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북’ 3년, 맵고 뾰족한 서평들

이유진 기자 2024. 3. 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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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서울리뷰오브북스> 불황 견디며 3년 생존… “고품격 서평 보여줬지만 사회적 파장 아쉬워”

2021년 3월 창간한 계간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이하 <서리북>)를 두고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반시대적 용기”라고 말했다. 북스타그램, 북튜버, 북크리에이터, 크고 작은 북토크와 잔잔한 독서모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피드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각종 블로그, 온라인서점, 신문·잡지에 책 소개가 넘쳐나는 시대이지만 ‘독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개탄이 끊이지 않았다. 독자도 부재한 판국에 책에 관한 진지한 서평에 대한 갈망이 있는지, ‘서평지 시장’이라는 게 과연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지가 출판계의 오랜 질문이었다. 초대 편집장 홍성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는 이에 도발적으로 되물었다.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만큼 좋은 서평이 있었는가?”

3년이 흘렀다. <서리북>은 이 매서운 질문을 도로 받게 됐다.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만큼 좋은 서평이 있었는가?” 대답을 찾는 데 어쩌면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그동안 서평 전문 잡지 <서리북>은 불황을 견디며 3년을 ‘생존’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이 잡지는 존재 가치를 증명한 것인지도.

<서리북>에는 홍성욱·이두갑·조문영·김홍중·권보드래·송지우·박진호·심채경·정우현·박상현·김두얼·강예린·박훈·장하원·서경 등 각 분야의 내로라하는 ‘스타 필자 군단’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지난 3년 동안 77명의 필자가 198권의 책을 대상으로 쓴 156편의 서평을 실었다. 지금까지 가장 눈길을 모은 책은 창간준비호인 0호로, 펀딩플랫폼에서 3천만원 가까이 펀딩을 받아 재판까지 찍었을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다. 1주년 기념호 또한 ‘창간 프리미엄’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독자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2년째에는 작은 판형으로 바꾸고 디자인도 개선했다.

‘주례사 비평’이 아닌 뾰족한 서평이 1호부터 등장했다. 김두얼 당시 편집위원(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은 ‘매끈한 서술과 설익은 통찰’이라는 제목으로 사회학자 송호근의 3부작 <국민의 탄생>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이 얼개가 헐렁하고 논리적으로 비약이 있다며 정면으로 비판했다. ‘벽돌책’을 다룬 특집 ‘빅북, 빅이슈’(5호)에서 홍성욱은 스티븐 핑커의― 들다가 손목이 나갈 정도로 두꺼운― 벽돌책 두 권을 읽고 핑커가 무리하게 인류의 ‘선량함’을 강조하면서 20세기 살육을 우연히 발생한 것처럼 판단한 점이나 과학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우생학 분야에서 과학자들이 저지른 잘못조차 방어해주려 노력했다는 점 등을 꼼꼼하게 비판했다.

중요한 서평이 없지 않았지만 기대한 만큼 ‘매운맛 비평’이 드물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간 당시 애정 어린 목소리를 냈던 장은수 대표는 “서평 품질은 좋았지만 사회적 파장을 일으켜보려 했던 의도는 성공적이지 못한 느낌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신문에 실리는 신간 안내를 사람들이 서평으로 생각할 때 출판문화는 약해진다. ‘내가 선택한 것이 좋은 책’이라며 얼버무리지 않고 책의 무게를 증명하고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일하게 이를 달성하고 있는 게 <서리북>이고, 독립적 지식인으로서 장정일 작가도 ‘독서일기’를 통해 그런 서평을 보여주고 있다. ‘크리틱’이 없는 세계에서 지성은 발전하지 못한다. 서평 문화가 없는 한국 사회에서 <서리북>의 존재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다. 출판계와 지식인들도 좀더 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서리북> 김두얼 신임 편집장은 “지난 3년은 독립성, 전문성, 엄정함이라는 서평지의 정체성을 인정받은 기간이었다. 앞으로 이렇게 축적돼온 가치와 지향을 지켜가면서 재정적으로도 새로운 노력을 시도하고 독자와의 만남 등 행사도 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창간 3주년 특집호 ‘민주주의와 선거’(제13호)와 함께 나온 단행본 <읽기의 최전선>(알렙 펴냄)은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면서 오늘날 가장 긴박한 의제인 인류세, 과학기술, 위험, 자본주의, 전쟁, 차별과 연대를 주제로 15명의 필자가 쓴 21편의 서평을 묶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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