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세브가 백과사전이라면 손열음은 편집자”

임석규 기자 2024. 3. 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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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음-루세브 듀오, 음반 ‘러브 뮤직’ 발매
손 “엄청나게 많은 음반 남기고 싶어”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22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5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 피아니스트 손열음(38)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48)가 무대에 올랐다. 공연 제목이 ‘러브 뮤직’, 두 사람이 최근 낸 듀오 음반도 ‘러브 뮤직’이다. 이날 공연 역시 사랑이란 주제를 배경으로 지닌 곡들로 채웠다.

“루세브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딱 내 스타일이라고 느꼈어요.” (손열음) “열음과 연주하다 보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음악가가 된 기분이에요.” (루세브)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보는 눈길이 그윽했다. 이 커플의 첫 만남은 2008년 서울시향 신년음악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명훈 지휘에 루세브가 악장을 맡고, 손열음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했다. 정명훈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서울시향 음악감독 시절 루세브를 악장으로 앉히며 두터운 신뢰를 보냈다. 손열음과 루세브의 첫 듀오 공연은 2015년 8월. 그로부터 9년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은 숱한 무대에 함께 오르며, 음악적 동지에서 삶의 동반자로 나아갔다.

‘러브 뮤직’이 두 사람의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손열음은 “전혀 관련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프란츠 왁스만(1906~1967)의 '러브 뮤직' 악보가 출발점이라는 거였다.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나오는 ‘사랑의 죽음(Liebestod)’을 편곡한 작품이다. “루세브가 핀란드에서 이 악보를 얻었다는 거예요. 보자마자 꼭 연주해보자고 했지요.” 손열음은 “루세브가 백과사전형이라면 저는 편집자형”이라고 했다. “음악 지식이 풍부한 루세브가 이것저것 늘어놓으면, 저는 이거랑 저거랑 엮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죠. 이번 음반도 이런 식의 작업으로 나왔어요.” 음반엔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후기 낭만주의 곡들을 담았다. “낭만의 절정에서 더는 갈 데가 없다는 막다른 느낌이랄까요. 낭만의 극단에서 한계에 다다른 음악일 수도 있겠죠.” 손열음은 “이 음반의 전반적인 무드는 낭만이지만 한편으론 슬픈 정서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는 최근 음반 ‘러브 뮤직’을 발매하고, 서울 등 4개 지역을 돌며 듀오 리사이틀을 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루세브는 무조건 밖으로 나가고 온종일 전화기 붙들고 수다를 떠는데 저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도 잘 안 해요” 손열음은 “저는 아이엔에프피(INFP)인데 루세브는 이에스티제이(ESTJ)라서 엠비티아이(MBTI)도 일치하는 게 하나도 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둘의 음악적성향은 찰떡궁합이다. 루세브는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어서 손열음과 연주하면 굉장히 편하다”고 했다.

손열음의 요즘 화두는 ‘나다움’이다. “뭐가 가장 오리지널한 나일까를 발견하고 싶은 욕구가 되게 커요. 예전엔 뭔가 표류하고 부유하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제가 좀 더 주도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요. 정말 나밖에 할 수 없고, 가장 나다운 일 말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손열음에게도 고충이 있었다. “제게 수락과 거절의 권리가 있다고 느끼질 못했어요. 직업인으로서 모든 걸 다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이제는 음악을 좋아하는 나 자신으로 돌아가 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며 “코로나를 겪으면서 음악과 연주에 대한 기준점이 달라졌다”고 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손열음의 프로젝트는 음반과 고잉홈프로젝트로 귀결되는 것 같다. “고잉홈프로젝트를 상설 오케스트라로 만들고 싶어요.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요.” 한국인 연주자와 한국과 인연이 깊은 해외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음악 축제인 고잉홈프로젝트는 오는 7월과 8월에도 2회씩 공연이 잡혀 있다. 음반에 대한 욕심도 놓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엄청나게 많은 음반을 남긴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까 약간만 게으르면 몇장 못 내고 죽겠단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박차를 가하려 한다”며 웃었다. 지난해 모차르트 소나타 전집에 이어 내년엔 라벨의 피아노 작품들을 담은 음반을 발매한다. 몇곡은 이미 녹음까지 마쳤다. 두 사람은 밀양과 서울에 이어 27일 대구, 30일 인천에서도 공연한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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