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 12년 만에 나타난 괴짜 ‘슈퍼엘리트’ [금배지 원정대]

이유섭 기자(leeyusup@mk.co.kr) 2024. 3. 27.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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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원정대-44] 서울 강남을 출마 박수민
‘연공서열’ 기재부서 10기수 추월 초고속 승진
번아웃 겪으며 휴직 후 국제기구·민간서 활동
국민의힘 영입인재로 ‘깜짝 컴백’ 후 강남 공천
“내겐 ‘구조개혁’이란 끝내야 할 숙제가 있다”

◆ 제22대 국회의원선거 ◆

4·10 총선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박수민 국민의힘 후보가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지난 2월 29일 국민의힘이 김건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구홍모 전 육군 참모차장, 김윤식 전 시흥시장 그리고 박수민 아이넥스 메디컬 AI 스타트업 대표(56) 등 인재 4명을 영입했다.

김 전 시장은 경기 시흥을에 전략공천을 받았고, 나머지 3명은 비례대표 후보 신청을 했다. 그 결과 김건 전 본부장은 6번을 받아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고, 구홍모 전 참모차장은 순번을 받지 못했다.

주목할 대목은 박수민 대표가 비례가 아닌 ‘국민추천’ 지역구로 지정된 서울 강남을에서 공천을 받았다는 점이다. 박 후보의 경력만 보면 여당에게 양지 중 양지로 꼽히는 강남 공천을 납득하기 어렵다.

행시에 합격해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공무원 출신이긴 하지만, 장·차관은 물론이고 보직 국장도 못 해봤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를 역임했지만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은 국제금융기구이고 그 정도 ‘스펙’은 보수 진영 인재풀에선 대단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최근엔 벤처캐피털(VC)과 스타트업 대표로 활동했다고 하니, 결국 공무원으로 출세에 실패한 뒤 민간으로 건너간 경우가 아닐까. 이런 사람을 대체 왜 보수 텃밭인 강남에 보냈을까.

박수민 후보를 인터뷰하기로 한 건 이런 의구심에서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마친 뒤 이런 기대가 생겼다. ‘22대 국회에선 개성 넘치는 메기 같은 의원을 최소 한명 볼 수 있겠구나.’

커리어 최정점 앞두고 훌쩍 떠난 ‘쿨한 천재’
4·10 총선서 서울 강남을에 출마한 박수민 국민의힘 후보가 지역 구민과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박수민 후보 선거사무소]
결론부터 말하면 박수민 후보는 기재부 ’슈퍼 에이스’ 출신이다. 대표 사례로 그는 2004년 3월 재정분석과장이 되는데, 행시 36회인 박 후보의 전임자가 행시 26회였다. 지금보다도 연공 서열이 심했던 당시 기재부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인사였다.

박 후보는 모든 기재부 고위직 선배들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그가 처음 만난 상사는 당시 기획예산처 법무담당관이었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4월 총선서 경북 경산에 무소속 출마)였고,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과 김병일 전 기획예산처 장관 등이 차관을 역임할때 비서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 3번째 기획예산처 수장이었던 변양균 장관은 예산실 내부개혁을 위한 비밀 프로젝트 ‘탑다운 예산편성’ 담당으로 박 후보를 전격 발탁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그는 외면받긴커녕, ‘자원외교’ 핵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아랍에미리트(UAE) 원자력 발전소 수주를 조용히 지원했고,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에서 총괄기획국장을 맡아 유전개발이란 거대 사업을 따냈다.

박 후보는 당시를 회상하며 “맡기는 대로 닥치는 대로 일만 했던 것 같다”며 “일하고 애 키우고 일하고 애 키우고 한 기억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2남 3녀를 둔 5남매 아빠다.

승승장구하던 박 후보는 2012년 돌연 휴직계를 내고 사라졌다. 그는 “‘번아웃’이 심하게 왔다. 더 이상 일을 닥치는 대로 할 자신이 없었다”고 말했다.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한 기재부에서 ‘고작’ 번아웃을 이유로 휴직을 하는 건 출세를 포기하는 행위지만, 박 후보는 망설임 없이 한국개발연구원(KDI)으로 떠났다. 그것도 무려 3년간 말이다.

KDI에서 구조적인 문제들에 관한 개혁 연구에 빠져있는 박 후보를 그의 첫 직장 상사이자 당시 박근혜 정부 최고의 실세였던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가 호출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최 전 부총리의 부름에 1년 가까이 응답하지 않았고, 끝내 만나서 한다는 말이 “그만두겠습니다”였다.

최 전 부총리는 어이가 없었지만, 박 후보의 재능을 잘 아는 터라 어떻게든 그를 붙잡고 싶었다. 그래서 최 전 부총리는 대신 세계 시장 개척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를 EBRD로 보냈다. 박 후보는 최 전 부총리의 기대와 달리, EBRD서 3년간 일한 뒤 또 새로운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국민소득 높지만, 생활 불안정···구조개혁 시급
그는 외국 자본을 유치하는 자문사를 런던에서 시작했고, 곧이어 스타트업을 돕는 벤처캐피탈(VC)을 국내에 설립했다. 박 후보는 “공직을 떠난 후 6년간 바이오의약, 핀테크, 디지털 문화콘텐츠, 그리고 해외자본 유치라는 4가지 분야에서 투자활동을 했다”며 “아이넥스 메디컬 AI 스타트업의 경우, 꼭 기업화시켜야 한다는 소명을 느꼈다”고 소개했다.

정치권에서 러브콜이 온 건 올해 초였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그는 고민 끝에 응했다.

박 후보는 “사실 내겐 ‘끝내지 않은 숙제’가 하나 있다. 바로 ‘국민의 삶을 위한 구조개혁’이라는 숙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3만5000달러지만, 국민 생활은 안정되지 않았다”며 “노후, 일자리, 교육, 주거, 연금 등 압축성장의 후폭풍을 겪고 있는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10~20년의 전략을 갖고 장기비전으로 풀어야 하는 구조개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은 이제 정당과 국회뿐”이라며 “장기비전끼리 경쟁을 하고 표를 받는 정치가 탄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지역구인 강남을에 대해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 있는 지역구”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과거란 서울에서 강서구, 노원구 다음으로 많은 임대주택 분포 비중, 현재는 저출산·고령화·출퇴근 문제다. 그리고 미래는 수서역이다. 박 후보는 “임대주택은 빠른 재건축, 좋은 재건축으로, 출퇴근 문제는 수서역을 미래의 서울역으로 만듦으로써 해결할 것”이라며 “미래에 수서역은 로봇과 AI 산업이 모이고, 도심항공교통(UAM) 단지로 진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금, 일자리, 주택 분야에서도 진짜 제대로 된 정책을 펼쳐, 강남을의 자부심이 되고 싶다는게 박 후보 소망이다.

강남을은 명실상부한 ‘보수 텃밭’이다. 하지만 지난 선거에선 4.5%포인트 격차를 내는 데 그쳤고, 20대 때는 무려 24년 만에 진보 진영에 지역구를 내주는 대이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강남을에 강청희 전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을 전략공천하면서, 이 지역에서는 여야 영입인재 대결이 벌어지게 됐다.

여의도 입성 시 국회의원 ‘영어 1등’ 예약
Q. 박수민에게 정치란? ‘끝내지 못한 숙제’를 푸는 공간 Q. 박수민에게 금배지란? 국민의 고민이 응축된 무게

국제기구 근무 시절 박수민 후보를 기억하는 이들은 그가 22대 국회에 입성할 경우, 여야 통틀어 ‘가장 영어를 잘하는 의원’ 중 한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사실 박 후보는 영어 때문에 행정고시 1차만 두 번 떨어졌을 정도로 대학 시절만 해도 영어에 자신이 없었다.

별다른 대책도 없이 졸업부터 해버린 ‘백수’ 시절, 그는 어느 날 ‘버캐뷸러리(Voca) 33000’을 한권 산 다음에 무작정 영작을 했다고 한다. 말하기, 듣기, 읽기보다 한차원 더 어려운 ‘쓰기’부터 공략해 원어민에 버금가는 실력을 갖추게 된 특이 케이스다.

구조적인 개혁을 통한 ‘글로벌 선진국 코리아’를 만들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도 있다. 영어 문제 해결 후, 행정고시 2차 시험을 준비하던 그는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자마자 유럽 여행을 떠났다. 박 후보는 “파리 여행 중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앞에 빨간색 BMW 오픈카가 서더라고요. 안에 프랑스인 남녀가 타고 있길래 손을 흔들었는데, 저를 경멸하는 차가운 눈빛이 스쳐 가는 것을 보았죠. 그때 빨리 중요한 사람이 돼 한국을 세계적인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죠”라고 회고했다.

‘금배지 원정대’는 2024년 4월 열리는 22대 총선에 출마를 준비 중인 정치인을 소개하고, 해당 지역구를 분석해보는 매일경제신문 정치부의 기획 연재물입니다. 현역 의원은 물론 정치 신인까지 집중 추적해 유권자 여러분의 선택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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