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감성 모르면 나가라”[꼬다리]

2024. 3. 27.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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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소녀감성 김선’으로 불리는 주부 크리에이터 김선씨(왼쪽)와 김씨를 패러디한 방송인 유병재씨 /채널 유병재 갈무리



“○○ 감성 모르면 나가라.” 가장 따끈한 유행어를 꼽자면 이 문장이 아닐까. 사용법은 간단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타인이 공감하지 못할 때 사용하면 된다. “(영화) <미드소마> 감성 모르면 나가라”, “90년대 감성 모르면 나가라” 등 ‘○○’ 자리에 좋아하는 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집어넣으면 된다. 주부 크리에이터 김선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래했다. 일명 ‘소녀감성 김선’으로 불리는 그는 인스타그램 소개말에 “평범한 주부이지만 꿈 많은 소녀감성으로 하고 싶은 것을 마음먹은 대로 실행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요”라고 썼다.

김씨를 처음 보는 이는 백이면 백 놀란다. 시골에 사는 그는 자연에서 난 재료를 활용한 패션을 선보이는데,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말린 전복 껍데기를 활용한 선글라스가 대표적이다. 한라봉을 엮어 만든 모자를 쓰고, 꽃잎이나 나뭇잎을 붙여 눈썹을 장식한다. 초창기 댓글 창은 혼란스러워하는 누리꾼 반응으로 가득 찼다. 김씨의 독보적 취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원색적인 표현으로 김씨를 조롱하거나 비웃는 이도 있었다. 지금은 “김선 감성 모르면 나가라”는 물론 “아직은 김선 감성을 잘 몰라서 내가 나간다” 등 김씨의 취향을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반응이 우세하다.

타인을 조롱하거나 희망없이 세태를 비관하는 신조어가 줄을 잇던 차에 이 같은 유행어는 반갑다. 김씨의 취향을 존중하자는 마음이 모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유명인이 주도해 만들어진 유행어가 아니란 사실도 귀하다. 한 누리꾼은 “한결같은 김씨 모습에 진정성과 순수함을 느꼈다”라고 했다. 김씨도 자신의 과거 사진을 공개하며 “내 취향은 변함이 없다”라고 했다. 피아노를 치거나 농사를 짓는 일상도 꾸준히 올린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SNS를 시작한 이유로 “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 배우는 데 열정을 쏟아 내 재능을 펼치고 싶었다”며 “(그러지 못한) 젊은 날을 정말 후회하면서 이렇게 안 살고 싶어서”라고 했다.

다만 ‘즐길 수 없으면 빠져라’식의 정서가 이곳만큼은 퍼지지 않았으면 한다. 주류 정치권 말이다. 4·10 총선을 앞둔 공천 국면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은 각자 바라보는 곳이 명확했다. ‘용산 감성 모르면 나가라’, ‘개딸 감성 모르면 나가라’는 식이었다. 국민의힘은 5·18민주화운동 북한 개입설을 주장한 후보를 “다양성 존중”이란 표현으로 두둔했다. 민주당은 ‘바퀴벌레·X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은 후보는 용인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해선 가차 없이 컷오프(공천 배제)했다. 초등학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을 변호한 한 후보는 ‘배지를 길에서 주웠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경찰청에서 국회로 출근지를 옮긴 지 3개월하고 반이 지났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당의 가치와 비전을 내보일 수 있는 후보보단 ‘스피커가 큰 싸움꾼’만 찾는 이 감성은 총선이 끝날 때까지 계속 모를 듯하다. ‘저는 나갑니다’를 외치고 싶을 때마다 “정치부 기자는 정치를 혐오해선 안 된다”는 조언을 되새긴다.

이유진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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