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선정 3월의 생태관광지에 다녀오다
2박3일간 제주도를 여행하기로 하고 여행 일정을 구상했다. 애월에 있는 숙소에서 차로 30분 이내 거리로 여정지를 한정했다. 제주도의 자연경관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어디가 있을지 알아봤다. 마침 환경부가 선정한 3월의 생태관광지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도에 있는 저지곶자왈, 저지오름이 그 주인공이다.
환경부가 선정했다고 하니 고심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곶자왈’이라는 이름이 생소했다. 곶자왈은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용어이다. 곶자왈은 ‘곶’과 ‘자왈’의 합성어이다.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덤불’에 해당한다. 즉 곶자왈은 덤불 숲을 가리키는 고유 제주어이다.
제주도는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섬이다. 곶자왈은 화산이 분출할 때 점성이 높은 용암이 크고 작은 바윗덩어리로 쪼개져 요철(凹凸) 지형이 만들어지면서 나무, 덩굴 식물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곳을 가리킨다. 제주의 곶자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독특한 숲이다.
제주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하다가 차창 너머 숲에 자라난 곶자왈을 보게 되었다. 운전하는 친구가 대뜸 “저기 식물들이 엉켜 있는데 저것은 왜 관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걸까?”라고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제주도는 육지보다 수목을 잘 관리하고 있을 텐데”라고 응수했다. 저지곶자왈을 방문한 뒤 그게 곶자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일행은 한참을 웃었다. 곶자왈을 몰라서 벌어진 일종의 해프닝인 셈이다.
저지곶자왈은 제주 올레 14-1길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지곶자왈이 생태관광지로서 충족할 만한 요소들에 뭐가 있을지 직접 걸으면서 두 눈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인터넷 지도에 ‘곶자왈’을 검색해보면 저지곶자왈이 지명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지마을에 있는 자연 그대로의 덤불 숲이니깐 당연한 검색 결과이다. 저지곶자왈을 방문하려면 도착지를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산 36-9’로 설정해야 한다.
저지곶자왈에 내리니 ‘저지 제주백서향 군락 보호지역’이라는 것을 알리는 안내문이 있다. 저지곶자왈에는 곶자왈만 있는 게 아니다. 백서향도 있었다. 백서향은 향기가 1000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향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면 이곳에 백서향이 있을 텐데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저지곶자왈을 걷는데 바람에 실려 온 향기가 코를 실룩이게 했다. “누가 향수를 잔뜩 뿌린 걸까?”라면서 향기의 진원지를 찾아서 자꾸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활짝 핀 백서향 꽃이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여기저기 곳곳에 백서향이 있었다.
저지곶자왈을 걷는 동안 밀림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사진으로 봤던 그 밀림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바닥은 고르지 않고 크고 작은 돌무더기로 가득한 데다 나무와 덩굴이 마구 엉클어져 있었다. 제멋대로이고 무질서해 보여도, 사람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중산간 내륙지역에 있는 저지마을은 과거 생계 수단으로 말과 소를 방목해서 키웠다고 한다. 그러다 말과 소를 축사에서 키우게 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말과 소에 의해 짓밟혔던 이곳에 곶자왈이 형성되고 있었다. 저지마을의 생태가 자연스럽게 회복되기 시작한 것이다. 저지마을 주민들은 곶자왈의 생태 복원력을 확인하면서 곶자왈 지키기에 나섰다.
저지마을은 이래저래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5년 6월 저지오름이 생명의 숲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에는 가장 아름다운 마을에 선정된 바 있다. 또한 최근엔 백서향 향기 축제도 개최했다. 3월의 생태관광지로 선정된 소감을 묻자 저지마을 김재남 이장(60)은 “저를 포함한 마을 주민들 모두가 정말 기뻐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감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에 속하는 저지마을은 제주시에서 서쪽으로 약 42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저지오름을 중심으로 5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저지마을은 오래 전 당몰이라고 불리었다. 당몰은 닥나무 마을이라는 뜻이다. 당몰의 한자어 표기가 저지마을이다. 이때의 저지(楮紙)는 닥나무 껍질 섬유를 원료로 만든 우리나라 한지의 대표적인 종이를 뜻한다.
김재남 이장은 “2050 탄소중립이 대두되면서 자연환경에 부쩍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에 제주도도 자연, 생태 쪽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어요. 그래서 저지마을의 생태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2월 28일부터 3월 2일까지 제2회 저지곶자왈 백서향 향기 축제를 개최했어요. 며칠 전입니다. 백서향은 이른 봄을 알리는 매화보다 더 빨리 피는 꽃입니다. 2월 말쯤 제주도를 방문한다면 백서향 향기 축제까지 즐길 수 있답니다”라고 말한다.
저지곶자왈을 걷다 보니 연두색 철책으로 가로막힌 곳이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저지곶자왈의 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평상시엔 문이 닫혀 있다고 했다. 백서향 향기 축제처럼 행사가 있을 때만 그 문이 활짝 열린다. 그곳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했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제주도 고유의 생태종을 연구하고 있는 곳이다. 지금 외래종이 아닌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토종 식생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 저지곶자왈에는 돌무더기에 자생하는 이끼도 있었다. 이끼가 자라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곳이 습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재남 이장은 “저지마을에는 반딧불이도 많습니다. 청정지역에 가야 반딧불이를 볼 수 있어요. 백서향 향기 축제에 이어 반딧불이 축제도 진행할 계획입니다”라고 말한다. 개똥벌레로 더 알려진 반딧불이는 환경오염으로 거의 사라져 쉽게 볼 수 없다. 그만큼 저지마을의 생태가 보존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서향 향기 축제에 이어 반딧불이 축제를 개최하면서 저지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저지마을의 생태를 알리겠단다.
김 이장은 “제주도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부탁합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사람들이 다녀간 곳엔 그 흔적이 남아 있어요. 그게 쓰레기입니다”라고 거듭 당부했다. 생태를 보존하려는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관광객들도 동참해 달라고 했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에서 출발한다면서.
환경부에서 올 3월부터 이달의 생태관광지를 선정하고 있다. 환경부가 첫 번째로 선정한 곳이 바로 내가 방문했던 저지곶자왈과 저지오름이다. 뭐든 첫 번째는 그 의미가 크다. 더구나 환경부가 선정한 생태관광지이지 않은가!
생태관광지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지역의 생태 보존을 지원함으로써 지역주민들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환경부가 이달의 생태관광지를 선정하고 지원하는 것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낸다.
자연환경보전법 제2조(정의)에 따르면, ‘생태관광’이란 생태계가 특히 우수하거나 자연경관이 수려한 지역에서 자연자산의 보전 및 현명한 이용을 통하여 환경의 중요성을 체험할 수 있는 자연 친화적인 관광을 말한다. 자연환경보전법 제41조에 따르면, 환경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고 생태계 보호의 중요성을 체험·교육할 수 있는 지역으로서, 생태관광을 육성하기 위해 환경부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협의하여 지정하는 지역을 생태관광지로 지정할 수 있다.
저지곶자왈과 저지오름은 기후변화에 따른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탄소흡수원 역할을 하며,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를 만들어 주는 곳으로 제주도 내에서 유명하지만, 대중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다. 특히 저지곶자왈은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유명한 백서향(팥꽃나무속 상록 관목)의 군락지다.
한편, 환경부는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지정된 지역에 대해 지자체, 생태·관광 전문가 등과 협업하여 지역 브랜딩 전략 수립을 지원하고 체험 과정 개발 및 운영 진단(컨설팅)을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이달의 생태관광지로 선정되면 이곳의 특색있는 자연환경과 함께 운영 중인 생태관광 명소 및 체험 과정과 연계하여 방문 가능한 지역 관광 명소가 소개되며, 추천 여행 일정을 제공하는 영상 자료가 환경부 유튜브 등에 게시될 예정이다.
저지곶자왈을 걸으면서 직접 그곳을 둘러보니 과연 환경부가 선정할 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관광지는 지역주민들뿐만 아니라 그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합심해서 노력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저지마을 김재남 이장이 당부한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는 말이 귓가에 맴돈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윤혜숙 geowins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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