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현의 식스센스] 그날, 길 잃은 몸쪽 직구 10개···김택연의 다음 등판은 다를 것이다

류지현 KBSN스포츠 해설위원 2024. 3. 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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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은 류지현 KBS N 스포츠해설위원의 칼럼 ‘류지현의 식스센스’를 연재합니다. 대표팀 수석코치로도 활약 중인 류 위원은 진짜 전문가들만이 풀어낼 수 있는 고밀도 야구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식스센스’는 류 위원의 LG 현역 시절을 상징하는 번호인 ‘6번’을 모티브로 한 이름입니다.


지난 23일 창원 두산-NC전. 해설위원으로 올시즌 첫 중계석에 앉은 날이었다. 여러 선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조금 더 가까이서 한번 더 보고 싶던 투수가 7회 마운드에 올라왔다.

두산이 2-0으로 앞선 7회말. 매력적인 패스트볼로 이미 주목도 높은 두산 우완 신인투수 김택연이 등판했다. 7회 NC 선두로 나온 좌타자 손아섭에게 2루타를 맞은 뒤 우타자가 연이어 나오자 김택연은 집요하게 몸쪽 직구를 던졌다. 그런데 몸쪽 제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볼 4개가 연속으로 몸쪽 위·아래로 빠지며 스트레이트 볼넷이 나왔다. 다음 타석의 우타자 박건우를 상대로도 김택연은 몸쪽으로 직구 3개를 붙였는데 2구째 직구가 파울이 된 것을 제외하고는 스트라이크존을 확연히 벗어났다. 결국 4구째 슬라이더가 복판 가까이 흘러 들어가며 좌전안타를 허용했다.

김택연은 또 다른 우타자 김성욱, 서호철과 대결하며 코스 선택의 변화를 가져가기도 했는데, 그다음 우타자로 나온 김형준과 대결에서 다시 초구 몸쪽 직구를 던지다 몸에 맞는 볼로 출루를 허용했다.

두산 김택연. 두산 베어스 제공


포수가 베테랑 양의지였다. 아무래도 우타자 몸쪽을 주타깃으로 볼배합을 가져간 것으로 보인다. 양의지는 지난 시즌을 보자면 과감한 몸쪽 승부를 통해 우완 김동주 같은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끌어냈다.

다만, 그날만큼은 투수가 던지기에 조금 더 편안한 코스를 선택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베테랑 투수도 개막전 마운드에 서자면 엄청난 부담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 우완투수가 몸쪽 패스트볼을 자신있게, 또 정교하게 던지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김택연은 신인이다. 정규시즌 개막전 중압감은 달랐을 것이다. 그날 김택연이 우타자를 상대로 던진 몸쪽 직구 10개 중 보더라인 안쪽을 통과한 공은, 박건우 타석의 1개 뿐이었다. 물론 개막전이 아니었다면, 또 첫 등판이 아니었다면 효과적인 코스 선택일 수 있었지만 개막전은 기술 이상으로 정신이 지배하는 무대다.

김택연은 그날 2실점을 했다. 2-2 동점을 내주고 7회를 마쳤다. 그날 경기 결과로는 실패였지만, 다음을 보자면 가치 있는 등판이 됐다. 이승엽 두산 감독이 다음날 인터뷰에서 김택연의 7회를 두고 “이닝을 마무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밝힌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감독은 김택연이 등판한 7회 같은 상황에서 고민이 커진다. 아마도 다른 불펜투수였다면 이닝 중간에 바꾸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김택연은 두산 벤치에서 이미 팀의 마무리로도 기대하는 투수다. 김택연의 성공적인 풀시즌을 위해 이승엽 감독이 큰 결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극단의 위기에서 역전을 허용하지 않고 내려온 것도 야구 인생에 큰 경험이 될 것으로 본다.

사실, 김택연의 가능성은 개막에 앞서 메이저리그 팀들과 경기를 한 대표팀(팀코리아)에서 이미 확인했다. 필자가 포함된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지난 18일 LA 다저스와 평가전에서 김택연을 4번째 투수로 준비시키면서 걱정도 컸다. 어린 투수가 빅리그에서도 중량급 타자들과 마주하며 자칫 부담 때문에 리듬을 잃을 여지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어서 여러모로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두 타자를 연이어 삼진 잡는 것을 보고, 구위와 대담함에 모두가 감탄했다. 특히 제임스 아웃맨과 대결에서 볼카운트 3-0으로 몰린 뒤에도 직구 3개로 삼진을 잡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의 크고 작은 염려가 기우였다고 생각했다.

팀코리아 투수로 지난 18일 다저스전에 등판한 김택연. 연합뉴스


김택연은 숫자로 찍히는 구속보다 볼끝이 위력적인 유형의 정통파 투수다. 다저스와 경기에서는 분당 회전수가 2483 RPM까지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김택연을 보면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직구로만 삼진을 잡아내던 신인 시절 오승환이 떠오른다. 또, 90년대 필자가 LG 선수로 뛰면서 만났던 투수 중 포심패스트볼 볼끝이 유난히 좋았던 정민철(당시 한화) 같은 강속구 투수들이 생각난다.

우리 리그에서 역사가 된 유명한 직구가 있다. 오승환의 패스트볼, 정민철의 패스트볼 등 남다른 직구로 계보를 이룬 투수들이 있었다. 김택연 또한 앞으로 직구로 계보를 이은 선배투수들을 따랄 자질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김태연의 다음 등판은 다를 것으로 믿는다.

<류지현 KBSN스포츠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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