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여인의 키스’ 무대에 정일우가 없어요”

박은희 2024. 3. 2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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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일우 “평소 걸음걸이·손동작·말투까지 여인 몰리나처럼”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일우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일우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일우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제공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일우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제공

"기회만 된다면 평생 무대에서 연기하고 싶습니다."

2006년 MBC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해 방송과 영화 작업을 주로 하던 정일우가 2019년 '엘리펀트 송'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선 뒤 라이브 공연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정일우는 "무대에 서서 2시간가량 끌고 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나가고 새로운 걸 보여주면 배우로서 살아 있다고 느껴진다"며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을 설득하려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지만 성장의 계기가 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두 번째 연극 작품으로 선택한 건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마누엘 푸익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거미여인의 키스'다. 이념과 사상이 전혀 다른 '몰리나'와 '발렌틴'이 감옥에서 만나 서로를 받아들여가는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인간애와 사랑을 다룬 극이다. 정일우는 자신을 여자라고 믿고 있는 낭만적 감성의 소유자 몰리나를 연기한다.

"친하게 지내는 정문성 형이 발렌틴 역을 한 적이 있는데 인생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라고 추천했어요. 많은 걸 느끼고 배울 거라고 하셔서 큰 용기를 내 도전하게 됐죠. 무엇보다 몰리나 캐릭터 자체의 매력에 빠져 몰리나를 잘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두 달 반 동안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연습실에서 연출님·배우들과 많이 고민하고 연습하며 준비를 했습니다."

정일우는 처음엔 자신의 표현에 확신이 없어 낯설고 무섭고 두려웠지만 박제영 연출의 한 마디가 큰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는 "연출님이 생각한 몰리나와 가장 비슷하게 연기를 하고 있다고 격려해주셨다"며 "내 해석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어 안도감과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몰리나가 갖고 있는 사랑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어요.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사랑인 것 같아 정문성 형의 생각을 물어봤거든요. 형도 그게 맞다고 모성애에 가까운 사랑일 거라고 해서 무릎을 탁 쳤어요. 발렌틴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부족한 걸 채워주려는 마음이 제가 어머니께 받는 사랑과 비슷하다고 느껴 해결된 부분이 많아요."

정일우가 표현하는 몰리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굉장히 유약하고 정말 부드러워 보이지만 강한 면도 있고 한편으로는 어딘가 슬픔도 있어 보인다"며 "그래서 안아주고 싶은 여자로 만들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가 갖고 있는 섬세함과 예민함이 몰리나랑 비슷한 결이라고 생각해 제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서 많이 표현을 하려고 했다"며 "유리알같이 깨질 것 같은 캐릭터가 체화돼 평소 걸음걸이, 손동작, 말투까지 몰리나같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공연이 끝나면 지인들의 관람 후기에 귀를 기울이고, 관객 리뷰 등을 통해 다양한 생각을 접하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게 연극이 점점 재밌어지는 이유다. 정일우는 "'어느 순간부터 정일우가 안 보이고 몰리나라는 한 여인이 보이더라'라는 말씀들을 많이 해주시는데 제겐 가장 극찬이라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그는 스스로 굉장히 겁이 많아 두려움을 안고 산다고 말한다. 부족함도 많다고 느끼기에 연습과 노력으로 채워나가려고 부단히 애쓴다. 그런 정일우에게 성취감이 오는 지점이 문득 궁금해졌다. "모르겠어요. 오래 일을 하다 보니까 순간순간 잠깐의 만족은 있지만 '나는 좋은 배우야'라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오늘 공연이 잘 됐으면 '다행히 큰 실수 없이 잘 끝냈구나' 이런 안도를 할 뿐이죠."

정일우는 이번 공연을 하는 도중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그는 "아무래도 계속 반복하다보니 20회차에 '같은 연기, 가짜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지금 잘 가고 있는 건가' 불안함이 생기더라"며 "그걸 깨는 것도 당연히 제 몫이라 무작정 대사 연습을 계속 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방법이 없었다"라며 "정일우가 개입하는 순간 갑자기 산으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저를 많이 배제하고 몰리나로서 모든 걸 생각하고 연기하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은 그날 공연을 잘 해도 개운함이 없어요. 퇴장하고 나서 내레이션이 계속 나오면서 먹먹한 감정이 끝까지 가기 때문에 공연이 끝나도 해소가 어렵더라고요. 아마 폐막 후에도 여운이 꽤 오래 가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미리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노력만큼 재충전의 시간도 확실하게 갖는 게 정일우의 버티기 비결이다. 그는 "일 끝나고 나서는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어딘가 걸으러 가거나 온전히 정일우를 위한 시간을 줘야 한다"며 "불안함은 어쩔 수 없이 항상 갖고 있지만 그 시간을 무기력하게 집에서만 있으면 해결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는 조급함만 있었어요. 이젠 생각을 바꿔서 작품이 안 들어와도 걱정하지 않고 나를 바꾸는 시간으로 활용해요. 독서와 여행을 굉장히 많이 하고, 못 본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요. 배우는 이렇게 뭔가 계속 채워놔야 그걸 갖고 다음 작품을 하면서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20대를 지나 30대가 되면서 바뀐 지점인 것 같아요."박은희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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