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수요 갈수록 늘어나는데… 공공서비스는 ‘존폐 위기’ [심층기획]
2025년 인구 20% 65세 넘어 ‘초고령사회’
돌봄 인력 2032년 최대 71만명 모자라
서사원 요양보호사 급여 민간의 1.6배
시의회 “운영 효율성 낮다” 폐지 수순
일각 “최저임금 수준 민간 처우가 문제”
전문가 “공공성 강화 방향으로 개선을”
최저임금 방침에 “비싸다” 의견 많아
“돌봄노동 가치 저평가 인식 바뀌어야”
‘서울시사회서비스원’(서사원) 소속 요양보호사 김모(53)씨는 주로 치매 어르신을 돌본다. 김씨는 돌봄 서비스를 위해 어르신의 집까지 직접 찾아가는데, 거리에 따라 왕복 3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다. 어르신이 ‘돌봄 SOS’를 호출하면 1시간가량 동행 서비스를 나가기도 한다. 김씨는 “이런 분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건 공공 서비스라 가능한 것”이라며 “민간 업체였으면 누가 고작 1시간 일하러 멀리까지 오겠느냐”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그러나 “서사원 운영이 효율적이지 않다”며 연내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의 ‘돌봄 서비스 인력난·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돌봄 서비스에 대한 수요 대비 시장의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면서 인력 부족 규모는 2022년 19만명에서 2032년 38만∼71만명, 2042년 61만∼155만명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이면 전체 인구의 20%를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돌봄 서비스 수요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돌봄 서비스에 대한 분명한 수요에도 공급이 부족한 것은 돌봄 노동자의 처우 문제가 주된 이유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단적인 예가 최저임금에 머물러 있는 임금 수준이다.
시장에서 돌봄 노동자를 중개해 주는 장기요양운영기관은 지난해 기준 75.7%가 소규모 개인사업자다. 이 중에서 30인 이하의 영세사업장이 69%다. 서사원과 같은 공공 서비스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영세사업장에 의해 돌봄 노동자가 제공되는 것인데, 그러다 보니 처우나 인식 개선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조사에서 응답자의 78.5%는 ‘근속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답했고, 46.4%는 ‘서비스 대상자의 요청으로 정해진 업무 밖의 일을 한 적 있다’고 했다.
민간의 요양보호사 문모(50)씨는 “나이 때문에 간호조무사에서 요양보호사로 넘어왔지만, 주변에서 이 일이 어떠냐고 물어보면 차마 추천은 못하겠다”고 말했다. 문씨는 “말 그대로 ‘을’ 취급을 받는다”며 “센터에 체계가 없다 보니 하는 일이 매번 달라지고, 수급자 선정도 지인 소개로 이뤄진다”고 토로했다.
서사원 폐지 논란은 돌봄 노동에 대한 처우와 인식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서사원은 2019년 이런 문제를 개선해 보겠다는 취지로 출범했지만, 시범사업 5년 만에 폐지 기로에 섰다. 강석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장을 비롯한 시의원 5명은 지난 5일 서사원 폐지조례를 공동 발의했다. 통과될 경우 서사원은 연말까지 폐지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시의회가 서사원 폐지에 나선 가장 큰 이유는 비용이다. 이미 서사원의 올해 예산은 168억원 중 100억원이 삭감됐다.
고용안정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 월급제를 적용한 서사원의 요양보호사는 시급을 받는 민간 요양보호사 대비 높은 급여를 받는다. 서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서사원 소속 요양보호사가 월평균 223만원을 받을 때 민간에서는 같은 시간 일해 145만7670원을 받았다. 공공과 민간의 급여 차이가 1.6배에 달하는 것이다.
지난해 예산 삭감이 결정되자 서사원은 운영 중인 종합재가센터를 12곳에서 4곳으로 줄이고, 국공립어린이집 등 민간 사업체들과 중복되는 위탁사업을 종료하는 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의회는 임금 효율화에 대한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반려했다.
민간 서비스의 처우와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에도 시의회가 높은 임금을 문제 삼아 공공 서비스의 폐지 논리로 삼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사원을 비롯한 사회서비스원 역시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진단이다. 양 교수는 “민간 돌봄 서비스는 인건비 (낮추기) 경쟁만 이뤄질 뿐 서비스 질의 향상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며 “사회서비스원은 돌봄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는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 관계자는 “서사원의 핵심 과제는 공공성 향상인데, 현재까지 이 부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효율성 측면에서도 지적을 받아 왔다”며 “시의회의 입장이 강경해 다음달 폐지 조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장 반발에 ‘삐걱’
저출산·고령화 국면에서 돌봄이나 가사 노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지만, 뒤처지는 인식과 함께 처우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단적으로 정부가 지난해 도입을 추진했던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을 적용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비싸다’는 시장의 반발에 부딪혔다. 돌봄이나 가사 노동의 양과 질을 모두 끌어올리기 위해선 이들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인식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해 12월까지 도입을 추진했던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정책 추진이 늦춰진 상태다. 저출산·고령화 국면에서 돌봄이나 가사 노동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진단에는 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임금 부담이 실수요자인 각 가정으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실제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급여에 정부 정책기조대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면 월 206만740원을 지급해야 한다. 30대 가구 중위소득(509만원)의 절반 가까운 금액이다.
가사근로자를 외국에서 들여오겠다는 정책은 국내 공급 부족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공급이 부족한 이유가 가사근로자의 처우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단순히 외국 노동력을 수입하기보다는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2022년 가사근로자법을 시행해 가사근로자의 최저임금과 사회보험 보장을 명문화했고, 정부가 인증한 기관을 통한 채용과 고용에도 앞장서고 있다. 가사근로자를 ‘아줌마’나 ‘이모님’이 아닌 ‘가사관리사’(관리사님)로 부를 것을 직접 권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돌봄 노동 자체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는 방안까지 거론되는 등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평가다. 차등 적용이 자칫 가사 노동을 저평가하는 사회적 인식 속에 낙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노동계는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
한국노총은 당시 논평에서 “우리나라 돌봄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다”며 “시장 논리만을 따른 최저임금 제외,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 ‘임시방편’식 정책은 불필요한 사회갈등과 분열을 야기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윤솔 기자 sol.y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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