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그날의 광주, 이런 사람들은 없었을까[시네프리뷰]

2024. 3. 27.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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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확정해 놓은 공식 서사를 살짝 비껴간다. 당시 전남도청 인근, 하필이면 항쟁이 시작되기 전날인 5월 17일 신장개업을 한 중국집 ‘화평반점’이 이야기의 중심 무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제목: 1980(1980: The Unforgettable Day)

제작연도: 2024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99분

장르: 드라마

감독: 강승용

출연: 강신일, 김규리, 백성현, 한수연

개봉: 2024년 3월 27일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제작: ㈜히스토리디앤피, ㈜디에이치미디어, 굿픽쳐스

배급: ㈜제이앤씨미디어그룹

공동배급: 와이드릴리즈㈜

제공 ㈜제이앤씨미디어그룹

허구다. 그날 밤 진압 영상은 바로 TV에서 방영되지 않았다. 영상이 공개된 것은 수십 년 후다. 5월 28일 새벽 전남도청을 사수하던 시민군은 짜장면을 먹다가 계엄군의 기습공격으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다. 그날 새벽, 시민군으로 있다가 빠져나온 누군가가 카빈총으로 자살한 사례는 없다.

1980년 광주 5·18을 다룬 영화 리스트는 꽤 길다. 이 코너에서 다룬 영화만 해도 <26년>(조근현 감독·2012), <택시운전사>(장훈 감독·2017), <김군>(강상우 감독·2019), <아들의 이름으로>(이정국 감독·2021) 등이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1980년 5월 광주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80년 광주’를 되돌아보는 이유

많다. 그때를 경험한 장삼이사 보통 사람들 이야기는 아직 다 조명받진 않았다. 영화는 1985년 ‘전남사회운동협의회編(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확정해 놓은 공식 서사를 살짝 비껴간다. 당시 광주에 있던 전남도청 인근에, 하필이면 항쟁이 시작되기 전날인 5월 17일 신장개업을 한 중국음식점 ‘화평반점’이 이야기의 중심 무대다. 영화의 주인공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철수다. 화평반점의 주인은 화교가 아니라 쓰는 말투로 보아 이북 태생인, 어쩌다 보니 광주에 내려와 정착한 철수의 할아버지다. 철수가 신경 쓰는 동급생 여자아이가 있다. 영희다. 철수네 집에 셋방을 얻어 살고 있다. 철수와 영희가 있으니 ‘바둑이’도 나와야 한다. 철수가 기르던 개다. 바둑이는 야학 운동을 하던 아버지를 쫓아온 군인들에게 밟혀 죽는다. 철수나 영희는 때 묻지 않은, 아무런 죄없이 그때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평생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상징한다.

철수 어머니(철수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작중 이름이 없다)는 임신 중이다. 실제 희생자 중 임신부가 있었다. 당시 23세였던 최미애씨다. 극 중에서 상원이라고 불리는 철수 아버지의 모티브가 실제로 전남도청 최후 항쟁을 주도한 윤상원씨라면, 철수 어머니는 최미애씨를 염두에 두고 등장시킨 건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5·18을 다룬 기존 영화와 이 영화의 가장 큰 차별점은 아마도 창작적 허구일 듯싶은데 영희네 가족 이야기다. 그동안 공식 서사였던 ‘10일간의 해방공동체 광주’ 이야기에서는 조명받지 못한 사람들 이야기다. 군인인 영희 아버지는 항쟁 참여자를 고문했다. 영희 아버지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보아 동향 출신이고, 영희 엄마와 영희는 서울에 살다가 내려왔다. 항쟁 기간 군인들의 야만적인 진압을 경험한 동네 사람들은 영희네 미장원 앞에 몰려와 같은 군인이라고 항의하고 가게를 때려 부순다. ‘아무런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철수가 앞에 나와 촛불을 들고 발언을 하자 동네 주민들의 분노는 잦아든다. 동네 주민들은 야간에 뭉친 신문지를 받쳐 촛불을 들고 집회를 여는 것처럼 묘사돼 있는데, 사실 대한민국에서 촛불시위는 세기를 넘겨 2002년에 처음 시작됐다(박스 참조).

‘화평반점 1980’, 원래 이야기는

영희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 한수연씨는 시사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원래 시나리오에는 영희네 가족의 그 후 이야기도 담겨 있었다고 밝혔다. 광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간 영희 아빠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다 양심선언을 하고 부부는 함께 목숨을 끊는다. 영화의 원제는 ‘화평반점 1980’이었다. 아마도 운명처럼 쇠락해가는 광주 구도심의 중식당 경영자로 장년을 맞은 철수와 부모 죽음의 단서를 찾고자 어린 시절 잠시 머물렀던 광주를 찾은 영희가 40여 년 만에 재회한다는 게 원래 시나리오의 도입부 일 듯싶다. 강승용 감독을 만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

촛불시위는 언제 처음 시작됐나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앞서 ‘촛불시위는 2002년 처음 시작됐다’고 밝혔는데 공교롭게도 <1980>과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댓글부대>에도 영화 시작 부분에서 이 촛불시위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한다. <댓글부대> 영화의 주인공 임상진(손석구 분) 기자는 2016년 촛불시위 참여자 수 등을 거론하며 촛불시위 기원을 추적한다. 일종의 탐사 취재인 셈인데 그가 추적해 알아낸 최초의 촛불 시위자는 ‘앙마’라는 사람이다. 1992년 중학생이었던 앙마는 PC통신 사용자들을 모아 ‘대한민국 정부보다 위에 있다’라고 주장하는 만전이라는 회사를 규탄했다. 잘 모르는 사람은 혹할 수도 있는 ‘썰’이긴 하다.

촛불시위의 첫 제안자가 ‘앙마’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었던 것은 맞다. 2002년 당시 30세의 학원강사 김기보씨였다. 개인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있었다. 당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글을 인용해 촛불시위를 제안했다. 이는 ‘기만’이라는 비난도 보수매체를 통해 나왔지만, 그는 꿋꿋이 활동했다. 나중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반대하는 ‘반전평화연대’ 활동(2003~2004년)까지 이어졌다. 당시 기자는 김기보씨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김씨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이미 촛불을 든 적 있다고? 그런 이야기는 들은 적 없다. 의문이 꼬리를 물다 보니 영화 감상을 방해했다.

영화 <댓글부대>는 소설가 장강명씨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임상진 기자와 주요 등장인물의 닉네임, 팀알렙이라는 팀명까지 원작에서 가져왔다. 큰 이야기 구조는 원작 소설의 대강과 맞는데 ‘만전’과 같은 대기업의 횡포라든가, 세부 내용은 완전히 새로 썼다. 장강명씨는 소설 <댓글부대>에 덧붙인 후기에서 책의 모티브는 인터넷 커뮤니티를 다룬 기자의 주간경향 기사에서 가져왔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작성한 것이다. 당연, 지금 시대에 맞춰 극화하려면 새로운 내용으로 채울 수밖에. 감독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허구라고 했지만 대부분은 취재를 통해 밝혀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기자의 기억과 다른 ‘앙마’ 이야기도? 영화사를 통해 감독은 “김씨는 만나지 않았고 이야기는 창작한 것”이라고 전해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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