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안녕! 정결한 집이여

관리자 2024. 3.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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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제가 어릴 적 살던 집에 가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이 집을 팔지 않고 세를 주고 있었는데, 여러번 세입자가 바뀌며 30여년이 흘러갔지요.

오래오래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져, 집을 둘러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집을 통해 온 마음으로 그녀의 시간을 느꼈던 파우스트처럼 남편은 순수했던 시간과 추억이 담긴 저의 집을 보며 이 노래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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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제가 어릴 적 살던 집에 가보았습니다. 부모님은 이 집을 팔지 않고 세를 주고 있었는데, 여러번 세입자가 바뀌며 30여년이 흘러갔지요. 그동안 가볼 일이 없었는데 곧 재개발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니 집이 없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희 아들은 엄마의 옛날 집 투어를 하는 것이 민속촌에 가는 기분이라며 탐험가처럼 모자를 쓰고 카메라도 챙겼습니다. 낯설어진 골목들을 지나니 기억 속에만 있던 옛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텅 빈 집 안에 들어서니, 어릴 적 세자매가 뛰어놀던 운동장만 했던 거실이 너무나 작아진 느낌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으며 찬찬히 공간을 살펴보니 잊고 지낸 추억들이 하나둘 떠올랐습니다. 영화 타이타닉의 첫 장면처럼 먼지 속에 묻어 있던 기억들이 생생히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침대 옆에 있던 나의 작은 피아노, 아침을 깨우는 어머니의 밥 짓는 소리, 안방에서 영어공부를 하던 아버지의 책상과 기침 소리···. 남들에게는 비어 있는 낡은 집이지만 제 마음의 보석상자가 열리는 순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이 너무나 선명해져 사무치는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오래오래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져, 집을 둘러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해달라고 남편에게 부탁했습니다. 낡은 집이 예쁘지 않게 나올 테니 흑백으로 멋있게 좀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 남편은 선물이라며 이동식저장장치(USB) 하나를 건네주었습니다. 동영상이 들어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선물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둘러보는 내 모습과 함께 배경음악으로 프랑스 대표 작곡가 샤를 구노(1818~1893년)의 오페라 ‘파우스트’에 나오는 ‘안녕! 정결하고 순결한 집이여(Salut! demeure chaste et pure)’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영상이 최고의 음악을 만나니 반짝반짝 빛나는 예술작품이 돼 있었습니다.

너무나 유려하고 아름다운 선율 앞에 숙연해지기까지 한 이 노래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에게 젊음을 산 파우스트 박사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첫눈에 반한 젊은 처녀 마르그리트의 집을 보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테너의 아리아입니다. 집을 통해 온 마음으로 그녀의 시간을 느꼈던 파우스트처럼 남편은 순수했던 시간과 추억이 담긴 저의 집을 보며 이 노래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가난하지만 정결한 이 집에서 온 자연이 사랑으로 이 아름다운 여인을 정성껏 키워냈다는 내용의 가사는 호소력 있는 고음을 내는 테너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줍니다. 이 오페라를 작곡한 구노는 마르그리트의 존재에 대해 경이로움과 감사를 이야기하는 부분을 아무나 낼 수 없는 극고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은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고향 집이 있나요?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 시절, 나를 품어준 소중한 집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들어보면 어떨까요? ‘Salut! demeure chaste et pure’ 프랑스어로 돼 있는 노래의 가사를 다 이해하지 못해도 음악은 우리를 신비한 시간과 공간으로 데려다줄 것입니다.

이기연 이기연오페라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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