노동자 제도 도입에 대한 언급은 줄을 잇는다.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5일 언론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배우자를 국내에서 돌봄 인력으로 충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주 부위원장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필리핀 가사 노동자 고용 시범사업에 대해서도 인원 추가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필리핀 가사 노동자 100명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고용하는 시범사업을 올해 상반기 중 시행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이슈페이퍼에 담긴 ‘외국인 가사 노동자를 고용하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에 동의한다는 취지의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누구나 돌봄 서비스 경험”···‘누구나’ 정말 맞나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정부·여당이 이주 가사 노동자 제도를 공약으로 내세우기 전 정책적으로 충분한 고민을 했는지 의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책 수요자가 불분명하며 노동권 침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선 이주 가사 노동자를 도입해도 수요가 제한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양난주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이주 가사 노동자를 입주시켜 돌봄을 맡기고자 하는 수요가 국내에서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소수의 중산층 이상 가정만이 아동·노인의 돌봄을 종일 책임지는 가사 노동자의 임금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 가사 노동자가 최저시급 9860원을 적용받아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면 월 200만원 이상 받게 된다. 서울시 시범사업으로 이주 가사 노동자를 고용한 가정은 이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3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471만원이다. 비슷한 소득수준의 가정이 이주 가사 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소득의 40% 이상을 돌봄 서비스에 써야 한다.

최영미 한국노총 가사·돌봄서비스지부 위원장은 “결국 임금을 깎지 않으면 국민 대다수가 활용하지 못하는 제도”라고 했다. 그렇다고 이주 가사 노동자에게 차등 임금을 지급하면 임금에 대한 차별 금지를 정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위반하는 문제가 생긴다. 차등 임금 지급은 현행 법으로도 불가능하지만, 실효성도 없을 것이란 분석이 있다. 정 활동가는 “지난해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농촌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의 일당을 동결하는 시도가 있었는데 이주 노동자들이 지역을 떠나 인력난이 가중됐다”며 “최저 이하의 임금을 주면 이주 노동자들이 돌봄 분야 일을 하겠느냐”고 했다.

이 때문에 현재 운영 중인 돌봄 서비스 정책 보완·강화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 위원장은 “산모 바우처나 육아휴직 지원 등 현재 활용할 수 있는 돌봄 관련 공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 양 교수는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돌봄서비스가 다른데 이에 대한 고려 없이 이주 가사 노동자로 돌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했다.

‘노동권 보호’는 뒷전?
공공운수노조 서울시사회서비스원지부, 이주노동자평등연대 등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앞에서 한국은행의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이슈노트를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국내 돌봄 서비스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 가사 노동자가 들어오면 노동권 침해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일어나는 돌봄 노동 특성상 노동권 보호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특히 간병 등 돌봄 서비스 분야에서는 차별과 인권침해가 자주 일어나는데,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주 노동자들이 인격권 침해에 관해 적극적으로 항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가사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기반은 미비한 상황이다. 김성희 L-ESG 평가연구원장은 “가사근로자법이 2021년에 만들어졌지만 선언적인 수준의 내용뿐”이라며 “아직 시장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인데 가사 노동자 전반에 대한 법률 정비가 우선 아니겠나”라고 했다.


☞ 홍콩 가사노동자의 일침…“이주노동자에게 값싸게 돌봄 맡기는 건 명백한 차별”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3151605001

배시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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