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응원에 ‘지금보다’ 나아지겠다는 30년의 다짐

구둘래 기자 2024. 3. 27. 15: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21> 창간 30주년 기념 ‘사기자’ 라이브 토크쇼 현장 정리
<한겨레21> 창간 30주년 기념 독자 초청 ‘사기자’ 라이브의 첫 번째 시간. 왼쪽부터 2기자 김양진, 3기자 신다은, 이관후 건국대 교수,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 1기자 김규원, 4기자 류석우. 박승화 선임기자

<한겨레21>이 딱 30살이 되는 날인 2024년 3월1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사기자’ 라이브 행사가 열렸다. 1기자 김규원, 2기자 김양진, 3기자 신다은, 4기자 류석우 기자가 대전과 경기도 구리에서 온, 혹은 아버지에 이어 딸이 읽는 <한겨레21> 독자를 관객석에 앉히고 라이브 토크쇼를 열었다. 첫 손님은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 이관후 건국대 교수. <한겨레21> 30년의 의미와 민주주의 지형 변화의 언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도화된 민주주의의 역설

1기자:30년간 <한겨레21>은 양심적 병역거부나 베트남 양민 학살, 소수자·장애인, 최근 마약 문제까지 사회적 의제를 앞장서 제기해왔습니다. 30년의 <한겨레21>을 보는 소감은 어떠신지요.

정준희 교수: 제가 사회를 보면 즐거운 상황이 아닙니다. (웃음) <한겨레21>은 세상을 만드는 데 개입하는 느낌을 준 최초의 매체였습니다. 민주화가 이뤄진 뒤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디로 향해 가야 하냐는 좀더 깊이 있는 문제를 탐구하는 데 <한겨레21>은 지표가 돼줬습니다. 방금 의제들을 딱 얘기하실 때마다 그때의 기억들이 연결되네요.

이관후 교수: (명절) 고향에 내려갈 때 24시간씩 걸리곤 했는데 <한겨레21> 특대호를 딱 사면 마음이 든든했어요. 당시 여기에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했는데 제가 글을 쓰게 되어 감개무량했죠. 최근 기획 중 기억나는 것은 쓰레기 통권호(제1374·1375호)인데요. 기후위기라는 어젠다를 일상의 문제로 다룬다는 것이 <한겨레21> 같은 주간지가 할 수 있는 특별한 방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기자:30년간 진보언론이 적었지만 현재는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이나 분화를 거쳐 복잡한데요. 현재 진보언론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정준희:현재가 보수나 진보 일변도의 지형은 아니지만, 비교적 공영 중심의 미디어 지형에서 완벽히 사영 중심의 미디어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진보언론이 힘듭니다. 이 사영 중심의 미디어는 자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에 진보언론은 민주주의에 기대서든 사람을 조직하든,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간 진보 진영은 진보적 목소리가 커지는 지형을 정책적으로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굉장히 고민스럽습니다.

1기자:지난 30년간의 정치도 정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관후: 민주화 이후 한 10여 년은 굉장히 많은 것이 이뤄졌죠.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에서는 어떤 새로운 변화와 발전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제도가 만들어져야 후퇴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제도를 만들게 되는데, 그렇게 제도에 의존하면 정치의 사법화가 일어납니다. 그 과정에서 정치가 사라지는 거죠.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이 낮아졌다, 가끔 퇴보한다 느끼는 것은 한편으로 보면 제도화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되는 등 최근 정치인이 고시 출신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죠. 그런데 국민이 통치 엘리트를 선택할 때 선택지가 몇 개 없어요. 어느 진영에서건 그런 새로운 집단을 구성해내는 데, 새로운 세대를 만들어내는 데 실패하지 않았나 합니다.

1기자:언론 지형에서 보도의 편향성 문제도 지적할 수 있는데요.

정준희:<한겨레> 내부에서도 거시론과 미시론의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거시적으로 민주주의가 지금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개별 사안은 보도하지 않느냐 하는 대립이죠. 큰 그림 안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과 그렇지 않은 사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아직은 전 옳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한겨레>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예전에 <한겨레>는 스타트업이었지만 지금은 무거운 공룡이라는 거죠. 여러 면에서 스타트업의 감정이 없어요. 중요한 이유는 배고프지 않아서예요 . 기술의 실패나 혁신의 실패라기보다는 저는 관계의 실패 쪽에 초점을 둡니다.

<한겨레21> 창간 30주년 기념 독자 초청 ‘사기자’ 라이브의 두 번째 시간.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왼쪽 셋째)과 은유 작가(넷째). 박승화 선임기자

누구의 눈으로 볼 것인가

두 번째 시간은 환경운동에 젊은 바람을 일으킨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과 <쓰기의 말들> 저자인 은유 작가를 초대해 미래를 이야기했다. 기후·환경·생태·젠더가 주제로 올랐다.

2기자: 어떻게 운동을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동이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 저는 비진학 청년인데,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을 다니는 대신에 1년씩 네 가지 일을 해보자 이렇게 생각했어요. 하루는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사장님이 돈을 버는 거 말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비영리 영역에 관심 갖게 됐어요.

4기자:언론에서 기후위기 등의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요.

이동이: 저는 기후변화라는 단어가 약간 수동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어요.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더 관점이 들어 있죠. 최근에는 지구온난화 대신 지구가열이라는 말이 또 등장했더라고요.

은유 작가: 명명의 정치학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기후위기 이런 제목 달고 기사가 나오면 좀 두렵죠. 하지만 그 두려움이 무언가를 또 하게 하는 동력이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그 두려움을 잊지 않으려고 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 변화’라고 쓰면 위기의식이 조금 덜 드니까, ‘기후붕괴’라는 단어 등 조금 더 과격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이동이:저는 2015년부터 활동했는데요. 확실히 청년들이 관심이 많아졌다고 체감합니다. 청년들이 자기 돌봄에 많이 관심 갖게 됐잖아요. 나의 먹거리나 나의 소비가 내 몸을 건강하게 하는지, 그리고 지구를 건강하게 하는지도 점점 더 관심이 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은유:창간 30주년에 갯벌 취재도 갔잖아요. 사실 진짜 깜짝 놀랐어요. 이제 선거도 얼마 안 남았고 30주년 기사면 정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저도 모르게 그런 예상을 했나봐요. 환경 기사에선 보통 어떤 증상에 대한 기사가 많은 것 같아요. 왜 그런지 구조와 원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죠. ‘텀블러 쓰자’ 이런 기사보다는 규제나 제도에 대해 쓰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환경 기사에도 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아프리카 우간다의 바네사라는 환경활동가가 2020년 스위스 다보스 경제포럼 반대시위를 했는데, 흑인인 자신만 사진에서 잘린 거예요. 멘트도 빠지고요. 바네사는 ‘나를 지우는 것은 아프리카 대륙을 지우는 것이다’ 이런 말을 했어요. 환경 의제를 다루지만 누구의 목소리와 누구의 관점에서 다루느냐가 중요한 문제임을 느꼈어요.

3기자:개인적으로 은유 작가님은 이런 글쓰기를 할 때 지치지 않으시는지, 슬럼프는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은유: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는 안 팔린다, 이런 이야기를 해요. 2019년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이라고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죽음을 다룬 르포책을 냈는데, 책을 내면서도 기대가 사실 없었어요. 그랬는데 기적처럼 많이 읽혔어요. 마음이 움직이고, 이게 문제라는 걸 느끼고, 어떤 행동을 할 의욕은 다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사람들이 안 읽는 이슈야’라고 포기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읽게 할지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사실 르포 작가가 할 일 많은 나라가 없거든요. 내가 관심 있는 이슈, 자기한테 절실한 이슈에서 출발하면 좋겠습니다. 사회구조 어떤 것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받는가 공부해가면, 글을 쓰는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한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이어

세 번째 시간은 이재훈 편집장의 사회로 창간 30돌에 보내온 메시지 등을 옮겨 적은 포스트잇을 읽었다. “아빠가 13년째 정기구독자셔서 어릴 때부터 가끔씩 관심이 가는 기사 부분을 넘겨보곤 했습니다. 이제는 사회과학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사회시스템 전반에 걸쳐 보다 입체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담론에 관심이 많습니다”라는 메시지의 주인공 안자연씨는 참석을 신고하고 인사를 나눴다.

“창간 때, 기자 지원했다가 안 됐습니다. 얼마나 잘난 사람들이 제대로 하는지 열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역시나 분명한 소리로 바닥까지 다 내려가더군요. 짝짝짝”(주은△) “<한겨레21>은 젊은 매체.”(박○) “아직도 주제와 지도교수를 바꿔가며 대학원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쁜 와중에도 <한겨레21>은 계속해서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제 아들 시○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요. 시○이가 제 나이가 되어서도 같이 즐겨 보는 시사주간지가 되도록, 그리고 제 손자가 먼 미래에 태어나서도 같이 즐겨 볼 수 있도록, <한겨레21>을 응원하겠습니다.”(박종○) “지금처럼 중립을 지향하지 말고 진보에 편파적인 보도를 바랍니다.”(우○명) “수요일이면 우편함에 꽂혀 있을 <한겨레21>을 기다리는 재미가 쏠쏠합니다.”(손○미)

무한한 애정에 무한히 고맙습니다

‘지금처럼’이라고 응원하는 독자가 있어서 30년의 세월이 만들어졌다. <한겨레21>은 또 독자 품에서 응석받이처럼 울게 되지만, 버릇 나쁜 <한겨레21>로 키우는 독자들의 애정에 무한히 감사드린다. 그 응원으로 ‘지금보다’ 더 나아가겠다. 초대손님의 제언도 있고, “앞으로 이런 자리를 많이 만들어나가도록 하겠다”고 이재훈 편집장은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기자 유튜브 라이브 방송 보기

1부 https://www.youtube.com/watch?v=IzhJPiNbXiQ

2부: https://youtu.be/YPvwENe_3uY?si=r4gipPJGC_2IHJV6 

카메라 없이 진행된 3부 행사는 이재훈 편집장이 진행했다. 뒤의 포스트잇은 독자가 보내온 메시지를 옮겨 적은 것. 박승화 선임기자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