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12년 만에 나타난 괴짜 ‘슈퍼엘리트’ [금배지 원정대]
‘연공서열’ 기재부서 10기수 추월 초고속 승진
번아웃 겪으며 휴직 후 국제기구·민간서 활동
국민의힘 영입인재로 ‘깜짝 컴백’ 후 강남 공천
“내겐 ‘구조개혁’이란 끝내야 할 숙제가 있다”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김 전 시장은 경기 시흥을에 전략공천을 받았고, 나머지 3명은 비례대표 후보 신청을 했다. 그 결과 김건 전 본부장은 6번을 받아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고, 구홍모 전 참모차장은 순번을 받지 못했다.
주목할 대목은 박수민 대표가 비례가 아닌 ‘국민추천’ 지역구로 지정된 서울 강남을에서 공천을 받았다는 점이다. 박 후보의 경력만 보면 여당에게 양지 중 양지로 꼽히는 강남 공천을 납득하기 어렵다.
행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공무원 출신이긴 하지만, 장·차관은 물론이고 보직 국장도 못 해봤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를 역임했지만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국제금융기구이고 그 정도 ‘스펙’은 보수 진영 인재풀에선 대단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최근엔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 대표로 활동했다고 하니, 결국 공무원으로 출세에 실패한 뒤 민간으로 건너간 경우가 아닐까. 이런 사람을 대체 왜 보수 텃밭인 강남에 보냈을까.
박수민 후보를 인터뷰하기로 한 건 이런 의구심에서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뒤 이런 기대가 생겼다. ‘22대 국회에선 개성 넘치는 메기 같은 의원을 최소 한명 볼 수 있겠구나.’
박 후보는 모든 기재부 고위직 선배들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가 처음 만난 상사는 당시 기획예산처 법무담당관이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4월 총선서 경북 경산에 무소속 출마)였고,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과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차관을 역임할때 비서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3번째 기획예산처 수장이었던 변양균 장관은 예산실 내부개혁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 ‘탑다운 예산편성’ 담당으로 박 후보를 전격 발탁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그는 외면받긴커녕, ‘자원외교’ 핵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소 수주를 조용히 지원했고,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총괄기획국장을 맡아 유전개발이란 거대 사업을 따냈다.
박 후보는 당시를 회상하며 “맡기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만 했던 것 같다”며 “일하고 애 키우고 일하고 애 키우고 한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2남 3녀를 둔 5남매 아빠다.
승승장구하던 박 후보는 2012년 돌연 휴직계를 내고 사라졌다. 그는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더 이상 일을 닥치는 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기재부에서 ‘고작’ 번아웃을 이유로 휴직을 하는 건 출세를 포기하는 행위지만, 박 후보는 망설임 없이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떠났다. 그것도 무려 3년간 말이다.
KDI에서 구조적인 문제들에 관한 개혁 연구에 빠져있는 박 후보를 그의 첫 직장 상사이자 당시 박근혜 정부 최고의 실세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호출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최 전 부총리의 부름에 1년 가까이 응답하지 않았고, 끝내 만나서 한다는 말이 “그만두겠습니다”였다.
최 전 부총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박 후보의 재능을 잘 아는 터라 어떻게든 그를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최 전 부총리는 대신 세계 시장 개척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를 EBRD로 보냈다. 박 후보는 최 전 부총리의 기대와 달리, EBRD서 3년간 일한 뒤 또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온 건 올해 초였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그는 고민 끝에 응했다.
박 후보는 “사실 내겐 ‘끝내지 않은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국민의 삶을 위한 구조개혁’이라는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지만, 국민 생활은 안정되지 않았다”며 “노후, 일자리, 교육, 주거, 연금 등 압축성장의 후폭풍을 겪고 있는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10~20년의 전략을 갖고 장기비전으로 풀어야 하는 구조개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은 이제 정당과 국회뿐”이라며 “장기비전끼리 경쟁을 하고 표를 받는 정치가 탄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지역구인 강남을에 대해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 있는 지역구”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과거란 서울에서 강서구, 노원구 다음으로 많은 임대주택 분포 비중, 현재는 저출산·고령화·출퇴근 문제다. 그리고 미래는 수서역이다. 박 후보는 “임대주택은 빠른 재건축, 좋은 재건축으로, 출퇴근 문제는 수서역을 미래의 서울역으로 만듦으로써 해결할 것”이라며 “미래에 수서역은 로봇과 AI 산업이 모이고, 도심항공교통(UAM) 단지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금, 일자리, 주택 분야에서도 진짜 제대로 된 정책을 펼쳐, 강남을의 자부심이 되고 싶다는게 박 후보 소망이다.
강남을은 명실상부한 ‘보수 텃밭’이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선 4.5%포인트 격차를 내는 데 그쳤고, 20대 때는 무려 24년 만에 진보 진영에 지역구를 내주는 대이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강남을에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을 전략공천하면서, 이 지역에서는 여야 영입인재 대결이 벌어지게 됐다.
국제기구 근무 시절 박수민 후보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22대 국회에 입성할 경우, 여야 통틀어 ‘가장 영어를 잘하는 의원’ 중 한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사실 박 후보는 영어 때문에 행정고시 1차만 두 번 떨어졌을 정도로 대학 시절만 해도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졸업부터 해버린 ‘백수’ 시절, 그는 어느 날 ‘버캐뷸러리(Voca) 33000’을 한권 산 다음에 무작정 영작을 했다고 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보다 한차원 더 어려운 ‘쓰기’부터 공략해 원어민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게 된 특이 케이스다.
구조적인 개혁을 통한 ‘글로벌 선진국 코리아’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도 있다. 영어 문제 해결 후, 행정고시 2차 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자마자 유럽 여행을 떠났다. 박 후보는 “파리 여행 중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앞에 빨간색 BMW 오픈카가 서더라고요. 안에 프랑스인 남녀가 타고 있길래 손을 흔들었는데, 저를 경멸하는 차가운 눈빛이 스쳐 가는 것을 보았죠. 그때 빨리 중요한 사람이 돼 한국을 세계적인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죠”라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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