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낸 '영화표' 속 부담금 사라진다… '그림자 조세' 22년 만에 개편

이희경 2024. 3. 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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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영화관람료에 포함되는 입장권 부과금 등 ‘그림자 조세’로 불리는 부담금 32개를 폐지·감면한다. 이번 부담금 정비를 통해 연간 2조원 수준의 국민·기업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27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부담금 정비 및 관리체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도 추진하지 못했던 과감하고 획기적인 수준으로 국민과 기업에 부담을 주는 부담금을 정비하겠다”라고 말했다.

서울 한 영화관의 상영 시간표. 연합뉴스
◆‘그림자 조세’ 91개→69개로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된 이해관계자에게 해당 사업의 수행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걷는 돈으로, 대다수 국민들이 모르고 내는 경우가 많아 ‘그림자 조세’ 또는 ‘준조세’로 불린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번 정비 방안을 통해 18개 부담금이 폐지되고, 14개 부담금이 감면된다. 지난 1월 부담금 4개를 정비한 것을 감안하면 전체 부담금은 종전 91개에서 69개로 줄어들게 됐다.

정부는 우선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체감할 수 있는 8개 부담금을 정비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영화관람료의 3%를 관람객에게 부과하는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이 17년 만에 사라진다. 영화 산업 진흥을 위해 관람객으로부터 돈을 걷는 것이 부과금 원칙에 맞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관람료 1만5000원 기준 영화 1회 관람시 약 500원의 경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기사용자에게 부과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부담금 요율(현행 3.7%)은 향후 2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포인트 인하된다. 이에 따라 4인 가구는 연간 8000원, 뿌리업종의 경우 연간 62만원이 경감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항공요금에 포함된 출국납부금이 기존 1만1000원에서 7000원으로 4000원 인하되고, 면제대상은 기존 2세에서 12세까지 확대된다. 12세 미만 자녀 2명이 있는 부부의 경우 출국 당 3만원의 경감 혜택을 볼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23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담금 정비 배경은?

정부가 ‘그림자 조세’로 불리는 부담금을 22년 만에 대대적으로 정비한 것은 그동안 관행적 부과로 인해 국민·기업에 미치는 ‘부담’이 상당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제 상황에 맞지 않거나 목적을 다한 부담금 등이 폐지 대상이 됐다. 다만, 개발부담금 감면 등의 경우 특정 개발업자에게 이득을 주는 측면이 있는 데다 경감액의 상당 부분이 지방자치단체에 돌아갔던 재원이어서 지방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또 영화상영관 입장권 부과금의 경우 장기적으로 독립영화 제작 등 국내 영화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재부에 따르면 이번에 정비 대상에 오른 32개 부담금은 원인자·수익자 부담 등 부담금 기본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항목 위주로 선정됐다. 가령 출국납부금 중 1000원의 빈곤퇴치기여금이 부과되는 데 여행객이 빈곤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원인자 부담 원칙에서 벗어난다. 또 국제 우호친선 증진을 위해 여권 발급자에게 부과됐던 국제교류기금 역시 여행객과 공공외교 간 관련성이 적어 부담금 취지에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국제교류기여금의 경우 복수여권은 3000원 인하하고, 단수여권·여행증명서는 면제키로 했다.

정부는 부담금 정비가 기업의 경제활동 촉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100세대 이상 규모의 공동주택(분양가격의 0.8%), 단독주택용 토지(〃 1.4%)를 분양하는 사람에게 부과됐던 학교용지부담금은 폐지된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규 학교용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여유재원이 있는 만큼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해 기업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분양가 4억5000만원 공동주택 기준 약 360만원의 분양가 인하 효과가 기대된다고 정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또 개발사업 시행자에게 개발이익의 일정 비율을 부과하는 개발부담금도 올해 사업 인가분에 대해 한시 감면(수도권 50%, 비수도권 100%) 해주기로 했다.

영세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비 방안도 마련됐다. 경유차 소유자에 부과하는 환경개선부담금은 영세 자영업자(개인소유 배기량 3000cc 이하, 최대 적재량 800㎏ 이상 일반형 화물차)에 대해 50% 인하된다. 또 폐기물 소각·매립시 부과하는 폐기물처분부담금에 대한 중소기업 감면기준 적용 대상도 기존 연매출 6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확대된다. 농지 전용시 부과하는 농지보전부담금도 비농업진흥지역에 한해 개별공시지가의 30%에서 20%로 부과요율이 인하된다. 정부는 이와 함께 도로법상 원인자부담금 등 부과 타당성이 낮은 13개 부담금도 폐지키로 했다.

김언성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이 지난 26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부담금 정비 방안의 주요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특정 개발업자 혜택, 영화계 우려

하지만 부담금 부담 경감 혜택이 특정 개발업자에게 주로 돌아가고, 지자체 재정 여건이 악화될 수 있는 점은 문제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발부담금 감면, 학교용지부담금 폐지 등은 개발업자에게 이득을 주는 특혜”라면서 “전체 부담금 경감액 중 절반이 지자체에 귀속됐던 재원이었다는 점에서 지자체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손 수석연구위원은 “정부는 폐기물부담금 감면 등을 통해 영세사업자에게 도움을 준다고 밝혔지만 기후위기가 심각한 상황에서 환경 관련 부담금을 건드리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영화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영화발전기금의 다각적·안정적 운용에 대한 계획은 정부만의 의지가 아니라 영화계와 함께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며 “(정부의) 일방적 (부과금) 폐지 발표는 영화계로서는 당황스럽고, 다른 방식의 재원조달방안이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부과금을 재원으로 한) 영화발전기금은 일종의 연구개발(R&D) 예산에 가까운데 정확한 대책 없이 급하게 부과금 폐지를 얘기하는 게 심히 우려스럽다”며 “안 그래도 위기인 영화산업에 최악의 결정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김윤상 기재부 2차관은 이에 대해 “영화산업 발전 등 꼭 필요한 사업에 대해서는 다른 일반재원을 써서라도 꼭 지원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희경 기자, 송은아·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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